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새긴 비신을 잃고 엎드려 있길 천년
부도 옆의 비신은 깨뜨려져 형체도 없고 그 조각 부스러기들만 여기저기 나돌아다니는 탑비, 사연을 말하려는듯 천 년을 엎드려 그대로 그 자리에 ‘쌍봉산고철감선사합비명” 이라고 그 주인을 밝힌다. 왼발을 땅에 박고 오른발을 살짝 들어 전진하려는 역동적인 자세에서 당시 사회에 등장한 선종이라는 새로운 종파의 진취성을 느끼게 해준다 보물 제 170호로 지정된 이 탑비는 전체 높이가 1.4미터에 달한다.
이수 윗쪽에 주광형 귀꽂이 세 개가 날렵하게 솟아 있는데 그 가운데에 오른 편의 하나는 구멍만 뚫려진 채 없어져 버렸다. 구명 주위가 많이 닳아 있어 단순히 별도로 제작해 박은 것만은 아니고 어떤 신앙적 행위의 흔적으로 보인다.
철감 선사 도윤의 부도와 탑비가 언제 무슨 이유로 도괴되고 망실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957년에 도괴된 부도를 다시 짜맞추었다고만 전할 뿐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고증이 어렵다. 아마도 일제시대에 사리장치 절취와 비문의 의도적 파괴를 목적으로 한 일본인들의 만행이라는 심중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목탑 대웅전 주변의 통일신라시대의 기단석
오던 길을 내려와 목탑 양식의 대웅전 뒷편의 반듯한 기단석에 눈이 머문다. 목탑 아래에도 같은 재질의 기단석재가 놓여 있어 부족하지만 아마도 철감선사 당시나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목탑과 그 주변의 기단석재를 이용한 다른 건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어 이 기단석재의 발견은 이번 답사의 최대수확이었다.
목탑 뒷편의 기단석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구례 화엄사 석탑의 뒷편에 보이는 축대와 같은 성격일까. 아니면 뒷편의 초과 관련 있는 기단석일까. 이 자리가 본디의 위치일까.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쌍봉사 정밀 지표 조사의 일환으로 연못 터를 중점적으로 발굴 조사한다고 하니 여기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으나 여기에도 전공자가 딱히 없으니 주문만 무성할 뿐이다.
앞으로 쌍봉사를 복원하려면 일제시대의 사진 자료인 「조선고적도보」 를 가장 귀중한 자료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호성전, 극락전, 오백전, 대웅전 등의 여러 전각들 사진이 실려 있다. 그리고 현재 절 여기저기에 초석들이 보이니 좀더 면밀한조사와 주변에 지금까지 알려진 동암과 백련암 등의 암자 터에 대한 조사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절을 나서려니 공양 소임을 맡고 있는 보살님께서 송광사의 큰스님이셨던 구산스님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 준다. 이곳 쌍봉사에 보관되어 온 업경대가 조각이 뛰어난데 이를 도난 당하자 구산 큰스님께서 당시 주지를 불러다가 주장자로 내리치시며 무척 혼을 내셨다고 한다.
증축 불사의 페단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이 나라 불교계에 큰 사건이 터졌다. 서황룡(의현)이 전횡하던 조계종 총무원의 실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성철 큰스님의 불교의 위상이 다시 천길 벼랑끝으로 떨어져 버린꼴이 되고 말았으니 부끄럽고 낯뜨거워서 어디 돌아다닐 수가 없다.
한국불교의 고질적인 병폐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80년대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한 부동산 졸부들의 출현으로, 이들의 부도덕한 재화가 종교계에 흘러 들어와 사찰의 무분별한 증축 불사가 이루어졌고 이와 함께 옛 절터의 파괴와 기복 신앙과 사리 신앙의 폐단을 낳았다.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에 빌붙어서 살아온 묵은 환부, 가뜩이나 부족한 자기 종교의 역사를 밝혀줄 구체적인 자료들이 옛 절터의 초석이나 축대 하나에도 담겨 있는데, 증축
공사를 한답시고 깡그리 중장비로 걷어내는 뱃심은 오십년대 정화운동 때 배운 솜씨인가 모든 불사가 다 그렇듯이 외상 불사라 일을 벌여 놓아야 시주를 받을 수 있고, 주지에 임명해 준 분께도 도리는 해야겠기에, 또 언제 주지를 내놓게 될지 모르니 개인 절도 하나 이 기회에 마련하여야 하는 큰절 주지는 임기 동안 무척 바빠 코빼기도 볼 수 없다.
