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돌보지 않는 전법의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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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현각
1994년 03월 145호
전법도생傳法度生은 부처님의 일생이기도 하며 불교의 이념이기도 하다. 조계종의 종지宗旨인 상구보리 하화중생 또한 전법도생의 실천을 위한 덕목이기도 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전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이 세상에 유전하여 중생교화의 사명을 다할수가 없다. 불교가 이천오백여 년의 시간속에 인종과 문화와 풍습을 달리하는 국경의 벽을 넘어 세계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전법을 위하여 몸 바친 원력 보살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태자의 몸이었던 고타마 싣달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새벽 하늘의 별빛을 보고 오랜 방황과 인고의 세월을 멈추고 미망으로 부터 큰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지금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는 싣달타 태자가 수행하던 금강좌와, 첫발을 딛으신 발자욱, 경행하던 자리, 정定에 들어 있던 곳들이 이천오백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전해오고 있다. 싣달타 태자는 동쪽 하늘에서 샛별이 떠오르는 순간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마
침내 붓다가 되었다. 순간 태자는 형언할 수 없는 법열에 젖어 기나긴 수도의길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 높여 외쳤다. ꡐ아,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태어남의 길은 밟지 않으리라. 이것을 번뇌의 마지막이라 말하
리라.ꡓ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첫번째로 금강좌에 앉아 선정에 든 뒤에 인연의 법을 쉬임 없이 관찰하고 화엄을 설하였다고 전해지며 80화엄 가운데에 세주묘엄이하 육품을 설하였다고 추측된다.
그 다음은 보리수의 동쪽언덕에 올라 보리수를 바라보았던 곳으로 이 곳을 정안처 靜眼處라고 한다.
세번째는 동서로 왕래하며 경행하시던 곳으로 부처님께서 발을 옮길 때마다 연꽃이 피어 올라 발을 받쳐 주었다고한다.
네번째는 보리수 서쪽에서 일 주일을 보냈는데 이때 부처님의 몸에서 오색광명이 피어 올라 신기한 빛이 보리수를 비추었다고 한다. 다섯 번째의 장소는 미얀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지나던 한 브라만이 찾아와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법을 청하였는데 그를 위하여 최초로 법구경의 말씀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여섯 번째 장소는 보리수 남쪽 이곳에서 선정에 들었다고 한다. 이 때 무칠란다의 용왕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그의 머리를 펼쳐 바람과 청둥번개로 막아 주었다.
“이제 모든 번뇌가 다하고 나의 할 일은 마쳤다. 태어남과 죽음의 바다는 마르고 구원 겁 쌓아 온 원행은 다 찼다. 그러나 나의 얻은 바 법은 매우 깊고 알기 어려워 오직 부처와 부처가 서로 증명할 뿐 어둡고 혼탁한 인간들은 탐욕, 진심, 우치, 사견, 교만 따위에 덮이고 막힌 바 되어 복은 엷고 근성은 둔하여 지혜와 신근이 없는 중생들이 어떻게 나의 얻은바 법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내가 그들에게 법을 바로 설한다면 그들은 미혹하여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비방하므로 장차 악도에 떨어져 고통받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열반에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때 제석과 범천왕 등이 부처님을 찾아와 생사의 미망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위하여 대자비의 법을 설해 주실 것을 세 번에 걸쳐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장소를 옮겨 마지막 칠 일 동안 선정에 들었다고 한다.
이 때 제석과 범천왕 등이 부처님을 찾아와 생사의 미망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위하여 대자비의 법을 설해 주실 것을 세 번에 걸쳐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장소를 옮겨 마지막 칠 일 동안 선정에 들었다고 한다.
이 곳은 지금 보리수 남쪽에 있으며 돌로 좌대를 만들어 놓았다. 부처님께서는 이 곳에서 선정에 잠긴 가운데 깨달음의 법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관찰하였는데 수행자 시절 스승으로 섬기던 아라라가라마나 우드라 카리마 푸트라 등은 나이가 많아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오래 전부터 자신과 더불어 수행했던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명의 수행자들을 찾아 법을
전하고자 결심하였다.
부처님께서 49일 동안 보리수 주변에 있으면서 법열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전법의 어려움은 전법을 포기하고 싶은 데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의 외침은 아무리 그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제석과 범천왕들이 권청하는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이는 부처님 자신의 문제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이기도 하다. 법열에 젖어 열반락을 즐기며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있고, 중생의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삶은 곧 역사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누구나 내면에서 울려오는 두 가지의 목소리 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제석과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어 전법의 결심을 굳히고 일생을 길에서 중생과 함께하는 거룩한 모습을 남기고 중생교화의 기틀을 마련한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를 떠나 함께 수행하던 일행을 찾아 바라나시의 녹야원까지는 이백칠십 킬로미터로 걸어서 일 주일이 걸리는 거리이다.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따라 소 떼와 먼지 가득한 길에는 예나 지금이나 생노병사의 윤회 속에 가난과 탐욕 가득한 중생들의 삶이 펼쳐 있었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어렵고 다함없는 길일지라도 전법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을 것이다. 중생들의 고통 가득한 삶들이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한 환희에 가득찬 깨달음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안거가 끝난 뒤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각기 흩어져 혼자서 길을 가도록 권하였다. 더 많은 지역과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지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우리는 역사속에서 구법과 전법의 길을 위하여 생사를 초월한 원력으로 살다간 수많은 보살과 선사들의 가피를 입는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일본에까지 전해지면서 부처님의 나라를 직접 가보고 싶어하는 구법의 간절한 염원을 키워가는 수행자들이 늘어난다.
사막과 태산의 준령을 넘는 길은 상상을 초월하는 험로로 생명을 걸지 않고는 게획하기조차 어려운 길이다.
중국의 법현스님과 현장스님과 의정스님 그리고 신라의 혜초스님 등은 바로 이 길을 성공시킨 분들이다. 의정스님의 「남해기귀내법전 南海寄歸內法典」에는 당나라 초기에 중국에서 인도로 떠난 구법승 육십여 명의 전기가 기록되어 있다.
비행기와 열차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지금도 일생에 한번 가기 어려운 길을 천오백여 년전 실천한 그들의 원력은 진리를 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대승보살의 대원력이 아니면 이루기 어렵다.
십오 년쯤 걸리는 고행의 여정에서 불법을 배우고 전하고자 하는 고귀한 정신은 일신의 편안함을 뒤로 하는 이타적 실천자들이다.
또한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법의 길을 떠난 보리 달마이래 구라마즙. 보리류지 선무외 둥의 전법자들이 있었기에 불교는 세계 종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천국이라 할 만큼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 살 고있다. 그러나 발달된 문명과 물질의 풍요속에서 인간본연의 순수함을 지니고 진리를 실천하는 보살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또 법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함과 내가 배우고 익힌 진리의 생활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의욕 또한 보기가 힘들다. 다양한 종교 교리와 수많은 교단의 활동을 보며 우리가 지닌 불법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널리 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일이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중생교화의 대자비심과 구법과 전법의 교훈을 남긴 선사들의 원력을 다시 살려내야 할 때에는 서 있다.
종단도 불타의 진리를 널리 전하려고 몸사르는 여건을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