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출가, 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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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전미란
1999년 08월 210호
일상 속에서의 탈출! 생활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나 또한 답답한 도시와 쉼 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해인사 수련회에 참석하였다. 늘 무엇에 쫓기는지도 모른 체 자 신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기 힘들었는데, 가야산의 품에 안겨 잊고 있던 나를 찾아보리라는 기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인사에 첫발을 디디면서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가야산의 빼어난 경치에 둘러싸인 사찰의 정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고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다운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싱그러운 산 내음과 더불어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도시 속에서 느끼던 답답함을 한 순간에 말끔히 해소시켜 주었다. 편안함 자체로 다가오는 해인사의 모습에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수련회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수련회는 예상대로 힘들었다. 스님들과의 첫 대면부터 조금 딱딱했고 수련기간 동안 지켜야 할 규칙들이 긴장감을 주었다. 늘 치수하고 묵언할 것, 놀러 온 것이 아닌 이상 뜻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내 자신을 다독거렸다. 속세와 연계되는 모든 물품은 따로 보관하고, 사찰에서 제공하는 옷과 고무신을 착용하고 나니 마음가짐이 확고해졌다. 많은 사람이 똑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고자 하는 볼자로서 모두 한 뜻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참가자 가운데 눈에 뜨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피터라는 외국인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그 혹인은 외모부터 눈에 띄었고, 참여할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다.
4박5일이라는 수련회 기간 동안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수련회를 끝마치고 온 내 머리 속을 한동안 꽉 채웠다. 가장 분명히 깨달은 것은 사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바루 공양을 할 때 처음에는 속이 울렁거리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차례 바루 공양을 하고 나니까 어차피 모두 먹는 음식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쌀 한 톨, 김치 한 쪽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지저분하게 여겨지던 양념들도 기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다. 참선할 때도 마찬가지 였다. 하루 다섯 시간밖에 잠을 못 자니까 졸음이 몰려왔고 자세를 올바르게 하려고 해도 저려오는 다리와 욱신거리는 어깨와 허리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차츰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니까 30~40분쯤은 한결 같은 자세로 참선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적용력의 대단함과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수련회 기간 중에 가장 큰 수확은 천팔십배를 해냈다는 사실이다. 조금 빼먹기도 했지만 백팔배를 하는 것이 고작이던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는 아니지만 웬만큼 성취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내게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스님들과 마주보며 절을 했기 때문에 다 채우지 못한 빚을 진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그 생각이 앞으로 용맹정진하는 데 있어서 채찍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였다. 또 ‘부모은중경’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부모은중경을 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깊숙이 와 닿았고 다시 한 번 부처님의 큰 가르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해인사 수련회는 마음속을 풍요롭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 눈에도 아름다운추억을 남겨 주었다.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예불을 드리려고 좌복을 들고 정렬할 때 무심코 본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하늘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까만 하늘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의 속삭임, 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이렇듯 여러 가르침과 추억을 준 해인사를 떠나 갖가지 소음으로 얼룩진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가슴한 구석이 답답하다. 오랜만에 맛본 마음의 여유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 숨쉬는 자연과의 이별 때문인 것 같다. 이 답답함을 풀어 줄 한 한금의 약수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