몇 차례 거론한 증축불사 폐단의 원인 제공자인 서의현의 행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 동안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고증한 일이 없었다. 그는 이른바 정화 운동이 시작되던 1952년에 사미계를, 정화가 한창이던 1955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오백 명이던 승려의 숫자가 정화때에는 이천 명으로 급증한 시대로 그의 출신 성분이 어떻든 간에 초발심때부터 모든 일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모습만 보아왔을 터이니 , 조계사에 폭력배를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현 집권층의 돌봐 주심이 있기에 더더욱 정화 때에 보여 준 전통적인 방법조차도 거추장스러웠던지 깡패들을 승복조차도 입히지 않고 백주에 벌인 그 무술극은 이제 조계사를 소림사로 바꾸어 불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소림사 측에서 이 일을 알면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 그 말은 취소이다. 소림사 무술과 조계사 폭력배의 난동은 그 수준 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선방에서 참선하던 때의 서의현의 모습은 그도 어느 선승처럼 해맑은 얼굴 이었으나 지금의 얼굴은 그야말로 돈과 권력과 지위에 연연하는 아귀상이다. 본사주지 시절에 개인 절 하나 못 지은 스님은 바보라, 너나할것 없이 시주 돈 떼다가 개인 불사에 혈안이 되어 버린 작태어디까지 갈 것인지. “공부만 제대로 하십시오 무슨 절을 새로 짓는단 말입니까. 전국에 빈 절이 수두룩한데 저라도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하던 어느 암자 보살님의 맑은 목소리가 생생하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알게 모르게 아집에 싸여 있는 줄 잘 안다. 역사라는 아집으로 요즘같은 경제 성장시기에 과거의 역사를 밝히는 일이 뭐 좋은 일이라고 새 절 짓고 모처럼 불교 중흥을 맞는가 싶은 시절에 기와조각부스러기나 해 들고 이 절의 역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성에 안찰게 분명하다. 혜암스님 같은 분이 역사상 어떤 명가를 받아야 하는지 이 시대에 묻고 싶다. 내 아직 불가에 연이 남아있다면 혜암스님께 출가하고싶다. 이제 총무원장도 사퇴했고 종정도 직을 내놓고 종단을 떠난다니, 이 기회에 우리 불교도 거듭나야 한다. 도시로만 몰리던 승려는 이제 선방으로 강원으로 돌아가고 사판승은 돈 만지던 손을 거두고 부처님 시대의 법인 우바와 우바새를 포함한 사부대중과 함께 중지를 모아 사찰을 이끌어 가야한다. 필자가 몇 년 전에 기복 신앙과 시리 신앙에 대해 발표한 글을 소개하면서 이번 쌍봉사 기행을 마무리 하고싶다.
기복신앙 유감
전국 명산 대찰 어느 곳에서나 영험하다는 소문만 있으면 벌떼처럼 모여드는 수많은 아주머니들의 행렬, 수상기에 잠깐 비쳐진 적이 있던 영험하기로 소문이 난 서의현의 대구 동화사 소속 팔공산 갓바위 등 효혐의 실증적 자료도 없는 무분별한 기복 신앙이 문제다. 물론 그 아주머니들의 아들, 딸들은 후기 대학 입시와는 별 관계없이 영험한 돌 부처님의 덕에 전기대학에 너끈히 합격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나, 그 돌 부처님들이 요즈음 아주 한가하다고 한다.
소속 절에 연대가 좀 있다 싶은 부처상은 약사불어나 관음보살로 둔갑시켜 남편의 건강과 자식들의 합격이라는 보증수표를 발행하여 조성 당시의 사상적 배경에는 관심 없고, 그저 벌기만 하여 주는 보살님들의 덕에 모은 돈으로 건물을 늘리기에 바쁜 우리 승려들.
옛 절터를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로 파고 밀어서 평평하게 만들어 새 절 짓고 기동력 좋은 자가용을 구입하여 법당 앞 마당까지 차가 쑥 들어갈 수 있도록 길도 닦고, 문제가 생기면 공사중에 주워 놓은 기와나 도자기로 입막음을 하고, 우리 불교계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청담스님에 의해 잘못 정화된 바람에 진정 대처를 몰아내려고 큰 도적을 불러들이는 꼴이 되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이러한 문제는 깡패 중들이 들어와서 혁혁한 전과를 바탕으로 선방은 멀리하고 사람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지 출몰하여 그들이 가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이제는 나이 들어 큰스님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연유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우리 어머님들의 기복 신앙이 더 큰 문제이다. 남편들은 회사 일로 바빠 거들떠 보지도 않지,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지, 아이들은 커서 어미와 놀아 주지 않지, 시간은 남아 돌
지, 하루 온 종일 시주님들의 심리만 연구하는 스님들의 유혹에 벗어날 방도가 없을 것으로 동정은 간다. 그러나 방생 불사니 , 개금불사니, 기와불사니 히는 이름도 오묘한 복 짓는 불사는 왜 이리도 많은지, 돈만 있으면 지옥갈 사람하나 없겠다 싶을 정도이다.
