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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그늘에서 시작된 연꽃 사진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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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욱 1994년 04월 146호
만당은 1931년 김법린金法麟, 김상호金尙昊, 최범술催凡述 등이 조직한 청년 법려法侶들의 비밀결사로 만해 한용운이 그 영수로 추대되었다.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의 길이 요원한 시절, 일제의 압제와 침탈에 맞서 비밀리에 결사를 조직하여 민족해방의 대도에 공휘로운 싸움을 시작한 청년불자의 기개는 암흑과 같은 그 시절에 작지만 밝은 빛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보존하고 민족문화의 창달에 한없는 창조적 에너지를 제공하던 불교가 일제의 왜색 불교에 차츰 시들어가던 시절에 이러한 투쟁의 결사 조직은 너무나 당연한 역사의 요청이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이 공개적이지 못해 비록 역사적 기록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후세에 불고 중흥을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민족 지도자 만해 한용운을 영수로 추대한 이들의 심기는 민족해방과 불교의 정기 보존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관제 왜색 불교에 맞선 이들의 숭고한 뜻은 지금의 청년 승려들에게 면면히 계승되어 불교중흥의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특집/일과수행
부천님의 그늘에서 시작된 연꽃 사진공양 동욱
닥종이를 도반삼아 영담
그림 이야기 성륜
불상으로 조각한 어린 시절의 의문들 진철문



특집/일과수행


부처님의 그늘에서
시작된 연꽃사진 공양

동욱


사진을 찍는 일은 일차적으로 어떤대상에 투영된 내 마음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잿빛 옷자락에 카메라를 들고 연늪을 헤맨 지 어언 십여 년이 넘었다. 부처님의 미소를 화두로 간직한 채 그 미소를 찾아. 뻘에 빠져 옷과 살이 가시에 찢기기도 하고 햇볕에 그슬리며 열병에 신음한 많은 시간들, 돌이켜 보면 마음속에 아로새긴 한 송이 연꽃을 영상으로 담으려고 배회한 젊은 날의 인욕 정진이 아니었나싶다.
사진과의 인연은 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시험을 막 치르고 나자 사형이신 보광스님께서 졸업 선물로 카메라 한 대를 주었다. 부처님의 그늘에서 얻은 소중한 카메라로 무엇을 어떻게 찍어 표현해야 할지 여러 날을 고심하였다. 그때 문득 어느해 추운 겨울 청암사 수도암에서 봤었던 부처님의 미소가 스쳤다. 그 미소에 끌려 시간을 잊은 채 정진하다가 어깨에 동상을 얻기도했다. 그 석불의 얼굴에 맺힌 얼음이 촛불에 반사되어 오묘한 빛을 발하던 모습이 차츰 연꽃으로 귀결되었다. 수많은 경전에서 청정한 진리로 댓구되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자 고금을 통해 우리네 정서에 청초하게 자리한 꽃중의 꽃이다.
큰 길가에 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나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듯이
「법구경 게송 58」

누구든지 간에 하찮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다스리면
그에게는 반드시 슬픔의 독이 사라진다
마치 연꽃잎 위의 물방울이
스스로 굴러 떨어지듯이.
「법구경 게송 336」

연꽃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연밭을 찾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앞서 간 사람들이 작업을 흉내내는 데서 출발하게 되는 데, 모작을 하려해도 불교 문화 속에 연꽃이 엄연히 자리 매김하고 있건만 참고할만한 마땅한 사진 하나가 없었다. 마침 불자 한분이 일본 사진 잡지를 꼬박꼬박 보내 주었는데 그 곳에도 연꽃 사진은 일 년에 서너 점이 고작이고, 아마추어 수준을 넘지 못하는 평범한 작품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책을 통해서 사진에 대한 테크닉과 구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사진을 보는 감각 따위를 익혔다.
처음 이, 삼년 동안은 마주치는 연꽃이면 무턱대고 영상에 담았다. 삼, 사년쯤되니 겨우 연꽃의 생태가 파악되고 십여 년이 걸린 지금이야 비로소 사진, 아니 연꽃에 눈이 뜨여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거구나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면 꽃송이에 머물던 햇살은 씻은 듯 사라지고 부처님의 미소는 일그러져 있다. 아지랑이를 잡아 봄을 보여 주려는 듯 헛된 몸짓을 하며 골똘히 어느날, 문득 파란 수면 위에 떠오르는 천차만별의 연꽃들이 온통 우주를 덮으면서 하나의 영원한 부처님의 미소로 영상화 되기 시작했다. 환희에 넘치는 고동 소리, 색을 벗어난 공의 세계,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올곧게 박힌 연꽃이었고 때묻지 않은 이들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 뒤로 연꽃에 탐닉하여 밤마다 이슬을 맞으며 연꽃과 잠자리를 했다는 염계 선생의 애련벽愛蓮癖이나, 부처님이 들어 보이는 연꽃에 오직 가섭만이 미소로 답한 연화경의 말씀들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이 재현하는 무수한 대상은 단 한번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송이 연꽃과의 만남, 그 기회는 절대적 우연성, 아니 필연의 인연일 게다. 햇살이 한 생명을 비추고 그것을 영상화하면, 그 생명체는 다시 피어나고 해탈한다. 하지만 아직 나의 연꽃은 결코 나의 이미지, 부처님의 미소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미
지는 견고한데 존재는 가볍게 흩날리고 한곳 머무르지 않는 까닭이다. 하찮게 여긴 연꽃의 잎 하나가 경이로 다가온다. 시선이 떨린다. 그 떨림을, 그 이미지를 영상으로 잡아내는 일, 가야할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나는 사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사진에 불여진 말이 감상자의 선입견을 제한할까 두려운 까닭이다. 사진은 지시성을 추구하고, 사진에는 언어가 침투하기 어려운 완강한 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아주 짧은 순간에 예리하게 포착되는 연꽃들의 모습은 내가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즐거운 마음으로 찍은 사진은 인화 했을때도 즐겁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작품을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린 사진은 그 때묻은 마음이 묻어 나와 남들에게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연출을 하거나 마무리 작업에서 트리밍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사진을 보고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터이지만, 시각적으로 완벽한 구도, 선명한 색채를 잡으려는 의도에 앞서 불교 경전에 나오는 연꽃의 모습, 부처님의 미소를 담으려고 애쓸 뿐이다.
이는 찍는 사람의 마음 곧, 시진 찍기를 좋아하는 수도자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한여름 연밭에서 대여섯 시간씩 사진을 찍다 보면 더위도 먹고 병을 얻을 때도 많았지만 산사에서 참선 수행을 통한 극기심이 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기에, 내 사진 작업의 그 미미한 성과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이다. 또한 불자들에게 해마다 연꽃 사진을 연하장으로 보내는 까닭은 “마음을 맑히고 청청 신심으로 모두 성불 하여지이다 “라는 발원에 다름 아니다. 하여 이 땅에 연꽃 장염의 불국토가 실현되길 간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