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예단과 전문성 부족
또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은 역시 기자들의 예단과 전문성 문제였다. 기지들이 전문 지식이 취약한 데다 취재원 마다 말이 틀리고 정보에 대한 비중이나 신뢰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오히려 섣부른 예단 기사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승려대회 참가 인원이 전체 승려 숫자의 과반수를 넘어야 하지 않냐는 따위의 억지가 자연스럽게지 않냐는 따위의 억지가 자연스럽게 기사에 인용되고, 서원장 사퇴 발표 이후에는 마치 모든 사태가 끝난 듯 때 이르게도 차기 총무원장에 대한 기사 등 개혁을 지향하는 불교계 정서에 걸맞지 않는 기사감을 선택함으로써 종단의 실질적 개혁 작업을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게다가 많은 기자들은 법난이나 불교관계법 등 불교 역사나 종단 구조 등에 대해 지나치게 어두워 기사를 발로 쓰기는 커녕 귀로 쓰기에도 바쁘기만 했다. 여기서 불교계 언론이 단단히 한몫을 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간 종단 기관지 「불교신문」은 종단 사태 때마다 그렇듯이 사태 중 발행이 완전 중단되었고, 재야신문인 「법보신문」은 발행인이 사태에 관련되어 발행이 중단 되었지만 기자들끼리 「편집국 뉴스」를 발행해 개혁의 물꼬를 트는 데 일조를 했고, 일반 일간지 기자에게 불교개혁의 당위성과 종헌종법, 문중 인맥 등 문종의 전문지식 전수에까지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해동불교」와 「주간불교」도 이번이 종단개혁의 호기임을 강조했고 「승가대학신문」도 뛰어난 순발력을 과시하여 선도적 역할을 했다. 처음에 서 전원장을 두둔하다가 승려대회를 앞두고 개혁 세력에 동조한 「불교방송」도 뒤늦게 나마 재가 불자들의 호응을 받아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기자들의 예단과 전문성 부족현상은 데스크나 논설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작해야 “싸움을 그쳐라, “염불엔 마음이 없고” 따위로 안이하게 논조를 이끄는가 하면 심한 경우 일선 취재 기자의 기사조차 읽지 않은 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자신의 관념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기자의 전문화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이번 조계종 사태가 웅변해 준 셈이다.
아무개 승려라는 표현의 등장
이번 사태에 임하는 언론 보도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으로 스님과 승려 두 가지 표현의 혼용이 있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두어 군데 신문에서 다룬적이 있어 자세한 출처는 생략하겠지만 승려 아무개씨라면 차라리 모르겠지만 이무개 승려라는 표현은 이무개 사람처럼 아무래도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사실 승려라 함은 반드시 불교의 성직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독교계나 회교계 등 모든 종교의 성직자를 뭉뚱그려 나타낸 표현일 뿐이다. 님” 이 들어갔으니 존칭이고 그 존칭을 이교도에게 붙일 수 없다는 타종교 언론인이나 독자들의 정서와 특정 종교의 승려나 저질 승려를 스님이라 호칭해서 되겠냐는 일부 언론인의 정서가 이 같은 현상을 일으킨 요인으로 보인다.
신문에서 살펴보면 「ㅎ신문」 과 「ㄱ신문」이 제목과 기사에서 모두 ‘스님’으로 일관한 반면 「ㅈ일보」, 「ㄷ일보」,「ㅈ일보」, 「ㅎ일보」는 제목이나 사진 설명에선 승려, 기사 내용에서는 스님이라고 표현했다. 「ㅈ일보」의 경우는 종교를 달리하는 성격이 명료한 탓인지 제목이나 기사에 관계없이 원로 스님을 비롯한 누구에게나 시종일관 아무개 승려”를 고집했다. 그러나 역시 특정 종교가 발행하는 「ㅅ일보」 는 오히려 다른 신문들보다 유연성을 갖고 표현에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나님” 은 하나 의 존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고유명사이다. ‘스님”이라 불러서 손해 보는 듯한 심리가 바로 독선과 편협에 빠져 있는 종교인과 언론인의 ‘탈 벗긴 얼굴’ 에 다름 아니다.
언론의 사명의식 아쉬워
이번 조계종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보도지침’ 시절의 관습이 아직도 언론계에 남아 있음을 엿보게 했다. 양 비론적 기회주의에 젖은 눈치 논조, 수박 겉 핥기식의 무지한 보도는 언론을 목탁이기 전에 또 하나의 폭력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기자’는 결코 ‘기는 자‘여서는 안 된다. 또 ’속이는 자‘ 여서도 안 된다. 권력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무지함에 겸손할 줄 모르는 언론은 이미 목탁이 아니다. 고위층보다는 국가를, 작은 독선보다는 큰 포용력을 먼저 생각할 줄아는 언론만이 민족의 미래에 책임을 지는 제4부의 자격을 지닌다.
정부도 정권 유지 차원에서만 문제를 풀어 왔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떤 단체, 어떤 개인의 후퇴도 그것은 나라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나라 안 모든 구석의 개혁을 정부와 언론이 외호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는 절간에서 폭력배가 날뛰거나 공권력이 제멋대로 편들기를 삼가토록 해야 한다. 불교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불교는 이 땅에서 단순한 하나의 종교이기 이전에 민족자주의 보루이고 국익의 파수꾼이며 문명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정치계와 종교계 못지 않게 오늘의 언론계는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수준을 규정짓는 바로미터이다. 이회창 전 총리가 마지막 던진 말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지금 개혁하지 못하면 국가는 어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