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고기를 먹는 고양이과 맹수이다.
호랑이 화석은 북극 지방에서만 발견되는데, 이 지방에서 차츰 남쪽으로 내려 온 것으로 생각된다. 열대지방에 있는 호랑이도 더위에 꼭 강한 것은 아니다. 못이나 시내에 들어가 몸을 식히는 일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도 호랑이의 기원은 추운 지방 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다가 사슴이나 멧돼지 따위를 잡는데 곧잘 사슴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서 꾀어 들이기도 한다. 또 침대 곁 족자 같은 데 그려진 호랑이를 자주 보는데, 용과 함께 있는 용호일 때가 많다. 이 때 호랑이는 거칠은 바람에 털을 곤두세우고 먹구름 속에서 나타난 용과 맞서고 있다. 중국의 “호랑이가 울어 바람이 드세지고 용이 일어나 구름이 생긴다? “구름은 용을 따라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에서 왔을 것이다.
또 모모야마(挑山)-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약 이십 년 동안-시대의 가노산라쿠(狩野山樂) 용호도에 암수 호랑이가 그려진 것을 본적이 있는데, 잘 보면 암놈은 표범이다. 그 때는 호랑이에 가까운 표범이 암호랑이로 여겨졌나보다.
「일본서기 日本書記」에서는 킨메이(欽明) 천황 6년 (545)에 씨와데노오미하테비(膳臣巴提便)가 백제에가서 호랑이를 물리치고 그 가죽을 벗겨 왔다는데, 이는 일본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또 헤이죠(平城) 천황의 셋째 왕자인 타카오카(高岳親王)는 부처님 말씀을 구하려고 인도로 가던 중 오늘날의 싱가폴 가까이에서 호령이에게 죽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맹수의 이미지가 강한 호랑이지만 「금강명경金光明經」 에서는 호랑이에 대한 자비가 설해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호류우지(法隆寺) 타마무시 탁자에 그려져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이야기가 그 탁자에 그려졌는지는 우메하라 타케시(梅原猛)가 지은 「숨겨진 십자가」에 나와있다.
왕이 세 명의 왕자와 함께 숲에 놀러와 즐겁게 놀았다. 왕자들은 여기저기 뛰어놀다가 커다란 대숲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왕자들이 대숲을 뺑뺑 도는데, 다 늙어서 새끼를 낳은 암호랑이 한 마리가 허기와 목마름에 지친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본 셋째 왕자가 말했다.
“저 불쌍한 짐승에게 먹일 좋은 게 없을까?”
첫째 왕자가 대답했다.
“호랑이가 먹는 것은 따뜻한 고와 뜨거운 피야.”
둘째 왕자는 호랑이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 말했다.
“이 호랑이는 허약해서 얼마 살지를 못할 것 같다. 누군가 자기 몸을 희생하여 저 호랑이를 구할 사람은 없는가?“
첫째 왕자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 목숨을 버리다니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셋째 왕자는 “우리들처럼 목숨과 몸에 사로잡혀 지혜가 들쑥 날쑥한 이들은 아직 못할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목숨과 몸을 버리기를 아까워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못할 일도 이니다.“
왕자들은 가엾은 생각에 그 암호랑이를 오랫동안 눈도 깜짝이지 않고 보고 있었는데, 그 때 셋째 왕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이야말로 내 목숨을 버릴 때이다. 몸은 똥자루에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데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이 몸을 뜻있는 일에 쓰자. 그러면 내 몸은 죽고 사는 큰 바다를 건너는 배가 될 것이다.”이렇게 마음을 먹자 그의 마음은 가장 고귀한 연민으로 가득 차 두 사람의 왕자를 앞서 돌려 보내고 호랑이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옷을 대나무에 걸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암호랑이 앞에 쓰러졌다. 그러나 암호랑이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그에게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자는 ‘호랑이가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못한다’ 고 여기고는 매우 날카로운 대나무로 자기 목을 찌르고 쓰러졌다. 그때 땅이 뒤흔들려 그가 한 일을 기렸다.
마침 그 때 어머니인 왕비는 귀여워 하는 비둘기 세마리 가운데에 한 마리가 매에게 잡혀 먹히는 꿈을 꾸었다. 이 지진에 놀라 혹시 아들 몸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나 걱정이었다. 시간이 꽤 늦어 두 왕자는 암호랑이가 있던 곳으로 가보았다. 그러자 셋째왕자의 옷은 대나무에 걸려있고 피투성이 뼈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까무라 하지메 편 . 윤상림 한글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