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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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4년 06월 148호
어린 시절 한여름 뙤약볕에 얼굴은 땀과 먼지로 때 국물이 흐르고, 맨발에 신은 검정 고무신은 땀으로 미끈 거려 자주 벗겨진다. 동네 앞의 개천에 개구쟁이들이 모여든다. 하나 같이 촌티가 푹 배인 정다운 모습들이다. 적당히 물놀이가 싫증날 때쯤, 검정 고무신 한 짝은 손에 움켜쥐고 맑은 물 속을 무리지어 다니는 피라미를 잡느라고 해지는 줄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피라미를 장독대에 숨겨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피라미에게 문안이라도 하듯 들여다보던 풋풋한 기억이 있다.
이런 아스라한 기억은 초발심 자경문을 목청이 터지도록 외우며 분주하게 다니던 검정 고무신의 행자 시절로 이어진다.
소임을 다하려면 하루해가 짧아서, 저녘 늦게야 겨우 소임을 마친 뒤 검정 고무신을 벗어 보면 두 발이 매양 거뭇하게 물들어 있곤 한다. 그러다 보니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큰스님의 법문보다 달콤하게 들릴 때가 수없이 많다.
삼경 종성이 울리면 큰방에 질서 정연하게 잠들어 있는 행자들처럼 댓돌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도 가지런하게 숨을 쉰다.
객실 앞의 고급스런 가죽신과는 견줄 바 없이 볼품 없고 값싼 검정 고무신에서 수행자의 위엄을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제 도심에서는 구하기조차 힘든, 버림받은 검정 고무신.
잘 꾸려진 걸망을 메고 서걱서걱 소리가 나도록 빳빳하게 풀먹인 무명옷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단아한 모습은 이제 자취를 감추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