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인도 印度라는 특수한 한 지역에서 생겼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보편에만 눈을 돌린다면 불교의 진리마저도 퇴색해 버린다. 선불교도 마찬가지이다. 육조혜능을 중심으로 하는 선은 중국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생긴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중국선의 보편성과 진리성이 드러난다. 이런 인식이 없이 선서를 읽으면,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어정쩡한 선학 개론이 되고 만다.
대혜스님 大慧宗고(1089~ 1163)의「대혜어록(하) 」에 이런 말이 있다. “깨달은 마음이 바로 충의심忠義心이다.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똑같다” 그의 이 말 속에는 외래 민족의 침략에 나라의 홍망이 위태로운 남송南宋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忠’ 자의 뜻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 생기는 도덕 윤리이다. ꡐ충‘ 의 뜻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해서 대혜 당시는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논어 」의ꡐ충ꡑ은 개인의 윤리 덕목으로서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기반으로 한 덕목의 하나이다. 그러다가 비로소「순자」에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덕목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그것이 사회 제도 속에서 정착하게 된 것은 송대의 일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혜스님은, 임금에 대한 ꡐ충ꡑ 을 ‘깨달음ꡑ과 같이 이야기 한다. 북쪽이 민족토벌정책의 깃대를 높이 들어 결국은 유배를 떠나는 대혜스님의 일생은 그의 선사상과 멜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것은 깨달음에 대한 중국적인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수한 중국적인 상황 속에서 남종선이 자기 모습을 발전시켜 가고, 이런 연장선 속에서 고봉원묘 高峰原妙(1238~1295)의선사상이 나오고, 나아가 중봉명본中峰明本(1263~1323)의 선사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고봉원묘스님이 천목산天目山에 머물면서 선법을 편 시기는 남송의 멸망과 시기를 같이 하고 있다. 대혜스님 때에 확립된 간화선은 단순한 수행상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완전한 깨달음을 궁극의 도달점으로 하여, 어설픈 깨달음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돈오의 정신이 사회적으로는 이민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북벌론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또한 혼란스런 사회 속에서 형이상학적이고 안이하게 안주하려는 당시의 정토사상 을 거부하고, 단박에 여래의 경지에 뛰어 오르려는 철저한 자세가 고봉원묘와 그의 제자 천목중봉스님에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시대의 사조는 결과적으로는 선정일치 禪淨一致의 세태로 흐르고 말았다.
철저한 돈오무심법으로 일관하는 선종의 근본정신도 중봉스님 이후에는 사라지고, 명나라 때의 주굉(1535~1615)스님 시대가 되어서는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중봉 스님의 말씀은 「天目中峰和尙廣錄 」(30권)으로 기록되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조선에도 들어 오기는 했지만, 그 정신을 알아주는 임자를 만나지 못하다가, 이미 고인이 되신 해인사의 성철 선사에 의해 고목에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백련선서간행회ꡑ에서 1988년에 「동어서화」와 「산빙야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 책은 「천목중봉화상광록 」
(30권) 속에 들어있는 독립된 편으로, 후인들에게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간화선 즉 공안선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님은 「산빙야화 」에서 선종의 분파에 대해서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다.
“남종가 북종이 분리되고 5가로 갈라진 뒤부터, 모든 선지식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부처님의 교외별전 敎外別傳과, 사람의 마음을 스트레이트로 일깨워 주는 달마스님의도를 전하려고 애를썼다.ꡓ
단지 선법을 전하는 상황에서 5가의 가풍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위앙종의 근엄함과, 조동종의 자상함과, 임제종의 통쾌함과, 운문종의 고고함과, 법안종의 간단명료함이 그것이다. 이 차이는 선법을 전하는 인물들의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지리적으로 멀어지니 자연 육조스님의 돈오돈수 정신이 변질되어, 제각기 깨달았다는 도인 행세를 하여 세인을 현혹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혜스님이 공안 公案이라는 잣대를 제시하여 스스로 자신을 검증하게 했다.
대혜의 가풍을 이은 중봉스님은 공안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ꡒ공안이란 관청에 비치해 놓은 문서에 비유한 것이다. 국기에는 법령이 있어야만 왕도정치가 제대로 실시되는지를 알 수 있다.ꡓ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깨닫게 된 계기를 공안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와 같다.”
