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납은 일찍이 출가 수행하는 사문은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언행을 질박하게 해야하며, 삿된 무리가 돌과 몽둥이로 위협해 올지라도 오직 인행시의 부처님을 생각하고 잘 침아 이겨야한다고 배웠습니다. 뜨거운 용광로에 자기 몸을 던지고, 가시밭을 맨발로 걸어가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절대로 삿된 무리와 어울리지 말며.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수록 복잡하고 혼탁해져 수행자가 자기 진실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많은 날들을 진실과 현실의 타협 앞에서 고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부모곁을 떠나 올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큰스님들의 아름다운 수행을 거울삼아 자기를 점검해 왔습니다. 큰스님께서도 젊은 시절의 왕성한 혈기가수행자를 얼마나 괴롭히는지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달리 산문 만나서면 젊음을 유흥하는 일들이 한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가할 때의 마음이 어느덧 퇴색되고 세속의 명리에 오염된 수행자도 없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 큰스님들의 불호령과 질책은 우리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같은 불호령이 절 집안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만일 이 같은 불호령의 가풍이 남아 있었다면 그 동안 서원장의 잘못에 젊은 종도들이 피를 흘리는 사태는 없었을 것입니다. 팔십억 원 상무대 비리와 종단 운영의 파행 그리고 종도들에게 조차 비밀로 한 채 강행한 삼선에 맛서 오로지 구종의 일념으로 법회를 하는 젊은 학승들을 폭력배를 동원하여 폭행을 저지르고 오히려 이들을 폭력배로 몰아부쳐 공권력을 불러 들여서 연행하는 따위의 못된 짓거리에 왜 철퇴도 불호령도 못 내린단 말입니까.
오히려 서암 노스님께서는 저희 종도들을 질책하시고 승려대회를 열지 말라는 교서를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도적보다 더한 서원장 을 두둔하고 나셨습니다. 소납은 그 교서를 받고 가슴 아팠습니다. 그 교서는 종정 예하로서 종도들에게 내릴 수 있는 교서가 아닙니다. 저희들이 그 교서로 얼마나 실망하고 마음에 타격을 입었는지를 아시는지요.
노스님의 교서가 발표되자 신문에는 종정이 일관성이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서는 노스님의 생각처럼 서원장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신문을 통하여 종도들에게 알려진 그 교서는 오히려 종도들의 마음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분노하게 했습니다.
4월 10일 승려대회에서 서의현 원장의 체탈도첩이 결의되고 서암노스님의 종정 불신임이 결의되었습니다. 대중은 내심 분노하고 있던 터라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무도 종단의 최고 어른이신 종정 스님을 불신임해서야 되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노스님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이 컸던 것입니다.
아마 이 땅의 불교 역사에 종정예하가 승려대회에서 전종도의 이름으로 불신임을 당한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다시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소납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 교서가 정말로 서암 노스님의 진실이었을까? ‘여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을것” 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아직도 노스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승려대회 뒤 4월 13일 범불교도 대회는 조계사 도량이 터져 나가도록 모인 큰 법회였습니다. 이것은 불교 대중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법회였습니다. 그런데 서암 노스님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종정의 교시를 무시하고 연 승려대회는 인정할 수 없다. 종정 불신임도 받아들일 수 없다‘ 는 요지의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자회견은 노스님에 대한 마지막 기대감 마저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봉암사에서 노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했고. 그보다 앞서서는 노스님이 봉암사 조실로 오시기전인 원적암에서도 모시고 살았던 납자입니다. 평소 노스님이 검소하고 근면함을 잘 알고 있는 소납은 언제나 마음의 스승으로 존경하였습니다.
이번 구종법회를 준비하면서 저희들은 여러번 노스님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혹시 종단을 향한 구종의 젊은 혈기가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중차대한 일을 하면서 종단의 최고 어른이신 종정예하의 사전 승낙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 때마다 노스님은 저희들보다 오히려 한 발 앞서가 있었습니다. “종단이 이렇게 된 것은 젊은 사람들이 무능해서 그렇다. 젊은 사람들이 횃불을 밝히면 삿되고 어두운 것은 일시에 사라진다 하며 격려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구종법회를 시작하고부터 노스님은 차츰 태도를 달리 하시고 서의현 원장 편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구종법회를 하는 동안 줄곧 노스님에 대한 해괴망측한 유언비어가 떠돌기도 했습니다. 노스님이 서원장에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로 발목이 잡혔다는 것입니다. 소납은 지금 노스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유언비어는 믿지 않습니다. 아니 믿고싶지 않습니다. 일평생을 수행해 온 산승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왜 종도들의 뜻에 반하는 교서를 내렸는지요. 그것이 서원장을 편들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서암 노스님의 확신이었습니
까. 그도 아니면 세상물정이 어두워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까.
수행을 많이 한 고승을 일러서 안목을 갖춘 분이라고 소납은 알고 있습니다. 도가 높운 분의 열린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활안 이라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진정 불교가 현실을 벗어나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활안 종사란 바로 인간 현실과 삶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는것 입니다. 그렇다면 노스님께서는 한때 잠시나마 조계종단을 대표하는 종정예하이셨으니 종사가 아니셨던가요. 그렇다면 마땅히 활안을 가지셨을 것인데 어찌하여 사물의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셨습니까. 아니면 안목이 없는데 종정 자리를 차지한 것이였던가요. 아직도 공부가 미진한 소납으로서는 자못 눈앞이 아득하
여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