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무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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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4년 05월 147호
산길을 걷다 간혹 무성한 잡초 속에서 몇 포기의 율무나무를 발견하곤 한다. 행자 시절 노스님 뒤를 띠라 산보 길에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그 자리가 중 무덤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살아서는 상투가 없고 죽어서도 무덤이 없는 것이 중이라는데 , 중에게 무슨 놈의 무덤이냐 가당찮다 싶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옛날 스님들이 만행 중 겨울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동사한 자리이거나, 토굴에서 정진하다 양식을 구하러 먼 마을까지 가서 탁발을 해 걸망을 메고 산비탈을 오르다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변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정에 의한 죽음도 있었겠지만, 그 이듬해가 아니면 다음해라도 죽은 스님의 목에 걸고 있었을 율무 염주가 사체와 썩어 내리면서 싹을 틔우고 몇 포기씩 자리나 여름 잡초 속에서 흰 꽃잎을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은 금강주나 월성주에 밀려 구경하기가 어렵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조그만 대바구니 속에 또아리를 틀 듯 삼천 주의 참회용 염주를 율무 열매로 만들어 법당탁자 한쪽에 비치하고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가 있었다. 놀라운 일은 율무의 발아 능력이다. 몇 년을 몸에 지녔는지 모르겠으나 그 스님의 손때와 몸기름에 쩔 대로 쩔어 들기름 먹인 장판지처럼 반질반질 윤이 났을 터인데 어떻게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어른 키에 버금갈 만치 자라서 중 무덤을 가리키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