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동식물이 앞날의 사건에 대한 징후를 빨리 나타내는 경우는 흔하다. 쥐들이 집단으로 혹 어디론가 이주하면 지진이 오고, 개미가 물가에서 뭍으로 이동하면 큰물이 난다는 예측과 같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을 상징화하여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도 있다. 학의 고고함이나 개의 충절처럼.
올 겨울 신문의 가십기사에 새 떼가 화제로 오른 적이 있다. 지리산의 진객으로 말해진 시베리아 되새 떼들이 그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하동군 쌍계사 일대에 일백여만 마리의 되새 떼가 군무를 이루며 찾아들자 사람들은 나라에 좋지 않은일이 생길까 걱정하기도 했다 한다. 되새 떼들이 남긴 피해는 차나무에 많은 양의 배설을 한 것뿐이고, 외려 이 새 떼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이곳은 때아닌 호경기를 누렸다 한다. 이 되새 떼들은 지난2월 중순부터 저들의 서식처인 시베리아로 날아가고 이 곳은 고요할 뿐이란다.
되새 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겨울의 철새로 떠올리는 새가 기러기이다. 유년 시절 우리에게 기러기는 계절의 전령사이기도 했다. 기러기 떼가 찾아들면 겨울이 시작되고, 이들이 소리없이 사라지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기러기는 끊어질 듯 내지르는 아름다운 소리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우리 민족의 신화와 풍습에도 좋은 의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신의 사자로 나타내기도 하고, 하늘의 신화神火를 별들에게 전하는 신관 神官(무당)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 말의 규합총서에도 ꡒ추우면 남쪽으로 더우편 북쪽으로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해 예禮이다.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아니 하니 절節이다ꡑ 하여 인간의 도리를 이들에 빗대기도 했다.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슬픔에 겨워 자기 짝을 찾아 헤매다 결국은 그 슬픔으로 창자가 끊어져 죽는다고 한다. 단장 斷腸의 비애悲哀라는 말도 기러기의 애절한 사랑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러한 기러기의 좋은 금슬 때문에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도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집에 가져다 바치고 절을 하는 전안 奠雁이라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또 기러기는 구만리 창공을 날 때 가끔씩 ‘끼룩ꡑ하고 우는데 이것은 멀고 차가운 하늘을 날다가 뼈 속 깊이 들어 찬 찬공기를 내뱉으려고 지르는 소리라고 한다. 선가 禪家에서는 기러기의 이러한 소리를 수행자의 언행에 비추어 말 한마디도 아끼고 아끼다가 꼭 필요한곳에 서늘한 가르침으로 내뱉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서양의 가시나무새에 비견할 만하다.
서양의 신화엔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그려지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는 이 새는 마침내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스스로 찔리고, 고통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것이다. 목숨과 맞바꾼 이 새의 노래를 세상은 침묵속에 귀 기울이고, 천상의 신은 미소짓는다는...
정월 보름의 달이 차다. 잃어버린 동화처럼 멀어져 버린 달을 치어다 보며, 그 달빛 사이로 날던 기러기를 떠올린다. 단장의 비애는 지금 우리에게 민족의 통일일 수 있겠고, 고고한 울음소리는 가식과 허위를벗겨내는 진지한 사문의 목소리이어야지 싶다.
세상의 일이란 고통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러기 떠난 저수지에서 무엇보다 먼저 봄을 예감하는가? 신라의 구법승 혜초가 먼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며 읊은시 한 소절을 옮긴다.
달밤에 고향길 바라도 보니, 뜬구름만 쓸쓸하게 돌아가누나
가는 편에 편지를 부치렸더니 , 바람이 빨라서 듣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이건만, 이 나라는 땅끝의 서쪽
더운 남쪽에는 기러기도 없으니 , 어느 새가 계림을 향해 날아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