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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조계사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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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형균 1994년 05월 147호
장하시어라, 우리 스님들
개혁의 태풍이 지나 간 조계사를 거닐며, 나는 무차별한 폭력에 희생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 스님을 생각했다. 구종법회와 승려대회, 그리고 범불교도대회의 열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아직도 바람벽을 가득 메운 현수막과 대자보를 보며 이제는 불가의 큰 기둥이 되어 버린 비구니 스님들의 장렬한 투쟁 모습을 떠올렸다.
새롭게 마련된 개혁회의의 사무실마다 흰 종이 위에 먹글씨로 쓴 부서명의 상큼한 모양새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개운사, 조계사, 대각사로 이어지는 개혁의 현장에 늘 계신 원로 중진 스님들의 믿음직한 모습이 향기처럼 떠오르며 그 참담하고 처절했던 폭력배와 경찰에 의해 빚어진 대법난의 아픔을 씻어 준다.
개혁의 포문이 열린 것이다.

4.10승려대회는 ‘혁명’ 이었다
모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금번의 불교개혁을 4.19혁명에 견주고 있다. 삼선독재의 모양과 공권력의 일방적인 비호와 깽패 동원 따위의 외형이 4.19 당시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누적된 부조리와 독재를 종식시킨 전국 사부대중의 함성과 몸을 던져 투쟁한 무사 無邪의 정신이 4.19 정신에 견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식 있는 소장급 스님들에 의해 꾸준히 진척되던 개혁의 바람이 마침내 종
권 연장을 꾀하는 전 집행부의 ‘짐승 같은 욕심”을 보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뭉쳤던 것이다.

그 ‘뭉침”실로 위대했다
토굴에서 수염 더부룩한 스님들도 오셨다. 시골 조그만 사찰에서 오신 앳된 비구니 스님의 함초롬한 모습도 보였다. 시국에는 통 눈길을 돌리지 않던 큰스님도 발걸음 하셨다. 무려 이천여 명의 스님이 오셨다. 스물여 개의 재가불자단체 연합도 깃발을 높이 들였고, 언제나 먼발치에만 있던 원로학자 둥 지식인 그룹 사백십구명도 동참했다.
이십 년 동안 언론 출판계에 몸담아오면서 볼 수 없던, 아니 앞으로도 평생보지 못할 것 같은 그 산맥이 툭 불겨져 오른 장한 불가를 보며 나는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감동에 떨었다. 4월 13일은 혁명이 이루어진 승리의 날이 되었다. 일만 명이 넘는 “불교 개혁의 주인공” 들이 조계사 경내에 가득했을 때, 서원장이 물러가고 경찰 병력도 물러 갔을때, 거기서 나온 외침은 이들의 것이다.
‘이제 한국 불교는 착한 이들의 것이다‘
‘다시 태어나라 장하고 늠름하게’,
이제, 나쁜 마음은 발 붙일 곳이 없다. 비가 오려면 구름이 모이고, 구름이 모이려면 바람이 불어야 한다. 개혁의 빗줄기는 그런 조짐과 조짐이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많은 시간을 기다려 왔다.
사심을 가진 무리들이 정권의 시녀가 되고 또 그 비호를 받으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 갔다. 권승의 무리들이 많아지고 부조리에 야합하는 행태가 범람했다. 도道가 일 척이 자라면 마魔는 일 장 이컸다. 주지 임명권이 악용되고 정재가 쓰여져서는 안될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불교는 깨끗하나 종단행정은 더러웠다. 출가는 위대하나 권력과 돈을 쥐면 먹물 옷의 색깔이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불교는 그래서는 안된다. 스님은 그럴 수가 없다.
혁명의 밑바탕은 바로 그것이었다. 부처님의 지혜는 늘 변함없고 수행의 길은 예와 다름없다. 거기에는 혁명될 한 조각의 걸림돌도 없다. 오직 불가의 위상과 재물을 이용한 ‘잘못된 생각’ 에 있다. ‘착하지 못한 마음‘ 에 있다. 등넝쿨처럼 만연한 잘못된 생각의 개혁, 착하지 못한 의식의 상식화가 개혁의 초점이 된다. 이제 불교개혁은 종단의 개혁, 곧 종무행정과 법령을 탈바꿈시키며 잘못된 사람의 개선을 이루는 ‘의식의 개혁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종무 행정, 그 업무를 수행하는 스님들, 더러운 이는 스스로 부끄러워 마음을 씻는 모습들, 이것이 방방곡곡에서 대나무 순처럼 자라 난다는 얘기이다. 불자인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밥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돌보다는 쌀이 많다. 일천육백 년의 우리 불가가 그렇다. 우리 스님네가 그러하시니 동녘은 이미 밝았으니, 개혁 와중의 곤난함은 적지 않을지나 필연의 수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쁜 마음. 나쁜 행동은 발붙일 곳 없
는 동네, 우리 불가의 모습이다.

