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도둑질한 공권력
총무원에 근무한 한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경찰과 기관원들이 벌써부터 서의현의 돈으로 후한 대접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이미 “공개된 비밀’ 이었으며 조계사 부근의 종단협의회를 비롯하여 몇 군데의 단체 사무실이나 다방에서 아예 총무원 내의 어떤 부서는 내놓고 그들의 편의를 봐주곤 했다. 여기에 답하기 위하여 경찰과 기관원들은 3월 29일 밤에 범종추측 스님과 신도들 사백여 명을 강제 연행하였다. 전경과 백골단이 쭈욱 늘어선 한가운데로 범종추 스님들을 끌고 가는 한편, 그 전경 대열 뒤편으로 는 3월 30일 날치기 종회가 무사히 열릴수 있도록 종회의원과 폭력배들이 청사에 무사히 들어가도록 도와 주었다.
최 장관과 김 청장의 억지논리로 ‘치안 유지 차원의 적절한 조치” 운운하지만 그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어리석음보다 더 무지한 짓이다. 상무대 비리에 얽힌 정치 자금의 핵심 인물인 서의현을 비호하여 어떻게든 총무 원장직에 더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을 뿐이지, 절대 그들이 치안을 걱정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청사의 쪽문으로 몰래 들어가는 종회의원과 폭력배들의 안전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권력의 철저한 도움으로 3월 30일 오전 10시 종회는 열렸고 각본대로 희대의 사기극이 진행되어 서의현은 차기 총무원장에 당선되었다. 종회를 무사히 마친 뒤 서울 시내 각 경찰서로 연행된 스님과 재가자 들이 하나 둘 풀려났다. 더 이상 잡아 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연행한 스님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모두 사법 처리하겠다던 검찰의 태도가 어찌된 영문인지 슬슬 숙어지더니 단 한사람도 구속됨이 없이 모두 석방되었다. 그토록 강경했던 태도가 유연하게 바뀐 까닭은 무엇일까.
4월 10일 전국 승려대회를 마친 뒤 총무원 청사에 진입하기 직전 우리는 종로 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원로스님의 몇 번에 걸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사에 남아 있는 총무원 직원들이 폭력을 사용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청사를 접수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그들이 청사를 비워 주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의 정당한 진입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는 이내 대규모의 공권력이 또 다시 사찰에 침입하였다. 철근을 자르는 절단기로 스님을 난타하고 쇠파이프를 꼬나들고 마치 창을 던지듯 스님을 향해 던지고, 곤봉과 방패로 찍어대어서 29일보다 더 많은 스님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 해인총림 방장인 혜암 큰스님을 비롯하여 원로 스님들이 경찰에 의해 강금되었다. 곁에 시봉을 들 시자조차 없이 강금 당한 상태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하였다. 한국 불교사에서 이런 수난이 있었던가.
경찰 병력은 4월 13일 새벽 1시에 전원 철수하였다.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주둔하겠다던 경찰이 그 전날 김도현 문화부 차관이 왔다 간 뒤 얼마 안 되어 철수하였다. 그리고 네 시간 뒤인 새벽 다섯 시 서의현은 사퇴하였다. 마치 잘 짜여진 수순인 듯이
책임자 처벌은 곧 자주화
한국 불교가 공권력에 의해 탄압 받은 적은 여러 번 있다. 1980년 ‘10.27 법난”이 가장 대표적이다. 오랜 종단분규에 종지부를 찍고 출범한 화합 종단을 신 군부의 정치적 야심의 희생물로 삼아 자행한 탄압이었다. 이 때는 종단의 열악한 상황과 일반 정세로 법난에 대한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86년 ‘ 9. 7해인사 승려대회”에서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화를 선언하면서 정부의 불교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다. ‘10.27법난’ 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이 승려대회 역시 공권력의 탄합을 당하였다.
개운사 입구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하여 네 명의 스님이 구속되었다. 87년 5월 광주 원각사 법당에 최루탄이 터지고 경찰이 난입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 봉축 제둥행진 때 번번히 공권력의 만행으로 정상적인 행진을 한 적이 드물다. 91년 초파일 때의 상황은 아직도 불자의 가슴에 상흔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6월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당시의 불교계 관련 공약사항을 위배하는, 특히 불교방송의 지방망 공약을 어기는 작태에 항의하여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민자 당사 앞 평화적 시위에도 경찰은 폭력을 가하였다. 또한 작년 7월 문화방송이 불국사 통일대종 관련 방송에서
허위 왜곡 보도한 사실을 항의하는 집회에도 경찰은 최루탄을 쏘는 등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심한 공권력의 폭력이 있었다.
이번 ‘법난”이 발생한 배경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 빈번하게 당하여 온 탄압에 대하여 다소 미온적인 대응을 한 원인도 있다. 물론 부패한 권력승이 오랫동안 종권을 장악한 탓에 종단적인 차원의 대응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권력의 불교탄압을 그냥 인내한 그 동안의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
따라서 이번에 자행된 ‘법난‘ 의 진상을 모든 불자에게 알리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운동은 그것이 곧 개혁의 한 과제인 자주화의 실천이 된다. 종단의 자주화 없는 개혁은 속빈 강정이다. 권력으로부터의 온전한 주체성 회복은 곧 민중의 불교로 바로서는 길이다.
우리가 공권력의 책임을 물어 내무부 장관과 경찰 기관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 몇 사람을 처벌하는 차원이 아니라, 바로 불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상을 제고하는 관건이며 나아가 다시는 공권력이 한국불교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쐐기를 박고자 함이다. 반드시 이번 법난 책임을 인정하는 대통령의 사과와 내무부 장관과 경찰청장 그리고 종로서장의 사퇴는 실현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