교학에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경전으로 하지만, 제 마음을 깨칠 것을 주장하는 선종에서 각자의 체험이 제대로 되었는지 시비를 가릴 수가 없다. 이럴때 자신의 깨달음을 스스로 검증하는 장치가 공안의 기능인 것이다. 그래서 이 공을 ‘거울ꡑ에 많이 견주기도 한다.
제 얼굴을 자신이 볼 수 없기 때문에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는 것과같은 이치이다. 성철 선사가 ꡐ동정일여ꡑ , ꡐ몽중일여ꡑ , ꡐ오매일여ꡑ 라는 잣대를 제시하여 지신의 깨달음을 스스로 판단하게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체험에 안주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신도들을 현혹시키는 지금의 세태를 볼 때 성철 수좌의 말씀은 더 없이 좋은 자기 반성의 거울이 된다. 깨달음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ꡐ동정일여ꡑ도 되지 못하는 상태를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안주하여 신도들을 속인다면, 그 죄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위험은 이미 중봉스님 당시에도 있었던 듯하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ꡐ깨달았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번뇌의 작은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갑자기 싹 없어지지 않으므로 실천 수행이 없어서는 안되지 않는가?ꡑ
이 질문은 돈오한 뒤에 접수를 주장하는 이들의 말이다. 이에 대해 중봉스님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번뇌의 습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뚜렷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깨달음이 뚜렷하지 못하면, 반드시 평생을 바쳐서라도 분명하고 뚜렷하게 깨달아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뚜렷하게 깨치지 못했다고 해서, 다시 실천수행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불쏘시게를 집어들어 불을 끄려다, 불을 더 크게 내는 꼴과 다름이 없다ꡑ이 말에 대해 상대 스님은 다시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해 중봉스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
“이것은 미리 실천할 것이 있나 없나를 따질 필요가 없다. 완전히 깨달은 번뇌를 싹 끊고 나면 수행이 필요한지.“ 번뇌를 싹 끊고 나면 수행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저절로 알 수 있다ꡑ
중봉스님은 현성공안現成公案 을참구할 것을 강조하신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성ꡑ 이란 뜻은,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ꡐ공안‘ 이란 관공에 비치된 공문서나 국법과 같다는 말은 앞에서 했다. ‘현성공안’ 이란 이미 정형화된 공문서가 아니라, 정형화되기 이전에 생짜배기로 그대로 자기 자신 앞에 주어져있는 문제를 말한다. 이 공안을 각지마다 참구하라고 중봉스님은 강조한다.
현성공안 의 말속에는 님에 의해서 재해석된 공안, 죽은 공안이라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는말이다. 병맥주 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발효된 맥주가 아니라, 집집마다 맛이 다른 생맥주를 마시자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 체험을 해서 돈오돈수의 정법이 전수되는 것이다. 육조의 지상의 손이라고 하면서 점수를 운운한다면, 이것은 양고기만을 전문으로 파는 가계가 개고기를 파는 격이다. 이것은 자기 모순이며 가풍을 문란 시키는 일이다.
보조스님의 돈오점수 사상은 육조의 가풍에 대한 반역이다.
고려 말에 살다간 경한백운景閑白雲 (1298-1365)이 편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는 책을 보아도 돈오돈수로 이어지는 선사들의 어록을 잘 뽑아놓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난데 없이 보조 연구가 성행하여 조선의 선법을 왜곡시켰다. 이 책은 프랑스의 파리국립 도서관에 비장되었던 것으로 세계 최초의 현존 주지본 鑄字本이다. 안타깝게도 하권이 남아 있으나, 조계의 돈법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안목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서지학자 천혜봉 교수의 노력으로 학계에 소개되었으나, 내용 연구는 아직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다음 호에는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여, 우리 조선의 선풍은 돈법이었고, 해인사 성철선사의 돈오돈수 제창이 얼마나 눈밝은 처사였는가를 문헌으로 밝혀 보기로 한다. 더불어 조선의 돈오사상과 중국의 돈오사상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정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