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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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본해
1994년 06월 148호
정치와 종교의 유착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건전한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여론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마치 진흙길을 비단길인양 안내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근래 몇 십 년의 불교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비록 소수가 그렇게 했지만 전횡을 맞지 못한 다수 승가에도 책임이 있다. 많은 스님네가 깡패와 경찰에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곳에 문민정부는 없었다. 오히려 군사 정권 때에 보았던 폭력적인 권력만 있을 뿐이었다. 힘으로 집권한 오공은 불교계가 자기들의 이익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고 스님들을 고문, 투옥한 10.27 법난을 일으켰다. 조금 더 지능적인 육공은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몇몇의 권승들과 유착하였다. 권승들은 육공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고 정권은 그들을 보호하였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이었다.
개혁을 들고 나온 문민정부는 불교계의 개혁이 안중에도 없었다. 개혁이 안 된 곳은 종교계와 언론계뿐이라면서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정작 개혁의 불길 앞에서는 어느 쪽이 정치적 이익에 부합한지를 따져 보며 허둥대더니 전체 승가의 여론을 무시하고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였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까지 말이다. 문민정부의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택한 것은 이익 제일주의였다. 스스로의 주장을 뒤엎는 행동으로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상무대 국정조사는 곳곳에 장벽이 나타난다. 국회의 문서 검증을 정무 각 기관에서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는 무시한 채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더 나아가 진실을 오히려 은폐하려는 것 같다. 잘못한 증거가 명백하게 있는데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 다면 정부가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상당한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꼭 보은이 아니라면 여론을 따라가기에는 비밀이 너무 많은 지도 모른다. 현대사에서 어느 정권이 종교계의 일에 관여해 특정인에게 손을 들어 준 일이 있는가. 심지어 반대하는 스님들을 유치장에 가두어 놓고 경찰의 호위 아래 찬성하는 이들만 투표하게 한 적이 있는가. 세속적인 정치 제일주의가 빚어낸 참담한 일이다. 군사정권이나 했을 공작을 문민정부도 필요하다면 스스럼없이 한다는 밀인가.
법당 난입, 기물파손, 무단 연행, 폭행 등 부끄러운 일 뿐이다. 3.29법난, 상무대 정치 자금 유입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명백한 잘못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된 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공권력의 실추인가. 그것은 편협한 아집이다.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정권 역시 정치적 속성은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준엄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승가가 오늘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 적은 근래에 없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승픙을 진작시키려는 좋은 아침을 맞고 있다. 대중의 위기감이 오늘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도 청정 승가의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처럼 국민의 이익에 반하여 특권 정권을 지지하는 그런 무리들의 어떤 움직임도 배격해야 한다. 정부도 과거처럼 앞장서서 분열시키고 감시하는 공작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들이 아직도 통용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불교계에 거는 국민과 종도들의 기대가 크다. 이번 종단 개혁이 실패한다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기획 없을지도 모른다. 자정 능력이 없는 단체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종교가 스스로 정화 능력이 없다면 종교적 맹신과 집단의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국불교가 이 땅에서 민중의 등불이 되고 정신적 지주가 되려면 지난날에 대한 뜨거운 참회와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 힘들게 피운 개혁이라는 연꽃은 지키고 가꾸는 데에 모두가 동참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