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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의 컴퓨터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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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정 1994년 06월 148호
컴퓨터가 등장하여 새롭게 엮어내는 사회적 여러현상은 가희 \'혁명\'이라 이름 하지 않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작년 가을 미국에서 열린 세계에서 가장 큰 컴퓨터쇼인 컴텍쇼에는 PDA(개인 정보 단말기)가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휴대용 전화기만한 크기의 이 장비는 무선 전화기, 무선 팩스, 텔레비전, 정보 검색 단말기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고, 정보 검색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가정에서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PAD가 휴대용인 반면, 가정용은 휴대할 필요가 없으므로 좀더 용량이 크고 활용도가 다양하다. 그야말로 가정의 정보 센터, 가사의 자동화를 이루는 핵심적인 장비로 등장할 것이 너무도 뻔하다. 컴퓨터가 주인공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는 이처럼 시공을 달리하는 혁명적인 생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찰에서는 이런 문명의 이기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사찰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일은 아직은 매우 저급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 방면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 겉으로는 아직도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신자 관리나 재무 관리 따위의 일을 컴퓨터가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그 안으로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각 사찰에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크게 늘었고, 신자나 재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의 질과 양, 그리고 보급도 크게 늘었다. 눈으로 계량할 수는 없으나 컴퓨터 마인드가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결과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신자들에게 보낼 편지 봉투를 무성의하게 기계글로 쓰게 할 수 없으며 컴퓨터 관리할 만큼 신자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시간을 아껴야 할 필요도 없다는 종전의 자세에서 컴퓨터를 통한 합리적 신자 관리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터득해 가고 있다. 특정 기간의 신자 증감이나 재정 증감으로 예측 가능한 신자 관리 정책을 도출해 낼 수 있으며, 간편한 신자 관리를 통한 신자와의 직간접 접촉 빈도를 늘려감으로써 신자의 신심 고양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이 포교의 유력한 수단 가운데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도 증대돼 가고 있다. 원거리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거침없이, 빠르게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전파할 수 있음을 호기심 반 즐거움 반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선진 외국의 종교계에서는 비교적 다양하게 컴퓨터를 활용한다. 신자 관리나 재무관리, 신앙 상담, 자료 검색, 신자와의 연락망 구축 따위가 그것이다. 신자 관리나 재무 관리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신앙 상담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분야이다. 신자나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의문점, 곧 교리나 일상생활의 의문점등을 컴퓨터 통신망에 연결된 성직자 컴퓨터에 질의한다. 물론 가정에 앉아서 매우 자연스럽게 미주알 고주알 묻는다.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므로 묻는 이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 따라서 질문이 좀더 심도 있고 절실하다. 질문을 받은 성직자도 역시 글로써 이에 일일이 답한다. 성당에 가서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것보다 그 선호도가 더 놓아지고 있다. 자료 검색의 경우는 도서나 사전류, 인물 이력, 설교 예문, 성전 해설 등을 입력하여 누구나 자신의 컴퓨터에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주제의 자료를 검색하는 것이다. 해당 종교학 분야의 연구나 인물 활용, 교양의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방송이 컴퓨터 통신망인 천리안이나 하이텔에 불교 자료실을 개설하여 운영중이다. 아직은 자료의 다양성과 추적 정도가 미흡하지만, 자료의 축적은 많은 가공비와 오랜 시간이 투여된 뒤에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로 평가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또한 신자와의 연락망 구축은 해당종교 시설을 이용하는 신자들끼리, 또는 같은 취미나 관심을 갖는 신자들끼리 폐쇄 회로를 형성하여 공지사항을 주고 받거나, 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종교 행사도 주관한다. 타지에 나가 있거나 몸이 불편해 종교 시설에 출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설교를 들을 수 있는 매우 친근한 도구로 활용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몇 개 회사들이 나서서 이러한 일들을 성취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예 우리 불교계만을 대상으로 불교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예전에 비해 두드러진다. 그 성과물이 아직은 돋보이지 않으나, 물밑에서 맹렬한 노력으로 약진하고 있음이 고무적이다.
불교방송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이일의 실무책임자가 된 까닭에 자화자찬이 될까 우려되나, 필자로서는 몇 가지 원칙을 견지하며 이일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는 불교 자료의 전산화이다. 많은 자료들을 가공하여 컴퓨터에 입력시켜야 한다. 불교 도서 목록, 전국의 사찰연혁이나 유물, 유적, 설화, 불교계의 인물의 이력, 불교 관계 신문 스크랩들이 그것이다. 불교방송은 방송의 목적 상 많은 불교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다만 수집한 원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가공하는 일은 대단히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좀 더딘 감이 있다. 또한 이 자료들을 컴퓨터 내에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텍스트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일반 정형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형 데이터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이다. 그러므로 그 기술 개발이 매우 까다롭다. 이것을 국내에는 도전하고 극복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불교계나 국내 데이터 베이스 업계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어야 한다.
둘째는 불교계를 위한 컴퓨터 통신의 기반 구축이다. 전산화된 자료를 외부의 컴퓨터 통신망에 연결하여 사찰이나 신자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 서비스하여야 한다. 통신망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접속하여 검색하여야 한다. 불교방송에서는 현재 천리안이나 하이텔을 통하여 우리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검색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초기 단계의 수준이다. 사용자들의 애로를 곧바로 처리 할 수 없으며, 좀더 불교적인 환경 구성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원적으로는 불교방송의 호스트컴퓨터를 한국통신의 HiNET-P라는 공중정보통신망에 직접 연결하여 서비스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는 가상적인 불교 전용 통신망이 구축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불교 방송은 이의 실현을 위해 한국통신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만들었으며, 금년 말까지는 이 계획을 완성할 것이다. 또한 내년 1월부터 석 달 동안 시험 서비스를 하고, 3월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불교정보 서비스 체제를 갖출 것이다.
셋째는 불교 정보센터의 구축이다. 불교방송 호스트 컴퓨터에 연결하면 모든 유용한 불교 자료들을 모두 살펴 볼 수 있다는 사용자들의 믿음을 구현하는 일인데, 물론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계획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맞추어 일해 나가며, 불교계의 협력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면 2천년이 오기 전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새롭게 전개되는 정보사회에 적응하여 생존해야만 한다. 우리 사찰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수준은 외국의 종교계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러나 지금 불교 전산 업계들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며, 그때쯤이면 오히려 국내 다른 종교계보다 앞서서 정보사회를 향유할 것이다. 물론 외국 종교계만큼 다양하게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훌륭한 기술을 구현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아무리 좋은 자료를 컴퓨터에 저장하여도 이용자들이 등한히 하고, 이의 귀중함을 몰라 준다면, 결국 정보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 뻔하다. 관심을 갖고 이를 잘 활용하는 일이 미래를 대비한 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