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에서 피워 낸 불멸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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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일문
1994년 03월 145호
기원전 8세기경 인도에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기존의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인도 문명권이 인도 중부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증대된 잉여 생산물을 기반으로 도시가 발달되고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촌락 공동체에 기초한 브라만 중심의 기존 질서는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부처님이 활동하던 마가다국이나 코살라국은 인도 중부지역에 자리잡은 신흥 강대국으로 이들은 브라만 사상을 대신할 새로운 통치 이념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성 브라만 사상에 도전하는 인도 각지의 신흥사상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태어날 무렵 인도의 사정은 원시 촌락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고대 노예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으며 또한 양자가 혼재된 시대였다. 사상적으로 브라만교의 신 중심 세계관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성을 상실하였고 새로운 사상을 제창하는 신흥 사상가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난무하는 사상의 혼란기였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우지 못하고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들던 염세의 시대였으며 신흥 도시를 중심으로 한 각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란의 시대였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절박한 양육강식의 시대에 위대한 제왕의 출현을 열망하는 약소국 카필라성의 태자로 태어난 싣달타는 부왕과 카필라성 국민들의 기대속에 소년 때부터 비사바밀다라와 찬제제바라는 두 스승으로부터 학문과 군사기술을 배우는 엘리트 교육올 받는다. 그러나 열두 살 때 농경제에 참가해서 벌레와 새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것을보고 자연계의 냉엄한 생존의 현실을 목격한다. 또한 힘들게 일하는 농부에게서 국왕에게 세금을 바치게 위해 고생스럽게 일한다는 말을 듣고 궁전에서의 자신이 풍요로운 삶이 수많은 대중들의 고통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뒤 청소년 시절에는 위대한 제왕이 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착실히 받아 나가지만 제왕의 길에 대한 끝없는 회의에 시달리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사문유관을 통해 고통스런 민중현실에 눈 뜨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에 출가를 단행하기까지 구 년 동안 싣달타의 젊은 날은 고뇌의 나날이었다.
싣달타 자신이 부왕과 궁중의 여망에 따라 위해한 군주가 되어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다른 나라를 전쟁으로 굴복시켜전 인도를 통일하더라도 그것은 왕실과 귀족 등 지배계급을 위한 것일 뿐, 비참한 생활을 하는 하층민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싣달타는
자신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주지만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당시 지배체제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평화롭고 안락하게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방황하다가 출가사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일체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내어 모든 중생들을 공포로부터 구제하며 모든 중생들을 살해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들을 보호하고자 생각하는사람ꡓ이 사문이라는 말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는 것이다. 곧 싣달타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정치 현실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을 행복과 평화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찾아 수행자가 된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수행법은 고행주의와 수정주의였는데, 싣달타는 고행과 선정을 포함한 수행법들을 모두 체험하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한 수행법은 세속을 떠나 홀로 거기에 몰두할 때는 일정한 마음의 평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떠나서 얻는 내면의 것일 뿐 세상의 고통을 해결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뼈를 깎는 고행은 궁중에서 쾌락적인 생활에 젖어 있던 육체의 습관을 극복하게 했지만 세상의 고통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싣달타는 기존의 수행법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보리수 아래서 자신이 태자 시절부터 느껴왔던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순을 성찰하다가 드디어 12월 8일 깨달음을 얻고 나서 ꡐ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ꡓ하고 사자후 하였다. 비로소 부처님의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혼란한 시대를 고뇌하며 살다간 평범한 사람으로 역사의 행간 속에 묻혔을 싣달타, 온 세상을 평회롭고 안락하게 하는 길을 찾던 그의 원대한 이싱이 피나는 수행을 통해 열매 맺는 순간이었고, 그 밝은 빛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멀어진 채 욕망에 기반한 사회이며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해서 욕망을 극대화 시키는 사회이다. 또한 남과북이 분단된 채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군사 독재 시절의 권위적인체제의 잔영이 문민정부 시대라는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과도기이자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기존 이데올로기는 대중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으며,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이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국가와 민족간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면서 민족종교라는 이름으로 기氣나 도道 열풍에 빠져 들거나 오렌지족으로 명명되는 육체적 쾌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부처님이 그러한 오백 년 전 인도의 시대 상황을 끌어안고 고뇌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그 결과가 깨달음이었거니와, 이 시대 이 땅의 불교도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들을 과연 수행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대중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개인적인 내면의 평화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1월 19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성도절이었다.
오는3월 19일과 26일은 부처님 출가절과 열반절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불교도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이다.
요즘 우리 불교계는 너무 외형적인 불사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전국 각지의 명사대찰들이 번듯하게 들어서 있지만 관굉객만 붐빌 뿐 진실한 진리의 순례자는 드물다.
이제 겨울 동안 정진하던 많은 스님들이 해제하고 만행의 길을 떠날 것이다. 만행은 대중들의 삶 속에 들어가 자신의 깨달음을 검증하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만행이 여행이 되지 않으려면 고통스런 대중들의 삶을 애정어린 몸짓으로 끌어안는 동사섭의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구조적인 고통을 끌어안는 수행, 그것이 싣달타가 깨달음으로 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