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생존 당시 유마힐 이라는 재가불자가 있었다. 그는 출가시문은 아니었으나 법의 경지가 상당했다고 한다. 어느 날 유마힐은 병이 나서 많은 이들로부터 문병을 받았다. 부처님도 유마의 건강이 염려되어 여러 제자들에게 문병 갈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유마의 법이 높아 문병 가기를 부담스러워 하며 마다하였다. 문수보살만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병문안을 가서 유마와 법담을 나누었다.
문수 보살이 유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ꡐ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나요ꡑ이에 유마는 답한다.
ꡐ대상을 쫓는 것이 원인입니다ꡑ.
무엇이든 쫓는 것이 있는 한병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대상은 세상 모든 것이구요. 그러므로 병에 걸린 이가 생노병사를 벗어나려면 자신의 마음을 깊이 꿰뚫어 아무것도 쫓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대상을 쫓지 않고 내 안의 주관과 외부의 객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ꡑ 문수보살이 다시 묻는다.
ꡐ병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일까요ꡑ.
유마가 답한다.
ꡐ그것은 내가 있다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별하는 일을 그치는 일이죠ꡑ
유마경에 나오는 경구의 일부이다.
비록 육체의 고통과 아픔이 깊더라도 윤회하는 삶의 본질적 문제를 깊이 통찰하여 근본 적인 문제에
천착하여야 함을 일깨우는 말이지 싶다. 가시적인 현상에 달리고 집착하는 우리네 습에서 한 생각 돌이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병의 치유책일 수 있다. 이는 과학과 의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종교의 역할이 크게 요구되는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들고 외로운 이들 의 가슴을 보듬고 든든한 의지가 되어주는 일을 십여 년 동안 해 오신 스님이 있다. 정진스님이 바로 그 분이다.
상도동 깎아지를 듯한 언덕바지에 있는 보문사의 문을 두드리면서 사실 조마조마했다 며칠을 두고 스님을 뵈고 애써 왔는데 간병 활동으로 계속 부재중이었다. 하루종일 보문사서 스님을 기다려서라도 뵐 요량으로 무작정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스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출타하려고 걸망을 챙기던 참이었다. 바쁘신지 무조건 따라오라며 뛰듯이 문을 나섰다 그야말로 오 분만 늦었어도 오늘 안에 뵙기는 어려울 뻔했던 셈이다. 꼼짝없이 스님의 행선지로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삼양동 마을 저 안쪽으로 구불구불 스님의 걸음은 이어졌다.
다닥다닥 사람 냄새 짙게 묻어나는 산동네 어느 집 앞에서 스님의 걸음이 멎었다. 작고 초라한 외짝 문에 ꡐ불자의 집ꡑ 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낮이 환하고 웃음아 담박한 보살님은 스님의 방문이 뜻밖인지 반갑고 어려워 어쩔줄 몰라하며 안으로 맞아들인다. 스님 큰 소리로 이것저것 안부를 묻고 걸걸한 웃음을 터트린다. 방 안 혼자 앉아 있는 한 소년이 있었고 이름은 성현이라고 한다.
스님이 ꡐ성현아!ꡓ 하고 부르자
성현이는 반가와 단박에 웃음을 배어문다. 그는 선천성 뇌성마비로 앉음새나 행동거지가 많이 부자연스러웠다. 말 한마디 하려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애를 써야만 했다. 그래도 성현이는 스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스님 , 어서 오세요. 안녕하셔요“하고 크고 분명하게 말한다. 웃음이 방 안에 넘치도록 벙긋거린다. 스님은 거침없이 성현이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며 공부는 열심히 하느냐 참선도 하고 있느냐 다정스레 묻는다. 어쩌면 저리도 편안하게 사람을 대하나 싶은 생각에 코 끝이 찡하다.
우리는 장애인이나 병약한 사람들 앞에 조심스럽고 알팍한 연민으로 눈시울을 붉히기는 하지만 이내 쉬이 잊기도 잘하고 자신의 생활에 바삐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당당하고 대등하게 그를 대하는 정진스님의 모습은 거목 같아 보인다. 오랜 세월 동안 다가오는 모든 세월을 그대로감수하고 이겨 낸 튼실한 나무 말이다.
성현이는 새벽마다 엄마가 예불할 때 옆에서 관음정근을 하고때로 참선도 한단다. 그리고 스님의 권고로 시작한 역학 공부를 이제는 거의 다 마쳐서 세상의 이치를 역학으로 이해할 수도 있게되었다.
ꡒ업장으로 육신은 부자유스러워도 식이 맑고 정신이 진실합니다. 보살님이 한번만 읽어 줘도 그 책을 거의 다 이해합니다. 그렇게 라도 제 몫을 하도록 해야지요. 몸이 성치 않으니까요ꡑ
정진스님은 출가할 때 평생 행자로서 있으리라 다짐했단다. 오랫동안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행자를 하다가 스님들의 권유로 다보사에서 비로소 계를 받게 되었다. 평생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살고, 일도 하고 복도 더불어 많이 지으니 행자생활이 얼마나 좋습니까.ꡑ아상을 버리고 살아가는 수행인, 이는 출가 당시부터 자신을 책려해 온 스님의 엄격한 거울인가보다. 스님은 72년부터 82년까지 천축사에서 만난 원공스님과 더불어ꡐ불서 보내기 운동‘을 했단다. 각 교도소와 군부대와 양서와 불서를 보내 가장 외롭고 소외된 이들의 척박한 가슴에 불법을 전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 무렵 스님은 건강이 크게 나빠져서 절에 있지 못하고 도보로 만행하며 투병을 하게 되었단다.ꡐ대중이 사는 곳에서 계속 아픈 몸으로 기거하자니 폐가 될 듯해서 돌아다니며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날 길을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멈추어 서더군요. 비구니 스님이 타고 깨셨습니다. 아마 스님이 길을 걷고 있어 태워 줄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몸아 좋지 않아서 속가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려고 모든 인연을 끊고 입산했는데 병들고 아프면 의지하고 치료할 곳이 없어 속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 때 불교의 미비한 현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파 보았던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하는데 정진스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스님은 삼 년을 넘기지 어렵다는 선고도 받았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의 절망. 그 가운데 절감한 간병의 소중함, 그리고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낸 뒤의 안식 . 이 모든 체험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정진스님의 손길을 이끌어 왔던 근거였었지 싶다.
