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성철스님이 남긴 문헌을 검토 분석하면 스님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더구나 남의 말을 많이 인용한 「본지풍광」과 같은 책을 갖고 어디부터가 스님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생각인지를 구분 할 수 있을까? 대답을 먼저 말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마치선서의 연구를 통해서 역대조사들의 사상을 엿볼수 있듯이 우리는 “엿장수맘대로..”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이 말을 내 나름대로 풀어 보면, 엿 바꿔 먹으려고 고물을 가져온 꼬마에게 엿을 얼마나 줄지는 엿장수 마음대로 라는 것 일게다. ꡒ엿장수 맘대로ꡑ는 의미로도 쓰이고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엿장수’의 마음이 있다는 사시이다. 남들이 보면 멋대로 엿을 주는 것 같지만, 엿을 주는데는 반드시 엿장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가져온 고물의 시가를 매기는 엿장수의 안목이 그 뒷면에 들어 있다. 하다 못해 고물을 들고 온 꼬마가 어여쁜 과부의 아들일 일 때, 마음을 딴데 두고 꼬마에게 엿을 많이 줄지도 모른다. 멋대로 엿을 팔다가는 밑천을 다 까먹어 더 이상 엿장수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Ⅲ
그러면 성철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엿의 크기를 정했을까? 곧 성철스님은 중국과 우리나라 옛스님들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는데, 첫째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둘째 왜 자신 의 깨달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남의 말을 인용했을까? 먼저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해 답해 보자. 「본지풍광」처럼 남의 말을 빌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정착되었던 전통적인 저술 방식의 하나이다.
중국은 그만 두고라도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고려 혜심(1178-1234)스님의 「선문염송」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중국의 역대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기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을 편집한 혜심 스님을 보조 지눌 스님과 연결 짓는 이도 있지만, 「선문염송」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혜심 스님의 사상은, 남종선의 돈오무심 과 밀접하다. 혜심 스님은 돈오무심과 관련된 일화를 중점적으로 채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태고 보우스님과 함께 당시 임제선풍을 드날리던 백운(1298-1365)스님의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 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고려공민왕 21년(1372)에 績字本 으로 출판되었고, 뒤에 목판본으로도 출판되었다. 주자본은 하권의 일부만 전하지만, 목판본은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경덕전등록」과「오둥회원」둥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추려서 모아놓은 것이다. 편자인 백운스님의 생각은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통해서 역으로 백운스님의 안목을 알수 있다. 성철스님의 「본지풍광」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많은선사들의 어록 중에서 누구의 어느 말을 선택하여 모아놓는 가를 통해 우리는 그 편지의 사상을 역으로 추론할 수 있다.
Ⅳ
그러면 첫째의 질문은 성철스님은 어떤 기준을 갖고 중국의 선서를 발췌 요약했을까? 혜심스님의 「선문명송」도 그렇고 백운스님의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을 보아도 그렇지만, 중국의 선서를 발췌히는 기준은 무심사상을 제대로 드러내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들 가운데에는 모두 무심 시장과 연관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예를 들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에서 마조馬祖스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그 책의 上卷,12葉을보자.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ꡐ부처란 무엇입니까?ꡑ마조 스님이 대답했다.
“네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도道란 무엇입니까?”
마조 스님이 대답했다.
ꡒ무심無心이 바로 도이다.ꡓ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ꡒ그러면 도와 부처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마조스님이 대답했다.
ꡒ손을 펴는 것이 도라면 손을 오므리는 것이 부처입니다.ꡓ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려 백운스님은 중국의 마조스님의 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위에서 인용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그 많은 마조스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이 말을 인용한 뒷면에는 백운스님의 주관적인 선택이 들어있다. 곧, 마조선의 핵심은 무심에 있다는 백운스님 자신의 선관이다. 이어서 백운스님은 수修(수행)와 도道(궁극의 진리)의 관계를 논하는 마조스님의 대화를 인용하고 있다. 도란 수修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심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조계선의 전통이다.
성철스님의 사상을 전해 주는 책으로는 「本地風光」(1982년)말고도 「한국불교의 법맥」(1976년),「선문정로禪門正路」(1981년)를 비롯하여 십여 종의 선서들이 있다. 이 책 가운데에는 붓을 들고 직접 쓴 것도 있고 지혜 있는 문화생들이 채록한 것도 있다. 이 책들 어디를 보아도 무심을 조계선의 핵심으로 보는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이 무심이라는 말을 성철스님은 때로는 돈수頓修라는 말로도 표현하고 있다
V
여기서 성철선性徹禪과 마조, 백장, 황벽으로 이어지는 임제선臨濟禪의 차이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완벽하고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것을 강조하는 심도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성철선과 임제선이 모두 돈오 頓悟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점에는 같다. 그리고 그 돈오사상은 무심사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같다.
그런데 임제선의 경우는 무심보다는 돈오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이런 특징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돈황본「육조단경」이다. 이 「육조단경」은 마조 교단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최근의 연구로 이미 밝혀지고 있다. 마조 교단이 형성되던 무렵에는 북종이라고 불리우는 신수계통의 선사
들에 대한구별 의식이 있었다. 그 결과 마조교단과 그의 후판들은 돈오사상에 역점을 두면서, 무심사상을 곁들였다.
그러나 성철선의 경우는 돈오무심 사상을 근간으로 하면서, 무심사상에 강조점을두고 있다고, 할수 있다. 성철스님이 활동하던 이십세기 한국불교에서 남종선이 돈오를 핵심으로 한다는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심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여기에는 규봉스님의 돈오점수사상과, 님종선을 돈오점수로 이해한 보조스님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곧 규봉스님은 「선원제전집도서」, 「원각경대소초」, 「배휴습유문」 등에서 돈오점수를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이 규봉스님이 말하는 돈오점수의 돈오를 임제선의 돈오와 혼동을 한다. 무심에 대한 성철선의 특색은 돈오점수를 부정하는 규봉스님의 사상과, 규봉스님이 말한 돈오를 임제선의 돈오로 이해한 보조선의 비판에서 잘드러난다.
규봉스님은 한 생각도 생기지 않는 경지를 인정하고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그 생각마저도 없어지지 않으면 완벽한 깨달음이 못된다 했다. 성철선의 특징은 철저한 무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철선의 특징은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제창하는 곳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 문구의 번역을 흔히들 ꡐ한 단계 위에 있는 길ꡑ 이라고 한다. 이 점에서는 일본의 선학자 야나기따세이잔 柳田聖山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이 말은 ‘끝없이 초월해 가는 길ꡑ 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살아서는 종권 싸움으로 실추된 불교계의 위신을 세우고. 죽어서는 안팍으로 수행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죽음에 임하여ꡑ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라고 할 수 있는 철저한 무심사상 이 성철선의 특징이 아닐까? 아, 이일을 어쩌나, 저자의 직강을 들을 길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