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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흘린 세 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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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정화 1999년 08월 210호
수련회를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여름 수련회에 간다고 하니 나의 지인知人들은 사뭇 놀라면서 사람이 너무 변해서 오는 것 아니냐고들 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곳에 다녀와서도 변한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이라고 대꾸하곤 했다. 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다.
현실 세계 너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역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 중요한 건 지금 내 눈앞에 맞닥뜨린 이 현실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허겁지겁 지나고 내가 해내야 하는 여러 역할에 조금씩 지치면서 하루 중 온전히 ‘나’ 인 채로 지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을 잠들기 전에 하기도 했다. 내 내부에 힘을 갖고 중심을 잘 지니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할 듯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냥 나를 한번 가만히 세상에서 떼어놓고 보고싶었다. 이번 수련회는 혼자 여행을 하는 첫번째 경험이기도 했다.
4박 5일 동안 나는 세 번의 눈물을 흘렸다. 한번도 경을 일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첫 예불 때 대참회문을 따라 읽다가 갑작스레 흘러내리는 눈물에 당혹스러웠다. 내가 평소에 저지르는 잘못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은중경을 읽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되레 모른 척하고 지내는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돌가가서 꼭 부모은중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세번째 눈물은 천팔십배를 하면서 였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싸우기를 원한다’가 좌우명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서서 싸우기보다 무릎 꿇고 절하기가 그렇게 힘들 줄이야….
누군가 왜 천팔십배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습의사 덕산스님은 ‘나도 잘 모르니 한번 알아보라 고만 하셨다. 삼백배가 지나자 슬슬 요령이 나며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게 절을 할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오백배를 그렇게 건성으로 하다 문득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절 받으십시오’는 저를 받아달라는 말이다. 부처님께 이렇게 엉성하게 나를 받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배운대로 차례차례 손을 내리고 몸을 엎드리고 발을 모았다. 일어설 때마다 앞에 계신 부처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이렇게 제대로 하라는 말씀이신가. 고마움에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렇게 천팔십배를 했다.
수련회 내내 나는 내가 얼마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얼마나 현시적인 것들과 직설법에 익숙해 있는 지를 알았다.
내게 세상은 선이 아니면 악이었고 정의가 아니면 불의였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귀신도 먹이고 다독이고 계셨다. 분별과 무분별을 넘어서는, 그 상상과 은유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문을 나서면서 자꾸 뒤 돌아보게 되는 건 4박5일이 너무 짧기 때문이었다.
삶에서 긴 자장磁場을 가지는 일들이 더러 있고 그로 인해 삶의 모습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수련회 동안의 일정 하나하나가 나를 정말 변화시켰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하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수련회에서 얻은 자성의 거울을 닦는 일은 이제 나의 몫일 것이다. 샘 앞에서 내 존재를 쓰다듬듯 불던 해인사의 바람이 잊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