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면 조치 단행하겠다
새로 종정에 취임하신 서암스님은 신년 법어를 통해 “우리 승려 불자들은 크게 반성해서 각성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불타의 근본 사상으로 회귀에서 육화정신으로 교단을 바로 이끌어 나아가야겠습니다”고 말씀하였다. 용서와 화해, 협조를 당부하면서 화합원융의 불타 교훈을 새겨 교단을 바로 세우자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신년 법어에 담긴 내용이 좀더 가식적으로 나타나려면 화합원융의 구체적 조치인 사면, 복권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의 시점에서 화합, 화해, 갈등 해소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옴은 올해, 특히 올 상반기에 치루어질 총무원장 선출과 관련되어 연상되기 때문이다.
90년 6월 22일 26대 총무원장 선출을 위한 종회가 열렸다. 월탄스님과 경합을 벌인 의현스님이 재선출되어 종헌상 규정된 중임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 20일 취임식에서 의현스님은 앞으로 임기 동안 교권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종헌 종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종정스님의 재가를 얻어 대사면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곧 화합의 구체적인 조치로 그 동안 체탈도첩 등 징계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대사면 조치를 하여 그들이 다시 종단의 공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제25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총무원 청사 난입과 관련하여 법진스님 등 4명이 체탈도첩, 원욱스님 등 아홉 명이 제적되었다. 86년 12월 7일 초심호계위에서 이렇게 결정, 88년 9월에 확정되었다. 87년 이후부터 총무원장에 대한 송사가 본격화되면서 애초 취임의 변으로 강조했던 종단의 안정과 화합은 반목과 징계의 악순환으로 자리 바꿈하였다. 정대스님이 총무원장직무집행가처분 신청을 서울민사지법에 제출한 반면 이 스님에게 체탈도첩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88년 6월에는 강화 보문사의 종진스님이 주지 해임과 관련한 소송을 민사지법에 내었다가 기각되었고 이 스님 역시 88년 9월 초심호계 위에서 체탈도첩의 형이 떨어졌다. 이 때의 초심호계위는 88년의 봉은사 사태와 관련하여 밀운스님에게도 역시 체탈도첩을 내렸다. 90년 1월 19일 열린 재심호계 위에서는 종진스님은 채탈도첩이 결정되었으나 밀운, 초우스님에게는 5년 동안 공권정지를 명했다.
사태가 악화되었던 88년 6월 3일 종단중진회의는 종단 분규를 우려하는 성명을 채택하였고”임기만은 지켜지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하여 중임의 취임식에서 사면 운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종정스님의 재가가 없었는지 아니면 아예 재가를 올리지 않았는지 어떤지는 알려지지 않은 채 대사면의 약속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 뒤 91년 분규가 극에 달해지면서 7월에는 종단 집행부의 주관으로 해인사 승려대회가 열렸는가 하면 9월에는 집행부에 반기를 든 측에서 통도사 승려대회를 열었다. 이 와중에 월정사의 도명스님, 주지 해임 사건이 생기고 종회의장 정대스님이 사퇴하였다.
징계는 계속 꼬리를 물었고 징계 당한 당사자는 어떻게든 징계를 내리는 쪽의 부당성을 입증하려고 기를 썼다. 능혜스님이 그렇게 됐고, 92년 10월 27일 초심호계위에서 신흥사 혜법스님에게 체탈도첩이 내려졌다.
결국 사면의 대상자가 엄청나게 불어난 셈이 되었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화합은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화합의 양측이 최선의 합일점을 찾아 적절히 양보하면서 현실적인 실리를 찾는 타협을 통해 묵은 감정을 씻어낼 수 있다. 또 상대방에게 일정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양보를 통해 화합을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당사자의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의 분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의 악순환 - 징계, 갈등, 대립 따위들 - 의 고리는 올 상반기 이전에 확실히 끊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뒤로 미루다가는 감정의 골은 깊어져 도저히 치유 불가능의 중증만 더할 것이다.
비록 지금 늦은 감도 없지는 않으나 늦었다 싶을 때 과감한 실천이 있어야 시간을 벌수가 있음을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일반 정치권에서 특정한 시기에 맞춰 단행되는 사면, 복권에는 여러 가지 의도하는 바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어제에 매이기보다는 내일에 대한 화합을 기도하려 함이다. 사면, 복권조치가 남발해서도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가 단행될 경우 그 영향은 크다 할 수 있다. 특히,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맞아 내일에 대한 밝은 전망이 갈구되는 시점에서는 반드시 요청되는 조치가 바로 낡은 감정의 해소가 아니겠는가.
거듭 말하건대 차기 종단 집행부의 구성이 어찌 될런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개혁 과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 일단으로 징계로 말미암아 사문의 권리가 박탈 당한 이들에게 폭 넓고 화기 넘치는 조치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