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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임의도를 경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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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4년 03월 145호
춘삼월이 왔는데 뿌리가 물을 머금어 나뭇가지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는 입춘이 지났다. 겨우내 선방의 창호지를 울리는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없이 오직 깨침의 자리를 지키던 한철 수행도 해제하여 대중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부쩍 길어진 낮의 길이는 그만큼 많은 활동을 요구한다. 툇마루 안쪽으로 하루가 다르게 깊이 들어오는 햇살에서 새로운 의욕이 절로 솟는다. 누비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짐은 따스한 봄볕에 묵은 구태를 훌훌 털어 버리고 싶어 서 일 게다.
이렇게 봄을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케케 묵은 불교계의 소식들이 전해와 한국불교의 장래가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관악산 연주암 주지 교체 과정에서 신임 주지가 경찰의 지원을 얻어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교계 안팎의 언론보도를 접하고 보니, 유독 우리 종단만 아직 이 세상의 봄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여 눈앞이 아득하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변화와 개혁을 예전의 ꡐ반공ꡑ 표어만큼이나 절대시할뿐더러 ꡐ국가경쟁력ꡑ 과 ‘국제화’ 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때이다.
이렇게 이 나라에 변화와 개혁의 분위기가 가득하여도, 우리 종단은 변할 기미나 개혁할 의지를 조금도 보이지 않는 채 거꾸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나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종단의 행정을 책임지는 총무원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한국 불교를 퇴보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지난 1월 26일 전국승가대학 학인연합이 발표한 성명은 적당한 때에 정확한 지적을 했다. 이 성명은 ꡒ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채 아집과 독선과 파행으로 일관하며 부처님의 법을 훼손하는 불교계의 현실을 개탄하며 ꡒ모든 종도의 바람인 개혁을 외면하고 종권 연장의 권모술수만을 일삼는 서의현 총무원장은 더 이상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님을 밝혀둔다ꡓ고 못박았다.
그렇지 않아도 종회가 올해 1월 17일 개최한 임시중앙종회에서 상정된 안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토론에 부쳐 보지도 못한채 차기 종회로 이월시키는 무능성을 보이자, 지난해부터 종회가 개혁을 바라는 대중의 요구를 받다들이기를 청원하였던 실천 불교 승가회는 곧바로ꡐ6월 종권 교체를 위해 승려대회 개최도 불사한다ꡑ고 하였다. 이는 곧, 현 총무원장 체제에 대한 탄핵의 뜻을 강하게 비추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비상수단을 선택하겠다는 시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1월 14일에는 석림동문회, 선우도량, 실천불교승가회, 전국승가 대학학인연합 등 승가 단체가 신년 인사회를 갖고 종권교체를 준비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은 2월 5일 석림동문회 사무실에서 계속되어 한층 논의가 깊어지고 있다. 2
월 25일 위의 승가 단체 대표자와 실무자들이 모임을 갖고 현 종단의 구조적인 개혁을 위한 기구 설립까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재가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도 ꡒ총무원장이 직능직 종회의원을 뽑고 종회의원이 다시 총무원장을 뽑는 비민주
적 폐단을 없애야 한다ꡓ는 성명을 냈다. 올 상반기에 종권 선거 국면에 들고있는 종단에서는 교체의 소리가 전면화되는 한편 또 다른 쪽에서는 낡은 수법을 사용하여 종권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종헌의 규정을 왜곡하는삼선출마설이 회자되고 있어 경책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정으로 얼룩진 8년
현 총무원장의 삼임을 정당화하고 은연중에 기정 사실화하려는 측은, 아직도 교계에는 중대한 숙원 사업이 산적해 있으니 사업 수행의 연속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숙원 사업으로는 불교종합병원 설립, 승가대학의 발전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종합 영상 매체를 통한 포교사업인 종합유선방송국 설립 따위를 꼽고 있다. 그 밖에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역경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숙원사업의 일꾼이 ‘나 아니면 안 된다ꡑ 는 논리가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일까.
