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으로 조각한 어린시절의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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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진철문
1994년 04월 146호
삼라만상, 광대무변한 대우주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의 사고는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 그 너비와 깊이를 짐작키 힘들만큼 무궁한 삼라만상 가운데 하나인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왔다가 가며 삶의 대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언어와 손과 연장을 사용하고, 두 발로 걸어 다녀는 동물, 곧 인간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살아 숨쉬는 대자연의 조화로움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형태는 자연의 조화로움을 깨뜨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마저도 사고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는 인간은, 때로는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형태에 대해 의심하고 또 부정하기도 한다.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면서도, 인간이 끊임없는 생각과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지닌 종교적 심성때문일 것이다. 곧,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할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또 부처님은 누구이며 깨우침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나는 나와 종種을 같이 하는, 이미 이 세상을 다녀갔거나 새로이 다가올 수 많은 인간의 한 시점에서 이러한 어설픈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체는 무엇이며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과 육체는 어떠한 연관이 있으며 조화를 이루는가. 이성과 감성은 무엇인가 정신의 사유와 육체의 노동을 잘 조화시키는 일은 무엇인가.
어릴 적 절에서 살았던 나는 나의 무질서한 사고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마침내 다다른 곳이 종교예술이었다. 불교미술의 한 장르인 불상 조각이야말로 내 사고의 도약점이며 인생의 전부를 걸어볼 만한 것이었다. 불상조각은 감정과 더불어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리고 육체적 도움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불상조각을 시작하여 꼭 이십년이 되었다. 불상조각을 하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와 1975년 동국대 학교불교대학미술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사년은 입체 형태인 조각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당시 불교조소과목 이 있어 수강 신청하였으나 아무도 불상 조각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미치고 군 야간 근무를 지원하여 삼 년 동안 불상과 불교미술을 연구하였다. 그러면서도 외국 조각과 현대 한국에 일어나고 있는 조각 양식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군대를 제하고 또 대학원에 입학하여 불교 조각에 대한 나의 꿈을 나름대로 실현 하였다. “현대적인 한국 불상의 조형성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대학원 졸업 뒤 불상 조각 공모전과 그룹전을 통하여 산발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는 모형으로 석굴암을 연구하게 되었다. 곧, 석굴암을 정확히 십분의 일로 축소하여 모형을 만들어 실험 연구하는 것으로, 석굴암의 조명과 축조 방법, 도형, 신라의 과학과 수학, 미술, 역사, 철학, 천문, 지리학 따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여러 학문적 이론 연구가 동원되었다. 그 결과가 대단하였다.
그 뒤 1987년 모교에서 첫 강의를 맡게 되었다. 강의하는 기쁨은 학교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교과 과정의 폐지로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첫 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공간을 점유하는 형태에 관한 것이었는데, 조각이란 자연을 파괴하여 공간에 누를 끼치는 행위라는 느꼈다. 두번째 개인전은 불상조각의 현대화 작업이었다. 현대의 건축물과 도시 환경에 불교 조각을 어떻게 적응시킬지를 연구한 결과였다. 세 번 째 개인전은 테라코타와 도자기 작업으로 부처님의 이미지를 단순화하는 작업이었다. 네 번째 개인전은 부처님의 세계 곧, 만다라를 입체화하는 작업이었는데 조명기구와 빛 그리고 불교의 상징적 도형들이 함께 어울어 지는 작업이었다. 나는 신문 방송의 기자들의 질문에 ꡒ이제야 비로소 작은 금어金魚가 되었다ꡑ고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의 인생은 진행되고 있으며 나의 사고는 도약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