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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율의 한계를 극복한 범망보살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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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04월 146호
비구계본과 보살계본
해인총림은 여름과 겨울 안거 때 포살을 한다. 보름에는 비구계본比丘戒本을 읽고, 그믐날에는 보살계본 菩薩戒本을 함께 읽는다. 보살계 포살은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청신사와 청신녀 등 사부대중이 법당 가득히 모여 함께 읽어 내린다. 분위기가 분위기이거니와 내용 자체가 가슴에 와 닿고 신심이 난다. 총림에 처음 살아 보는 선객이나, 말사에서 좀 느슨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스님들은 “신심이 절로 난다ꡓ면서 해제 무렵이면 심심찮게 율원에 들러 보살계 낭송본을 얻어 가곤 한다. 토굴이나 다른 곳에 살더라도 천번씩 읽으면서 스스로를 추스르겠다는 뜻이다.
비구계 포살은 이름 그대로 비구들만 모여서 읽는다. 얼마 되지 않는 인원이 그 큰 법당에 휑하니 앉았는지라 서늘하다. 게다가 “부처님 탑안에서 잠자지 말라. 가죽신을 신고 탑 안에 들어가지 말라. 탑아래에서 양치질 하지 말라“ 는 부분에 이르면 우리 상황과 너무 달라 고개마저 갸웃거리게 된다.

총림의 보살계 포살 해프닝
작년 여름 결제 때 일이다. 보살계 포살을 하려고 산내의 사부대중이 모두 모였다. 법당은 한치의 틈도 없이 가득찼다. 침묵이 흐르고 이어 곧 포살을 시작하려는데, 포살 법사이신 율원장 스님께서 으레 ꡐ보살계를 다 받았으려니ꡑ 생각하고는 한마디 하였다. “보살계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많은 대중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포살 법사 스님이었다. 부랴부랴 보살계 수재산림을 다시 여는 소동(?)을 치루었다. 보살계본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보살계를 받은 대중은 뜻밖에 적었던 까닭이다. 사미계와 비구계는 의무적인데 견주어 보살계는 스스로 알아서 받도록 한 까닭이다. 게다가 재가자를 위한 보살계 수계산림 행사는 많아도 출가자를 위한 보살계 산림은 드물다. 그리고 스님들은 재가자 보살계 행사를 진행하고 후원해야 하는 주체인 까닭에 함께 보살계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든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 버리기 일쑤이다.

말도 많은 범망보살계경
범망보살계경은 해인총림에서의 소동뿐만 아니라 전래 번역 과정부터 말이 많았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범망경보살계경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모셔 오고자 한 사람은 축법호竺法護-월지국 266~313에 165부의 경전 번역 - 였다. 그는 육로보다 위험 부담이 적고 편리한 해로로 경전을 옮기기로 하였다. 범망경을 높이 모시고자 다른 경전을 모두 실은 다음 범망경을 실었다. 그러자 이내 배가 가리앉아 버렸다. 그래서 ꡐ무거워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다른 경전을 그만큼 빼고 다시 범망경을 올렸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 그래도 범망경을 모셔 오고자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다른 경전은 모두 내리고 범망경만 실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범망경은 동쪽땅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다시 다른 경전만 배에 싣고 왔다. 그 뒤 일백 년이 지난 다음 구마라집-구자국343~413-은 축법호의 실패를 염두에 두었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범망경 가운데 ꡐ보살심지품菩薩心地品ꡑ 만 원문으로 외어 와서 한문으로 번역을 하였다.
범망경을 신성시하려는 이야기가 오히려 분별을 일삼는 학자들에게 의심의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범본梵本이 없다는 반증으로 이해했음직하다. 그래서 가장먼저 뒤진 것이 번역경전의 이름과 번역자 및 내용을 알 수 있는 경전목록이었다. 승우曾祐(444~518)의 「출삼장기집出三藏己集」2권 속의 구마라집 번역 경전에는 범망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혜교醫交(497~554)의 「양 고승전」의 제2권 구마라집 편에는 보이는 둥, 문헌간에도 일치하지 않는 난맥상을 보인다. 그리고 본문가운데 ꡒ효孝를 일러 계戒라 한다“ 라든지 ꡒ효순심孝順心을 자비심ꡓ이라고 하는 등 중국적 색채가 강한 것에 의문을 가져 근래에 망월신형望月信亨박사가 중국 찬술을 주장한 이래 학계에서는 5세기경 곧 유송劉宋 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말들이 많지만 절 집에서는 전통적으로 구 마라집의 번역설을 믿고 받아들여 따르면서 오늘에 이르고있다.

