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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헐고 열고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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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06월 148호
첫구절에서 막히다
출가한 행자의 신분으로 처음 배우는 책이 「초발심자경문」이다. 이 책은 보조 지눌(1158~1210)의 「계초심학 인문」,운효(617~686), 야운의「자경문」을 한권으로 다시 묶은 것이다. 예로부터 이 책은 구도의 발심을 날로 새롭게 하고 게으른 마음과 물러나려는 마음을 다시 추스려 주는 까닭에, 평생 읽는 수행의 지침서로서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내용의 간결함과 문장의 수려함에 어떤 이는 천 번 읽고 문리가 났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그 부피를 훨씬 능가하는 법력을 이미 인정 받아 왔다.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籬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여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여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하라 무릇 처음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마땅히 나쁜 사람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사람만 가까이 해야 하며, 5계와 10계등을 받아서 지키고 헐고 열고 막을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가 그 첫 구절 이었다.
다른 것은 “그런가보다”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는데, 마지막의 지범개차持犯開遮는 그게 아니었다. “계율을 지키면 지키는 것이고 말면 마는 것이지, 지키고 헐고 열고 닫는다는 건 또 뭐야”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주석서의 몇 마디 덧붙인 해설을 읽어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원청규의 고려삭 변용인“계초심학인문”
“계초심학인문”은 보조 지눌스님이 1205년에 저술한 청규이다. 이는 당시에 해이해져 가던 교단을 바로잡고, 오직 승가 본연의 수행을 위하여 결사한 수선사修禪社-지금의 송광사-의 청규로 선포하엿다. 한국 선종 청규의서는 효시가 되는 셈이다. 이 청규는 중국 송나라의 “선원청규”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본문의 구성이 초심인의 수계와 호계 등을 시작으로 서술한 것은 “선원청규”의 목차순서와 같다. 곧 “계초심학인문”은 “선원청규”의 사상을 충실하게 이어받아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청규는 일상 생활을 위한 것이므로 다른 율장과 병행되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 선종을 확립한 것처럼 고려의 보조 국사는 “계초심학인문”으로 한국의 선종을 중흥시킨 셈이다.

지범개차의 주체는 누구인가
계율을 “지키고 헐고 열고 닫는다”는 의미의 지범개차는 행자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간 곤혹스러운 구절이 아니다. 이 구절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은 아무래도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지범개차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곧 지범개차의 주체를 수행자 개인의 주관적 안목에 맡겨 두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수행자 개인이란 누구인가. 자기 중심적 이기심을 떨쳐내려고 공부하고 있는 중이므로 중생의 한계를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의 안목으로 지범개차를 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아전인수격 지범개차가 다반사였다.
결론적으로 아무나 지범개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법에 대한 “안목 열림”을 그 전제로 한다. 그런 사람만이 지범개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래야지 마음놓고 지범개차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백장 선사는 계율을 늘상 “지키고 헐고 열고 닫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범개차의 또 다른 주체는 교단이다. 대중이 다같이 원하고 대중의 승인이 있을 경우 에는 지범개차하여 왔던 것이다. 결국 지범개차의 주체는 깨달은 사람 또는 교단일 뿐이다. 결코 지범개차는 개인 개인의 재량 영역은 아닌 것이다.

율장은 지범개차의 역사이다
지범개차의 선구자는 아무래도 부처님일 것이다. 계율을 한 조항씩 제정하신 뒤에 그에 따른 문제가 다시 생기면 곧 부차적인 조항을 덧붙이는 식으로 헐어서 열곤 했다. 예를 들면 “반드시 보름만에 목욕을 하라”고 한 뒤에 “병 없이 반달마다 목욕하는 규정을 어기지 말라”고 하여 치료를 위한 목욕은 보름이라는 기간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 “남을 중매하지 말라”고 한 뒤 가정불화로 헤어진 부부를 다시 결합토록 하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 “바루를 여벌로 갖지 말라”는 계율은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십 일쯤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밖에도 많다. 그런 조항들은 “~은 제외하고는 ~하지 말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하지 말라. 다만 ~한 경우는 제외한다”는 조문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은 뒷날 안목 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추가되는 형태를 취하곤 했다. “때아닌 때에 먹지 말라”의 본디 의미는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정오에 먹어야 한다는 것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미들이 출가함에 따라 배고픔을 참지 못하자 아침에 죽 먹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 뒤 중국에 총림이 개설되면서 비구의 노동이 보편화되자 저녁을 약석 이라고 하여 묵인하였다. 곧 저녁밥은 밥이 아니라 배가 아플 때 돌을 따뜻하게 해서 문질러 낫게 하는 약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세 끼 먹는 것이 보편화되고 또 울력을 하거나 그 밖에 다른 이유로 중간중간 새참까지 먹는 총림 대중 생활 속에서 성철스님(1912~1993)은 선수좌 5계를 통하여 “간식하지 말라”고 하였다. 불비시식계 역시 이렇게 지범개차하여 왔다.
율장 역시 사분율장 법망보살계경 선원청규 그리고 현대판 율정이라고 할 수 있는 종헌종법으로 지범개차되어 왔다. 그 밖에도 갖가지 규범과 관례 그리고 전례는 대중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문율로 굳어져 율장의 모자라는 부분을 아울러 보충하고 있다.L

율장을 늘 학인해야 한다.
율장을 가장 잘 확인한 스님의 전형은 여산 혜원(334~410)법사일 것이다. 스님이 입적할 무렵의 상황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병이 위독하자 제자들은 머리 숙여 정신을 차리는 약으로서 술을 마시도록 부탁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먹도록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하였다. 다시 꿀을 탄 음료를 드시길 간청하였다. 제자들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에 곁에 있던 율사에게 부탁하여 율장에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다. 율장을 반쯤 확인했을 무렵 그대로 열반에 드시고 말았다.
율장 자체가 지범개차되어 있으므로 사실 우리 개인이 지범개차하고 말고 할 게 없다. 지범개차되어 있는 율장대로 살면 된다. 사분율장에 없는 것은 범망경을 찾아 보고, 범망경에 없는 것은 선원청규를 찾아 보고, 선원청규에 없는 것은 종헌종법을 찾아보고 거기에도 없는 것은 관례나 전례를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안목이 열리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면 늘상 율장 열람을 통하여 지범개차할 일이다. 중생의 소견머리의 위험성은 계율 분야라고 해서 역시 예외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