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으로 얼룩진 8년
현 총무원장의 삼임을 정당화하고 은연중에 기정 사실화하려는 측은, 아직도 교계에는 중대한 숙원 사업이 산적해 있으니 사업 수행의 연속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숙원 사업으로는 불교종합병원 설립, 승가대학의 발전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종합 영상 매체를 통한 포교사업인 종합유선방송국 설립 따위를 꼽고 있다. 그 밖에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역경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숙원사업의 일꾼이 ‘나 아니면 안 된다ꡑ 는 논리가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일까.
과거 우리 헌정사에서 독재정권이 자신의 집권을 합리화하고 연장할 때마다 신물나게 우려 먹은 논리가 그러하였다. 이승만이 그러했고 박정희가 삼선 개헌을 할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유신독재의 명분도 ‘경제개발의 지속ꡑ 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정권을 거머쥔 명분도 국가의 위기에서 오로지 군부가 나서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그런 독선과 아집이 국가를 정체시켰고 역사 발전의 동력을 소진하였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의현 스님이 중도하차의 몹쓸 전통을 돌려 놓은 공로는 인정하지만. 86년 취임 때 말했던 의지는 더 할 수 없이 퇴색하였다. 더 고이면 회생불능의 낙동강처럼 심한 후유증이 남는다.
지난 팔년 동안 한국불교를 정권으로부터 자주성을 갖지 못한 채 권력의 눈치나 살피는 어용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찮은 육군 중령이 지엄한 불상을 훼손하고 법당을 폐쇄한 사건에 모든 불자가 분노하여 ‘장로 대통령ꡑ을 규탄할 때에 바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일부 몰지각한 세력이 과거 정부의 일을 문제 삼는다’고 한 사람이 이 나라 조계종단과 불교를 어용화한 당사자이다.
불교방송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일 년 가까이 사장을 선출하지 않은 탓에 불교방송을 파행화시켰고 지난해 5월에는 이교도인 박아무개를 방송사의 사장이 되도록 은밀하게 추진하다 국회에서 망신을 당하였다.
종단개혁을 요구하는 종도들의 간곡한 바람은 철벽 같이 외면하면서 종권에 장애가 된다 싶은 종도는 철저하게 제거하였다. 봉은사, 보문사, 신흥사, 월정사 그리고 연주암 등 주요사찰에서 이권 다툼을 조장하는 권모술수로써 정적을 제거하였다. 종회의원의 직선제를 통한 종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종헌 개정은 계속 차기 종회로 이월하였지만, 재임중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주지를 해임할 수 있도록 종헌을 바꾸는 일은 단 한번에 통과됐다. 총무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안건이 그토록 수월하게 처리될 만큼 종회의 기능은 삭았다.
불교 관계의 제반 악법으로 불교인 스스로 재정을 운영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고있음에도 김영삼 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한다며 난데 없이 ‘불교재산공개선언’을 하여 불교계만이 아니라 타종교권까지 긴장시킨 적도 있다.
조계종단에 가장 치욕적인 흠집은 청정 비구로서의 도덕에 대한 문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든 음해이든간에 청정에 대한 시비가 제기된다면 매우 중요한 사단이다. 더욱이 종무행정의 대표자인 원장의 신변이 여자문제로 신문의 조롱거리가 된다
면 탄핵 이전에 자진 사퇴함이 마땅하다. 그런 문제로 법정에 서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또 왜색 불교를 청산하고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려. ‘정화’ 의 쓰린 상처를 안고 있는 조계종의 종풍을 정면으로 위배한 일본의 신흥종교단체 법인 설립을 추천한 작태는 도덕성 결여의 표본을 보여주는 일이다. 시쳇말로 ꡐ어찌 이런 일이ꡑ 있을 수 있는가.
확실하게 의사를 밝히길
「신동아」1월호의 별책부록으로 발행된 「신한국의 파워엘리트」내용 가운데에 종교 지도자들을 소개하는 난에 ‘서의현 총무원장은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에의 연루 설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 삼선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고 쓰여 있다(「신동아」1994년 1월호, 별책부록 393쪽)이 글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말부터 삼선의 풍문은 널리 나돌았고 몇 가지의 징후로 보아 풍문이 아닌 사실로 차츰 드러나고 있다. 언론의 보도와 재야단체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삼선에 대한 부정이든 긍정이든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것 역시 그러한 조짐이다.
현 조계종의 종헌은 ‘중임ꡑ 을 규정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영구 집권도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나, 중임이라는 이 용어는 분명히 임기의 한번 연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헌을 개정하지 않고는 삼선이 불가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삼선을 위해 개헌을 하려 한다면 종단은 회오리에 휩싸일 것이 뻔하다.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지난 과오는 종단사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 당사자는 뒷날 그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맡은바 임기를 끝으로 다시 대중의 처소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팔년의 기간이 전법의 만행이었다면 이제 대중의 처소에서 함께 부대끼는 결제의 수행으러 자자와 포살의 기회를 갖는게 당연하다. 방 안에 스며드는 햇볕에 묵은 먼지를 털어 내며 해바라기라도 하듯, 종단에 변화와 약동의 기운이 물씬 솟아나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