적막한 산중에 앉아 그 이름도 유명한 선배 고승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찾아오는 시주자들 호주머니를 가늠하는 승려들의 눈에 돈 없는 보살은 성도 안 찰 것이고 부유한 마나님만 편애하는 큰스님들 법력에 공양간에서의 다툼도 만만치 않다. 이 땅에 유마거사 같은분 한분도 나지 않고, 어쩌다 온 달마는 기어코 서쪽으로 가고 말았다.
사리천국
“사리는 혈액의 응고체나 담석의 일종으로 보인다”
“무슨 소리냐. 신성한 사리를 모독해도 유분수지 석가모니가 담석증 환자란 말이냐?“
이 이야기는 모 텔레비전 건강 프로그램에 방영된 내용과 이를 접한 불교계의 반발이다. 글쓴이는 불교 미술사 공부로 법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절 집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자연 이러한 사정을 접하게 되었다.
요사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다비식 장면 또한 그야말로 의문 투성이다. 잿더미를 젓가락으로 뒤져서 사리를 찾는 모습인데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근래의 스님들은 열반했다 하면 의레사리 몇 과는 나오고 이를 친견하려는 신도들로 일대 북새통을 이루니 그야말로 사리천국이다. 예전에는 큰스님이 열반하셔도 사리가 나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한번은 어떤 절에서 모시던 큰스님에게서 나온 사리로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많은 풍요를 누린 적이 있었다. 그 뒤 자기가 시주하던 절의 큰스님이 돌라가신 뒤에 사리가 출현하지 않으면 절까지 바꾸는 신도들이 나타났다. 이처럼 이제 일반불자들에게 조차 사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기복 신앙의 절정을 이루었다. 해서 이를 염려한 노스님의 열반송 중 내가 죽으면 사리 따위를 찾으려 하지말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리 출현 유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투기로 돈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특히 “산중 깊은 곳에서 수도만 하던 스님에게서 나온 사리가 오늘날 이 사회에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라는 논리를 낳을 만큼 사리 신앙이 사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사리 수습 과정이다. 보통 열반 때에 하는 다비식에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쌓아 놓은 장작개비와 그 위에 올려 놓는 시신 정도가 고작이다. 그 뒤에 사리를 수습하는 절차가 있는데 여기에는 상좌 중에서도 핵심 인물들만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무에게 나 공개하지 않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무엇을 염려해서 일까. 사찰 규모가 방대해지면서 신도들의 시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방만한 사찰의 경제 구조에 연유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기복 신앙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신도들의 신앙 행태가 좀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영광 불갑사에 계시는 수산스님은 “사리라고 하는 것이 본디 오방수에서 출현하는 것이지 잿더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며 사리 수습과정을 회고 하신다. 화장을 하려면 먼저 오방수 단지를 설치해야 하는데 두 자쯤 깊이로 땅을 파고 거기에 단지를 오방 곧 네 방향과 중앙에 놓고 물을 가득 채운 뒤 그 위에 돌과 기와 또는 흙으로 두렵게 쌓아 올려 불 기운에 의해 단지가 깨지지 않게 잘 단열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올려놓고 불을 넣는다. 겉 불이 붙지 않게 가마니나 물로 주위를 촉촉하게 하여 속불이 잘 타게 한다. 불기운이 완전히 사그리진 뒤에도 여전히 화기가 강하여 하루 이틀은 그냥 보내야 한다. 완전히 식었을 때 숯더미와 유골 부스러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방수를 꺼내 그안에 사리가 있나 없나 본다. 사리는 물을 찾는 성질이 있어 간혹 늦게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오방수 단지는 잘 간직해야 한다. 사리는 현상적인 지위 고하와는 무관한 것으로 큰스님들 뿐만 아니라 산중 처사라도 오방수는 꼭 설치 했다고 한다.
헌데 사리를 잿더미에서 찾기 시작하는 행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정화바람에 대거 등장한 깡패 중들이 좀처럼 뵙기 힘든 사리를 찾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부리는 것은 그들이 다비식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사찰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사리가 혈액의 응고체나 담석의 일종이라는 의학계의 성분 분석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는 꼴이다. 이러한 논박에 대해 불교계는 ‘내공의 결정체’ 라는 기존의 이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불자들이”NASA” 에 의뢰한 석가모니 진신사리의 성분 분석 결과를 즐겨 언급한다.
“사리는 극양의 물질로서 원소를 규명할 수 없고 금강석 보다 더 단단하다”고공신력 있는 나라와 기관이 분석해 준것을 마치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사리와 유골 부스러기도 구분 못하는 아수라장이다.
이 태호 •황호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