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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도인 우화 노스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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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장일기 - 효림 1994년 04월 146호
우화 노스님은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노스님이 계신 다보사는 그렇게 큰절은 아니다. 그저 대중 대여섯 명쯤 조용히 살만한 곳이다. 그러나 이 곳 다보다사는 현대의 고승되시는 스님들 여러분이 젊은 시절 한때 살다간 유명한 도량이다. 인천 용회사의 전강田崗 조실 스님과 종정을 역임하신 고암스님 등이 그분이다. 가끔 노스님은 ꡐ스님들, 고암古庵스님 지금 어디 사는지 아는가요?ꡑ 하고 물으신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ꡐ이 절은 본디 고암스님이 주지인데 나한테 주지를 하라고 해서 내가 안 한다고 했더니, ꡐ그러면 내가 다른 데 가서 한철만 살고 올테니 그 동안 잠시 스님이 살림을 맡아가지고 계십시오ꡑ 해서 지금까지 살림을 맡아 살기를 벌써 몇 십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안 옵니다. 혹시 이 다음에 만나면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주시오ꡓ 하시는 것이다. 또 전강스님 이야기가 나오면 ꡒ그 스님 내 돈 빌려 가셔 몇 십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안 갚아 줍니다ꡓ 하며 매우 서운해한다. 사연인즉 우화스님이 돈을 절약하고 안 쓰는 줄 알고서는 전강스님이 우화스님 돈을 빼내 썼다는 것이다.
그 때 전강스님이 우화스님에게 여러 가지 말로 세상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명목으로 돈을 내주었는데, 시켜 주겠다는 세상 구경은 안 시켜 주고 돈만가져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스님 아주 나쁜스님이지요?ꡑ 하면서 내내 서운해 하셨다. 노스님은 보시 받은 돈을 절약하여 쓰지 않고 모으기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어쩌다가 차비좀 달라고 하면 그 때 돈으로 겨우 몇 백 원을 주셨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노스님을 모시던 스님 한 분은 노스님에게 돈을 잘 갖다 쓰는 것이 아닌가 저 스님은 어떻게 돈을 잘도 타서 쓰는가 하고 살펴 보았더니. 노스님에게 돈을 얻을 때 그냥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금액을 말하면서 그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그 방법으로 필요한 만큼 빌려 달라고 했더니 ꡐ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하고는 두말 없이 돈올 내주셨다. 그러고는 빌려 준 사실까지도 금방 잊어버린다.
뒤에 깨달은 일이지만 노스님의 경제관에는 매우 깊은뜻이 있다. 우리는 빌린 돈을 지금 당장 갚지 않으면 그것으로 갚아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노스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인과가 엄연하여 지금 빌린돈은 다음 생애라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곧 꼭 돈으로 갚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좀더 무서운 업장의 짐으로 남아서 반드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스님은 작은 일에서도 인과를 무서워 할 줄 알라고 가르치신다. 무엇보다 돈을 물 쓰듯이 하는 요즘 졸부들은 큰 스님의 이 같은 인과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 돈이라도 절제하는 않는 낭비는 다음 생의 무거운 빚이 된다.
노스님은 돈을 빌려 주는것에는 얼마나 철저하던지 밤에 찾아온 밤손님 곧 도둑에게도 돈을 빌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스님은 다보사 주지를 하기 전부터 해우소解憂所를 지으려고 보시 받은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알고 모아둔 돈을 빼앗으러 부엌칼을 들고 밤에 들어왔다. 도둑은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노스님은 ꡐ이 돈은 뒷간 지으려고 모은 돈인데 왜 당신이 가져간단 말이요. 그러면 당신이 뒷간을 지어 줄라우. 나는 절대로 못 주겠소‘ 하며 완강하게 버티었다. 도둑이 밤새도록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해도 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었다. 결국 도둑이 포기하고 ‘내가졌소’ 스님같
이 지독한 사람은 못 봤소ꡑ 하고 물러가려고 하자, 노스님이 ꡐ만약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 줄 수는 있지.ꡑ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도둑은 ꡐ그럼 빌려 주시요 하자 뒷간을 지으려고 무려 칠 년 동안이나 보시 받아 안 쓰고 모은 돈을 빌려 갔다. 그리고 그만이다. 애초 그 돈에 애착이 있어서 밤새 도둑과 대치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뒤에 그때 그 도둑이 다시 찾아와 노스님께 참회하고 빌려간 돈을 갚아 뒷간을 지었다. 그때도 그 저 어제 빌려 간 돈을 오늘 받은 것처럼 무심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심하고 천진한 노스님의 보살행에 도둑도 크게 감화를 받은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노스님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는데, 이 고양이가 노스님을 닮았는지 도인 행세를 했다.