사분율의 한계를 극복
부파의 각 율장이 마하가섭에 의하여 고정된 계율의 추가라는 양적 변화는 범망보살계경에 의하여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양에 있어서 10중대계十重大戒와 48경계四十八輕戒, 곧 오십여덞가지 항목이나 된다. 물론 사분율의 계목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숫자자체가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일이 있을 때 마다 제정해 온 수범수제의 계목이 갖는 법칙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계의 제정 정신을 살리려는 이른바 심지계心地戒 경향이 짙어졌다. 그리고 계의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 점이다. 곧ꡒ~하지 말라ꡑ에서 “~하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살생을 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생을 하라는 형태로 바뀐다. 오히려 계율자체가 더욱 강화된 면도 보인다. 술 마시지 않아야할 뿐만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술을 마시도록 권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따위이다.
또한 술을 팔지도 말아야 한다는 따위이다. 마늘을 먹지 말라는 사분율의 계목은 마늘을 포함하여 달래, 부추, 파 등 5신채까지 금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율 속에 포함된 것
이기는 하지만,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은 범망경에서 새로 생긴 조항이기도하다.


범망경은 대승계율
범망보살계는 재가나 출가여부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대승적이다. 그리고 열 가지의 무거운 계를 범하더라도 교단에서 추방하기보다는 가르쳐서 참회를 하도록 하고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도 새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쫓아내기 보다는 함께 데리고 살면서 고치자는 것이다. 꿰매면 새것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쓸만하다는 입장이다. 이 부분도 아주 대승적이다. 흔히 상좌부의 계율-보통 북방권에서는 소승계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에게 닿는 구체적인 모습은 사분율이다―은 좀스럽고, 대승계―범망경보살계를 지칭―는 걸림없는 호방한 것이라든지, 대순계를 따르려면 소승계는 장애가 된다는 식의 이분법은 반율장적인 시각이다. 소승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한 것이 대승계이다. 곧 대중부 에서 열 가지 일(十事)이 추가된 것처럼 오십여넓 가지가 덧붙여진 것으로 보면 된다. 이는 소승계를 지키면 대승계를 지킬 수 없다거나 대승계를 받으면 소승계를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서로 보완 관계로 두 개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계율이 된다. 소극적 이어야 할 때는 소극적으로 살고 적극
적이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살아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승이다. 그래서 비구계를 받고 또 보살계를 받는 것이다.

비구보살이라고 부름
하여튼 그 날 소동 덕에 강제(?)로 나도 보살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부터 \'비구\' 에서 \'비구보살\' 로 바뀌게 되었다. 이백오십 계의 비구계에 다가 오십여넓 개의 보살계를 함께 짊어진 셈이다. 이백오십 계만 해도 무거운데 거기에다가 오십여덟 계를 더했으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싫든 좋든 범망경 문화권 곧 북방불교권에서는 의무적으로 비구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율이 오십여덟 가지나 모자라는 남방의 비구계를 받았다고 황색 가사를 입고 북방에서 살면서 “상좌부 비구” 임을 자처하는 북방출신 승려들을 “비구보살“ 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율장에 맞는 태도일까. 사미와는 삼 일 이상 함께 놀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아무리 율장을 뒤져도 이것은 있을 것 같지 않다. 다시 율장을 결집한다면 이 부분도 한마디 추가해야한다. “비구보살은 사미는 물론 보살계를 받지 않은 비구와 도 삼일 이상 함께 머무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