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미래의 열린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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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혜묵
1994년 06월 148호
정보화 사회라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는 정보가 움직이며,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는 표현을 흔히 하지만, 절 집안의 살림살이와는 무관한 말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해인사대장경연구소에서 고래대장경을 전산화하겠다고 일을 시작한 이래로 연구소 안팎에서 가장 뻔질나게 주워 섬겼고 들어왔던 것이 바로 이런 말들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그 말에는 고유한 인상이 있는데, 사실 정보라는 말 자체의 인상은 그리 친근하거나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이 말의 인상에도 얼마쯤 습관이 되어 무시로 절 집안에서도 쓰는 말이 되었지만, 새삼 불교와 정보사회라는 주제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막막해 하는 것 같습니다.
해인사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고려대장경의 전산화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은 작년 3월이었습니다. 칠백여년 동안 장경각에서 잠자고 있는 대장경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원력만으로 우왕자왕한 지도 일년여가 지난 셈입니다. 지난 5월 22일에는 조계사에서 그동안의 작업과정을 보고하는 전산화를 본격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논의하는 정기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전산화의 방향에 대한 논의’(서울대 철학과 심재룡 교수님, 중문과 허성도 선생님)와 ‘전산화를 위한 고려대장경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불교란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대하는 경전도 그러한 가르침의 과정과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이라는 것이 언어를 기록한 것이기에 경전을 읽거나 공부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언어라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체를 이용한 이러한 정보의 유통 방식 또한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정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정보화 사회의 불교’나 ‘불교와 정보화 사회’라는 주제로 논할 때, 우리가 떠올릴수 있는 의미는 이런것들입니다. 정보학 관점에서 볼 때, 불교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들이 몇 번있습니다. 부처님 시대는 문자가 발달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가르침을 전하는 데에는 주로 대화, 곧 말이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경전 앞머리에 붙는 ‘여시아문’처럼 제자들이 직접 들은 말씀을 기록하여 외우는 방식으로 가르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 말씀을 외운 제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결집을 통하여 모아지고 표준화되어 문자로 정착되었습니다.
말과 글은 서로 다른 형식의 매체입니다. 문자는 가르침을 전하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실천하는 데 큰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먼저 말은 직접들어야 하는 제한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들을수 있는 반경은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직접성은 높습니다. 잘 모르면 직접 묻고 곧바로 대답을 들어 알수 있으며, 서로 직접 얘기함으로 언어의 한계를 얼마쯤 극복할수도 있습니다.
문자는 이러한 소리의 한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되풀이 하는 안된 정보를 얻을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자도 또 다른 한계가 있습니다. 말이 갖는 직접성이 사라져 더욱 모호해지고 오해의 소지가 많아, 모호함과 오류가 되풀이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하던 초기에는 돌멩이나 나뭇잎이 기록 수단의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문자 정보의 역사에서 종이의 발견과 인쇄술의 발달은 가르침을 널리 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려대장경은 그래서 유통의 한계를 넘어, 가르침을 공유하고 해석과 실천에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목적에서 만든 것입니다. 당시의 최첨단 문자 매체와 유통방식으로 만들었으니, 곧 다양한 가르침의 기록을 여러 방식으로 정리하여 세련된 기술로 다듬은 목판에 표준 서체와 틀로 새겨 이를 종이에 찍어 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대장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가르침에 대한 온전한 해석능력과 최첨단 수준의 매체나 유통방식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200년대에 대장경을 만들어 지금까지 몇 백 년을 온전하게 보존해서 세계최고의 대장경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와 학술 수준이 세계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렇듯 대장경이 한 시대의 사회 수준을 이끌어 가는 최첨단 기술과 능력을 나타낸 것이라면 대장경은 바로 ‘가르침의 내용을 전하는-해석과 실천을 포괄하는 광범한 의미에서의- 정보의 집착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대장경은 매우 뛰어난 능력으로 자료들을 수집 분류하고, 매체와 유통방식을 활용하여 만든 불교 관계 정부의 집적체입니다.
그렇치만 고려대장경은 칠백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과거의 대장경입니다. 목판의 수는 팔만여 장이요, 책으로 묶어 놓으면 육천여 권이 넘는 이 시대 사람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번거로운 물건일 뿐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발전한 교학의 새로운 결과물들을 이용하여 과거의 대장경들을 모으고 또 새로운 시대의 기술을 갖고 활판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대장경을 만듦으로써 고려대장경은 명실상부하게 과거 속으로 사라져 창고속의 문화재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와 물질의 한계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지만, 사바의 우리들이 다루는 속세의 물건들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장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의 가치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세속적인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물질의 한계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오늘날에는 불교경전과 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님과 학자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표준이 된 일본의 대장경을 활용합니다. 교학의 가장 밑바탕인 대장경을 외국에 의존함은 특히 우리처럼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보의 유통과 활용을 외부적인 원천에 의존함으로써 생길수 있는 문제들이라 하겠습니다. 어찌 우리 대장경이나 불교만의 일이겠습니까.
오늘날은 기술 문명의 발달로 전혀 새로운 사고와 매체들에 의한 정보화사회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종이와 인쇄술로 대표되던 문자 정보 체계가 컴퓨터와 통신이라는 전자 정보의 체계로 급속히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전산화 불사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교와 첨단 과학, 스님과 컴퓨터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컴퓨터를 보면 불경을 연구한다는 발상이 우습다.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좀더 많은 중생을 교화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려면 현실을 이끌수 있는 도구들을 갖추어야만 됩니다. 그 동안 한국 불교는 시대의 흐름을 이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불교는 산 속에서나 통하는 특수한 문화가 되었고, 스님들조차 불교를 배우려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물론 고려대장경이 장경각 안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체계가 변하는 전환기가 고려대장경을 재생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듯합니다. 장격각에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는 판본을 모두 새로운 매체에 성공적으로 담아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하여 유통할수 있다면, 팔만여 장의 목판에 담긴 가르침들이 오랜 세월의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시대와 미래에 다시 살아나 가르침을 전하는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수 있는 기회입니다.
해인사의 고려대장경 전산화 계획은 한 스님의 소박한 원력으로 시작되어 주변의 선지 학자들 그리고 소수의 후원 및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추진되오 왔습니다. 어설프지만 그 동안의 노력으로 불사를 정상적으로 추진할수 있게 되었으며, 기본적인 준비도 얼마쯤 갖추어졌고, 주변의 환경도 호전되고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은 온 국민이 뜻과 정성을 모아 당시 최고의 학술과 기술을 동원하여 어렵게 만든 우리의 최고보물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전자 대장경의 간행은 한두 사람의 원력이나 어설픈 지식으로는 완성될수 없는 큰 불사입니다. 이제 변화하는 정보화의 시대를 맞아 이러한 대작 불사를 추진해 갈 불연도 얼마쯤 영글었습니다. 열린 미래를 위한 열린 대장경, 고려대장경을 현대와 미래로 되살려 내는 이러한 불사가 좀더 규모 있고 안정된 집단의 주도 아래 국민적인 관심과 범불교적인 동참 아래 추진될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