재가 붙자는 순수 믿음으로 자정 自淨 하자
그러나, 정작 험난한 길, 넓은 사막이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은 재가불자의 개혁이다. 스님들은 법맥이 있고 문중이 있고 위계 질서가 있다. 그 어느 종교의 성직자도 갖지 못하는 큰 조직적 흐름이 대를 이어 지켜지는 것이 출가사문의 독특한 위상이다. 그 질서에 의해, 오랜 전통의 전승에 의해 출가사문의 개혁은 봇물을 텄다. 재가자는 그러하지 못하다. 눈앞의 편의에 따라 감정에 따라 이합지산하며, 신행의 형태도 다양하고 사고 방식도 서로 다르다. 서로간의 횡적 유대도 미약하고 위계 질서에 순응하는 조직력도 체질화되어 있지 못하다.
사찰 중심이거나 또는 특정 스님 중심의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홀로 공부하거나 수행하며 조직을 기피하는 성향도 상당한 숫자이다. 기억 하건데 지금까지 신행 단체가 상호 협의체를 이루어 불가의 제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한 적이 없다. 몇 개의 단체가 모인 적이 있지만 그리 오래 결합체를 이끌지 못했다. 금번 개혁의 기간 중 재가불자단체 연합 이 그만한 수준으로 연합을 이룬 것은 비록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개혁 과정의 어려움 속에서 큰공을 세운것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제 해 재가 불자들이 해야 할 일, 그것은 사심이나 명예욕아 없는 순수 믿음의 신행 생활과 그러한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야 한다는 두 가지 큰 명제에 직면한다. 스스로 믿음의 생활을 깨끗이 하고, 잘못된, 부도덕한, 삿된 소견과 언행이 사라지도록 불가의 주변을 자정 自顆해야 하는 자리이타의 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불교 개혁의 상황적 당위성을, 시대적 필요성을 범국민적으로 계몽해야 할 때다. 그것이 불법을 따르는 일이고 종단을 호법하는 것이며 개혁에 동참하는 중요한 몫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단체들이 스스로 힘을 모으고 자연스런 성징을 이루어 훌륭한 단체와 지도자가 탄생해야만, 그들에게 사부종단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지금 당장의 돌발적인 대표 단체 구성은 일부 지도자에 의해 편향적으로 될 소지가 많으며, 그로 인해 반발하는 세력이 커지는 까닭에 얻는 것이 하나라면 둘을 앓는 무리수가 된다. 아울러 스님들 사이에서도 분규의 소지가 되어 오히려 개혁의 화합적 흐름에 걸림돌이
될 염려가 많다. 곧, 재가 단체들은 부조리하고 허약한 취약점을 보완하는 지청의 노력이 첫째이고, 불자들은 스스로의 신행을 삿되지 않게 명리에 탐하지 않는 깨끗함으로 정화하고, 주위의 도반들과 힘을 합하여 그러한 물결이 널리 퍼지도록 함이 둘째이다. 전국의 사찰에서, 스님들 사이에서 범종처럼 울려 퍼진 개혁의 기운이 도량에 가득하여 구석구석을 청정케 하고, 그 향기가 넘쳐 흘러 일주문을 지나 세간으로 퍼져 불자들을 정화하고 뭇사람을 제도하는 그러한 때가 왔음을 믿는다. 그것이 가치 있는 믿음이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