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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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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신경숙 1994년 03월 145호
밤에 짐들 때는 모든 활동을 그치고 마음의 갈등을 쉬어야 한다. 아침에 깨어날 때는 모든 일에 마음을 쓰며 되돌아 보아야 한다.

언젠가 화엄경을 읽다가 이 단순한 말을 오래 들여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진리는 복잡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구나. 밤에 잠들 때 모든 갈등을 쉬게 할 수만 있다면, 아침에 깨어날 때 모든 일에 마음을 쓸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겠다. 그러지 못해 늘 뒤죽박죽...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자리에 몸을 두고 헤맨다.
잘못 빠진 마음의 허당에 목까지 잠기려는 참에 성철스님의 열반 소식을 들었다. 나는 절에 다녀는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체질적으로 몸을 가볍게 옮기지를 못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을 때도 기껏 부모님이 계시는 곳에나 가는 사람이다. 떠난다는 것이 내겐 늘 어려웠다. 멀리도 아니고 찻집도 가 본 집만 가고 식당도 가본 데에만 간다. 가서도 늘 앉아 본 자리만 앉으려는 몸이 무거운 사람이다.
그런 내가 성철스님의 다비식에 가야겠다고 기차표를 끊은 것은 나로서도 뜻밖이었다. 아마도 그 분이 일생을 담아 마지막으로 남긴 열반송 때문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만물 앞에서 그저 한낱 어린 처녀가 그 분의 열반송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면 그 분에게 누를 끼치는 감정이겠다 싶지만, 솔직히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되풀이해서 들여다 볼수록 슬펐다. 청산에 검소하게 몸을 맡기다 가신 분의 게송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나선 길이었다.
내게 성철스님은 그렇게 가슴 아프게 왔다. 작은 한 공기의 밥과 잘게 씬 솔잎 한 종지, 당근 몇 조각, 소금기 없는 무염식의 소식, 세상살이는 십 원짜리, 누더기 한 벌... 세상나들이 없이 산속에, 물속에 투명히 계신 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라니... 그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친다니. 혼자 내려가려고 밤 기차표를 사두고 시간에 맞추어 나가니 역에는 선량한 얼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저 그틈에 끼어 따라가면 되겠구
나 싶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지 않는가. 돌아다 보니 얼굴을 아는 기자였다.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 또한 평소에 알고 지내는 시인이었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선량해 보여도 내심은 혼자인 것이 외로웠던 참이라 반가웠다. 내 기차표가 그들보다 십 분쯤 빨랐는데 다행히도 쉽게 바꿀 수가 있었다.
해인사 가는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너무나 유명해 언젠가 가 본 듯했지만 실은 첫 길이었다. 나는 해인사가 그토록 깊은 산속에 있는걸 몰랐다. 기차에서 내리니 새벽 네 시였다. 택시를 타고 해인사 진입로까지 왔으나 새벽부터 진입로는 조문객들의 차량으로 꽉 차 있
었다. 이미 사람들의 도보 행렬이 시작되어서 우리도 내려 행렬에 섞여 새벽 산을 오래도록 걸었다. 가야산은 사람들을 감추거나 내놓으면서 나무 소리, 물소리를 냈다. 누군가 부르는 듯해서 돌아보면 산자락이고, 다시 돌아보면 물소리였다. 중턱에서 보살들이 손바닥만 한 무지개 떡을 하나씩 봉지에 담아 나누어주었다. 떡이 촉촉하고 따뜻해서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만지면서 걸었다.
그렇게 찾아갔는데 법구는 이미 퇴설당에서 영결식장으로 운구되어 있었다. 해인사는 품이 큰 절이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들여 놓고도 아무데서나 돌아보면 추녀 너머로 산봉우리와 하늘과 무우밭이 보였다.
그리고 절이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건 그런 풍경이 아니라 열반이란 슬픔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슬픔 이상이었다. 석가모니불을 독경하는 수많은 남녀노소 가운데에 간혹 눈물을 비치는 이들이 있었지만 눈물까지도 눈물 이상의 것이었다. 슬픔이 이니라 아름다움이었다. 다비장으로 가는 일 키로미터가 넘는 가랑비 속의 남녀노소의 행렬이 그랬고, 연화대에 석유를 붓고 장적에 향을 불을 지피는 순간이 그랬고, 짙은 회색 연기가 허공에 피어올랐을 때 여기 저기의 오열조차도 아름다웠지 슬픔은 아니었다. 아름다움이란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깃드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곧 연화대의 불길은 하늘로 높이 치솟아 붉게 타올랐다. 가랑비가 멈출 듯하다가 다시 내리고 다시 내리고 했는데도 붉게 타오르는 불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 빗속의 불길은 투명했다. 적어도 그랬으리. 그 앞에서는 자기 속의 모든 걸 들여다 볼수 있었으리. 부처와 악마까지도. 붉은 불길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워 나는 그분에 그 불 속에 누워 있다는걸 잊어 버렸다. 아니, 그 와중에도 밤과 낮을 구분 못하는 미망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밤이 돼도 불 곁에 있었다. 빗발은 점점 더 굵
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붉은 타오름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 다시 밤 기차를 타려고 연화대를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는데, 빗속에서 세상을 잊은 듯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투명한 불을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이, 타오르고 있는 불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내게는 세상에 계실 때보다 육신의 옷을 벗은 다음 내 마음 자리에 살아 깃든분 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열반이 슬픔보다는 아름다움으로 왔을 것이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그 분은 아실는지. 여전히 깊은 잠을들지 못하고 잠속에서 조차 헛손질을 하고,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야 할 때 지쳐 생각을 그치려 하고, 가야 할 바른 길을 두고 다른 허당에 빠져 헤매지만, 세상에 남긴 당신의 마지막 열반송에 뺨을 대고 때때로 깊은 잠에 드는 어린 처녀가 여기에 있음을 아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