과거 우리 헌정사에서 독재정권이 자신의 집권을 합리화하고 연장할 때마다 신물나게 우려 먹은 논리가 그러하였다. 이승만이 그러했고 박정희가 삼선 개헌을 할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유신독재의 명분도 ‘경제개발의 지속ꡑ 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정권을 거머쥔 명분도 국가의 위기에서 오로지 군부가 나서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그런 독선과 아집이 국가를 정체시켰고 역사 발전의 동력을 소진하였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의현 스님이 중도하차의 몹쓸 전통을 돌려 놓은 공로는 인정하지만. 86년 취임 때 말했던 의지는 더 할 수 없이 퇴색하였다. 더 고이면 회생불능의 낙동강처럼 심한 후유증이 남는다.
지난 팔년 동안 한국불교를 정권으로부터 자주성을 갖지 못한 채 권력의 눈치나 살피는 어용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찮은 육군 중령이 지엄한 불상을 훼손하고 법당을 폐쇄한 사건에 모든 불자가 분노하여 ‘장로 대통령ꡑ을 규탄할 때에 바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일부 몰지각한 세력이 과거 정부의 일을 문제 삼는다’고 한 사람이 이 나라 조계종단과 불교를 어용화한 당사자이다.
불교방송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일 년 가까이 사장을 선출하지 않은 탓에 불교방송을 파행화시켰고 지난해 5월에는 이교도인 박아무개를 방송사의 사장이 되도록 은밀하게 추진하다 국회에서 망신을 당하였다.
종단개혁을 요구하는 종도들의 간곡한 바람은 철벽 같이 외면하면서 종권에 장애가 된다 싶은 종도는 철저하게 제거하였다. 봉은사, 보문사, 신흥사, 월정사 그리고 연주암 등 주요사찰에서 이권 다툼을 조장하는 권모술수로써 정적을 제거하였다. 종회의원의 직선제를 통한 종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종헌 개정은 계속 차기 종회로 이월하였지만, 재임중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주지를 해임할 수 있도록 종헌을 바꾸는 일은 단 한번에 통과됐다. 총무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안건이 그토록 수월하게 처리될 만큼 종회의 기능은 삭았다.
불교 관계의 제반 악법으로 불교인 스스로 재정을 운영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고있음에도 김영삼 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한다며 난데 없이 ‘불교재산공개선언’을 하여 불교계만이 아니라 타종교권까지 긴장시킨 적도 있다.
조계종단에 가장 치욕적인 흠집은 청정 비구로서의 도덕에 대한 문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든 음해이든간에 청정에 대한 시비가 제기된다면 매우 중요한 사단이다. 더욱이 종무행정의 대표자인 원장의 신변이 여자문제로 신문의 조롱거리가 된다
면 탄핵 이전에 자진 사퇴함이 마땅하다. 그런 문제로 법정에 서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또 왜색 불교를 청산하고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려. ‘정화’ 의 쓰린 상처를 안고 있는 조계종의 종풍을 정면으로 위배한 일본의 신흥종교단체 법인 설립을 추천한 작태는 도덕성 결여의 표본을 보여주는 일이다. 시쳇말로 ꡐ어찌 이런 일이ꡑ 있을 수 있는가.

확실하게 의사를 밝히길
「신동아」1월호의 별책부록으로 발행된 「신한국의 파워엘리트」내용 가운데에 종교 지도자들을 소개하는 난에 ‘서의현 총무원장은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에의 연루 설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 삼선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고 쓰여 있다(「신동아」1994년 1월호, 별책부록 393쪽)이 글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말부터 삼선의 풍문은 널리 나돌았고 몇 가지의 징후로 보아 풍문이 아닌 사실로 차츰 드러나고 있다. 언론의 보도와 재야단체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삼선에 대한 부정이든 긍정이든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것 역시 그러한 조짐이다.
현 조계종의 종헌은 ‘중임ꡑ 을 규정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영구 집권도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나, 중임이라는 이 용어는 분명히 임기의 한번 연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헌을 개정하지 않고는 삼선이 불가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삼선을 위해 개헌을 하려 한다면 종단은 회오리에 휩싸일 것이 뻔하다.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지난 과오는 종단사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 당사자는 뒷날 그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맡은바 임기를 끝으로 다시 대중의 처소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팔년의 기간이 전법의 만행이었다면 이제 대중의 처소에서 함께 부대끼는 결제의 수행으러 자자와 포살의 기회를 갖는게 당연하다. 방 안에 스며드는 햇볕에 묵은 먼지를 털어 내며 해바라기라도 하듯, 종단에 변화와 약동의 기운이 물씬 솟아나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