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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행선日日行善 화자원의禍自遠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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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경성 1999년 08월 210호
괴로움 없는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공통된 염원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러한 중생의 염원인 행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며, 모든 종교는 우리가 처한 생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행복을 위한 교설이 아무리 찬란할지라도 중생 스스로가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미 교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열 가지 선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당부하셨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고 도와 주며(放生), 부지런히 일하고(勤勉), 바른 행동을 하며(正淫), 입으로는 바른 말(正語), 참된 말(眞語), 부드러운 말(愛語), 실다운 말(實語)을 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늘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布施), 고통에 처한 이들을 자비로 도와주고(慧悲), 삿된 법에 빠지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셨다.

나날이 선을 행하면, 비록 행복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앙이 스스로 멀어진다(日日行善 禍自遠矣).
나날이 악을 행하면 비록 재앙이 오지 매한다 하더라도 행복은 스스로 멀어진다(日日行惡 福自遠矣).
말하자면 션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그 결과가 지금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쌓이고 쌓인 숙업의 과보를 누구든지 피하지 못한다. 동악성제東岳聖帝는 이것을 비유하여 선을 행하는 자는 봄날의 풀과 같고, 악을 행하는 자는 칼을 가는 숫돌과 같다고 하였다. 봄날의 풀은 성장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으나 어느 날 문득 솟아오르게 것이며, 칼을 가는 숫돌은 그 닳아 없어지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날마다 이지러지는 바가 있어서 언젠가는 움푹 패인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그 과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선을 행하면서 낙담할 필요가 없고, 악을 행하면서 안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