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經이나 글은 본디 부처님의 뜻을 문자로 보시하는 중요한 장엄의 하나이다. 때문에 고려 팔만대장경은 당시 몽고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으려고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글이 중요하며 그것이 있기까지는 수 많은 숨은 일화가 있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 여건상 전남 장성에 있는 백암산 백양사에 있는 글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혼자 가기에는 외로울 것 같아 동행으로 강림 김재룡-원광대 서예과 한문 강사 -선생과 같이 1994년 12월 16일 아침 여덟시 사십분쯤 이리를 출발해서 호남고속도로 광주 방향을 향해 달렸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정읍을 지나자 눈이 쌓인 노령산맥의 자락이 멀리 하얗게 보였다. 전라북도에서 남도를 가려면 이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 곳에는 터널이 있다. 이 곳만 지나면 바로 장성군이요, 그 첫 역이 백양사역이다.
이른 아침이어서 교통이 원활하여 멀리만 느꼈던 백양사에 몇시쯤 도착하였다. 백양사 입구에서 온 까닭을 이야기하니 그냥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 주어 사찰 경내인 쌍계루까지 곧바로 가서 주차할 수 있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경내를 둘러보니 사찰 뒤켠에는 하얀바위로 둘러보니 모양이 마치 학이 군락을 이룬 것처럼 아름답다.
“백암산白巖山 백양사白羊寺”라는 사천왕 현판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대웅전, 명부전, 철성곽등의 현판縣板과 주련柱聯을 찍는데 생각보다 주련 글씨가 많았다.
이렇게 사진만 찍을 것이 아니라 스님의 안내를 받아야겠다 싶어 어제 저녁에 통화한 교무 도성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얼마 전에 사고로 목발을 하고 있었다. 스님 방에 들르니 온돌방이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 차를 마시며 얘기하고 있는데 점심 공양 시간이라며 밥상이 들어왔다. 때 이른 공양으로 점심을 간단히 끝내고 교무 스님의 안내로 부조실 광제 스님을 뵙게 되었다. 첫인상이 화목하고 인자하신 폼이 선열禪兌이 가득한 선승禪僧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옆 주지 스님 방에는 “추사秋史, 원교圓橋, 창암蒼巖” 글씨가 있는데 하며 외출중이라서 아쉽게 됐다며 안타까워하였다. 백양사의 유래와 선승의 오도송悟道頌들을 소개하며 스님도 옆방 열선당說禪堂에 서 스물세살 때 한 생각 느끼셨다며 당시의 선시禪詩를 소개한다.
사방벽에 조사스님 귀가 걸려 있으니
홀로 나갈 곳이 없도다
四壁封祖耳하니 獨出無方所라
주지 스님 방문 위에 걸려 있는 추사 글씨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業”을 보았다.
행서체行書體이지만 글씨의 품도가 크고 작고 하면서도 기운이 하나로 통일된 추사의 독특한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사천왕문에 걸린 해강海間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대가람大伽藍 백양사” 현판인데 이는 중국 당대 안전경顯眞卿 서풍書風의 건실한 해서로 입구의 장엄을 더해 주고 있다. 대웅전 기둥에 이 분의 주련 글씨가 걸려 있는데 같은 안진경의 마고선단기麻姑仙壇記 해서풍의 맛으로 서맥의 웅장하고 근엄함은 그 맥락이 같다.
부처님이 평생을 놓아 세간에 두루하니
시방의 여러 국토를 비추는 구나
생각과 말로 할 수 없는 큰 법을 설하시어
중생 의혹의 어두움을 길이 깨뜨렸네
부처님 몸은 여러 큰 법회에 두루하여서
법계에 충만하사 무궁무진하시네
적멸은 성품이 없으니 취할 수 없으나
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하셨네
그 가운데 중생은 한량이 없는데
크나큰 신통을 나투셔서
모두 조복 받았네
佛放光明編世界 照耀十方諸國土
演不思議廣大法 永破衆生癡惑暗
佛身普遍諸大會 充滿法界無罷盡
寂滅無性不可取 爲救世間而出現
其中衆生不可量 現大神通悉調伏
佛放光明編世界 照擺十方諸國土
演不思議廣大法 永RR:覆生癡 暗
佛身普遍諸大會 커최홉i法界無罷盡
寂滅無性不可取 寫했:世間而出現
其中葉生不可量 現:t神通想調tt
다음은 극락보전 현판과 주련 글씨이다. 이는 사백여 년 전 조선 선조 칠년(1574) 환응 선사가 조성했다는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글씨풍은 당시 유행한 석봉체石峰體(한호韓濩 1543~l605)와 유사하고 주련은 후대에 쓴 것으로 생각되며 중국 청대 황산곡풍黃山谷風의 행서行書에 가깝다.
아미타 부처님 어느 곳에 계시나이까
착심을 잊지 못하겠나이다.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생각 할 곳이 없아오니
육문에 항상 자금광에 놓였네
阿弼院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다음은 우화루雨花樓의 현판이다. 이는 당시 십일세 소녀 불하당不瑕建 김진민이 쓴 것이라 전한다. 아마 도만암 대종사가 중수할 때 어떤 인연으로 걸어 놓았겠으나 열한 살 어린 소녀의 글씨로는 위풍당당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사천왕문에 걸려 있는 주련으로 이는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근대 작고 작가) 글씨로서 북위 서풍의 해서로 정중하나 나뭇결에 글씨 윤곽만을 새겨 놓고 있어 필흔이 좀 부족한 감이 있다.
영산회상에서의 말씀이 비록 많았으나
소실봉앞에서는 한 구절도 친견치 못했네
상서로운 풀은 창창하여 달을 머금고
찬 소나무는 울창하여 히늘을 찌르듯하네
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峰前句未親
瑞艸豪茸含月色 寒松翁鬱出霄
이 밖에도 주련이 많이 있으나 지면 관계상 다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고 또한 추사 해서체 집자비集字碑인 “백양사석가사리탑비명병서白兩寺釋迦舍利塔碑銘幷序”를 탁본이나 필름에 담지 못한 것과 주지 스님 방에 걸린 서품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