노스님은 평소 공양을 혼자 할 때라도 상을 차려서 먹는법이 없고 반드시 바루 공양을 여법하게 하셨다. 이렇게 공양을 할 때면 노스님 옆 자리에는 고양이 바루도 놓여졌는데 고양이가 아주 점잖게 노스님 옆에 앉아서 공양을 하는 것이다. 노스님이 좌선을 할 때도 이 고앙이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 마치 좌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고양이가 암놈이라 일 년에 한번씩 발정을 한다. 한번은 대중들도 다 밖에 나가고 없는데 고양이가 발정을 했다. 그 때 마침 비구니 스님이 객으로 왔다 노스님이 그 비구니에게 고양이를 잡고 있으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 비구니는 무심히 고양이를 잡고 있었다. 노스님이 양초 끝 뾰족한 곳으로 고양이의 그 곳에다가 찔러
넣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비구니 스님은 당황하고 놀라 고양이를 놓고 도망갔다. 그러자 노스님이 “ 재미있는 일인데 왜 그렇게 놀란다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무심하고 천진하셨다. 고양이는 발정을 하면 숫놈을 찾아 도망을 가버린다. 그래서 숫놈 대신 노스님은 고양이의 발정을 잠재우고 도망가는 것을 막는다.
또 노스님은 도량 청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시간만 나면 비를 들고 나와서 마당을 쓴다. 그래서 다보사 마당은 언제나 말끔하게 비질 자욱이 남아있고 깨끗하다. 그 때만 해도 절을 찾아 놀러 오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래도 가끔 사람들이 놀러 와서 마당에 발자욱을 어지럽게 하고 가면 금방 빗자루를 들고 나와 다시 말끔하게 쓸어놓으신다. 그런데 비가 온 뒤에는 발자욱이 비질로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여자들이 뾰족구두를 신고 와서 밟고 지나가면 마당에 작은 구멍이 어지럽게 찍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노스님은 막대기를 들고 그 아가씨들 뒤를 따라다니면서 뾰족 구두가 내 놓은 구멍을 탁탁 치면서 메꾸었다. 그러면 아가씨들은 부끄러워 저 멀리 피해 버린다.
다보사 법당 앞마당은 그렇게 넓지 않다. 그 넓지 않은 마당을 정성을 다해 가꾸는 것이다. 마당 한구석에 쓰러질 듯서 있는 벚꽃 나무의 고풍스런 운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나무의 멋스러움은 아마 노스님의 마당 가꾸는 솜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스님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셨다. 한번은 국민학교 선생님이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절에 소풍을 왔다.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내가 잠시 아이들에게 절 안내를 하고 곁들여 짧게나마 불교란 이런 것이란다 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때 옆에서 손빽도 쳐 주고 했는데, 노스님이 줄곧 멀리서 보고 계셨다. 나는 은근히 공부하는 수좌가 할 일 없이 아이들하고 놀고 있다고 노스님이 꾸중이라도 하지 않으실까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노스님은 점심 때가 되자, 아이들이 싸 온 찬밥만 먹으면 체하기 쉽다고 공양주를 시켜 따뜻한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이렇게 노스님과 친숙해진 아이들은 그 뒤에도 자주 놀러 왔다.
평소 스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가까운 도반은 청담스님과 지월스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는 이미 청담스님도 지월스님도 열반에 들고 안 계셨던 때라 자주 옛날에 이 분들과 함께 공부하던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특히 젊은시절에 지월스님과는 서로 괴각질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금강산 마하연에 살 때 서로먼저 일어나 도량석을 하려고 경쟁을 하다가 뒤에는 아예 도량석 목탁을 끌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러다가 도량석을 하면 목탁을 치면서 산으로 올라가 아침 공양시간이 다 되도록 내려오지를 않아 대중을 골탕먹인 적도 있다고 한다. 본디 도량석이 끝나야 예불을 하는 것으로 순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도량석이 끝나기를 추운 법당 마루바닥에서 기다리다가 예불도 못하고 아침 공양을 들곤 했다는 것이다.
수덕사 산내 암자인 정혜사 만공滿空스님 회상에 살고 있을 때라고 한다. 그 무렵에는 결제를 앞두고 대중들이 양식 마련을 위해서 탁발을 나가는데, 스님은 탁발을 나가지 않았다. 만공스님이 꾸중을 하자 스님은 급하게 마당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만공스님 앞에 와서 ꡒ생사대사生死大事 화급한 사람은 어찌 해야 합니까ꡑ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만공스님이 웃으면서 ꡐ그렇게까지 급한 사람은 탁발할 시간조차 없겠지ꡓ 하고 탁발해 나가지 않아도 됨을 인정하셨다고 한다. 스님의 당당한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