82년부터 군부대 병원을 돌며 그들의 병든 가슴에 훈훈한 법등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한다. 처음에는 아무 병원에나 찾아 다녔지만 뒤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외로운 고지에 위치한 군대를 체계적으로 위문하게 되었단다. 그러다 86년 ‘병상심방원ꡑ 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갖추었고 지금까지 정진스님이 여여하게 이끌어 오고 있다. “특히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은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합니다. 평생 불자로서 살아왔지만 임종직전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포교로 그들의 종교 안에서 죽음의 안식을 얻고 사후에 예식도 낯선 방식으로 치루어지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ꡓ
실제로 스님이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에 임종을 앞둔 불자가 교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안타까운 경험을 했었단다. 교세의 알력 차원에서 이를 안타까워 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의지처가 요구되는 순간에 우리 불교의 소홀함으로 급히 선택한 낯설은 의지처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해서이다. 이러한 간병 활동은 불교방송국 자비의 전화와 간병인 협회의 연계로 조금씩 조직화되어 가고 있다. 이전에는 수소문해서 그야말로 지중한 인연이 있어야만 병상에서 스님의 법문과 손길로 마지막 가는 길을 평안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병인 협회 수료자가 10회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는 불교인들의 지속적 관심이 함께 한다면 병상에서 불자님들의 보살핌을 쉬이 받을 수 있게 되리라고 말씀한다. 날마다는 아니어도 힘이 닿는 대로 자주 찾아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플 때 승려인 저희들의 한마디와 다독임은 그 분들에게 큰 힘이 되지요. 저는 그 분들에게 이 생이 없는 셈치고 살자. 그리고 간 셈치고 살자는 말을 해드립니다. 내가 없는데 무슨 시비가 있겠습니까. 고통 속에서 조차 힘겨워 하고 갈등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스님은 평소에 우리 모두 죽음을 연습하라고 한다. 그러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그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이가 된다고 강조하신다. 스님이 하시는 일은 서양에서의 호스피스와 비슷하다. 그러나 호스피스는 보살핌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진스님은 호스피스란 말이 나오자 왜 서양식 개념에 우리의 행위를 맞추려 하냐고 반문하신다.
ꡐ병을 돌보는 일이나 임종을 함께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방법은 호스피스와는 다릅니다. 언제나 가족이 함께 해왔는데 호스피스가 왜 필요합니까. 사회가 핵가족화 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생겨난 서글픈 양상일 뿐이라 생각합니다ꡑ 호스피스가 보편화된다면 아픔이 있는 동안 불편을 다소 덜어 줄 대상은 있지만 결국 궁극적 외로움은 감소될 수 없음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ꡒ삶의 시작이 가족과 함께 이루어졌으니 마침도 가정 안에서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죽음은 인간 개개인 스스로 감수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관문이지만 평생을 가장 사랑해 온 부모, 자식 , 형제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으로 느껴지겠습니까. 우리의 전통적 임종 방법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모여 한사람의 마침을 힘겨워해 주는 하나됨이 차츰 사라지는 오늘이 안타까울 뿐입니다.ꡑ 스님은 염하는 일에 대해서도 덧붙여 당부한다. ꡒ우리 불자들만이라도 염을 더럽다느니 무섭다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 여러 분들의 소중한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술까지 먹여 가며 맡길 수 있습니까. 보내드릴 때는 그 분들이 우리를 씻어 주었듯이 깨끗이 염해 드려야지요.“ 불자님 , 스님들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자세이며 . 포교라고 생각한다는 스님은 오늘도 스님의 넉넉한 웃음배인 말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 벌써 마음이 바쁘다. 그 일이 바로 정진 스님에게 주어진 소임이라 생각하시는 것이리라.
“불중무상佛中無相 상중무불#帥無佛“ 진실로 부처님 가운데는 상이 없고 여러 눈앞에 보이는 상마다 부처가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경구라 한다. 이들의 모습에서 스님은 부처님을 본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리도 다감한 손짓으로 어루는가 싶다.
유마는 “이 세상에 어리석음이 남아 있는 한,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은 계속될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의 아픔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도 역시 계속될 것입니다“하며 자신의 병의 원인을 말한다. 아픔이 있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는 한 정진스님은 쉴 날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과 옛 선사를 알음알이로 의심한 데에 대한 참회로 연비한 정진스님의 몽뚱해진 손마디가 오늘도 스님의 신심을 설명하는 듯했다. 갈곳 없는 노인들과 스님네 들을 모실 수 있는 사회복지회관을 마련하고 싶다는 스님의 뒷말이 정감있기도 하고 숙연하기도 하다.
“이승에서는 복이 없어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 삶이 보너스니까 열심히 살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