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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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근후
1994년 02월 144호
올해는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가정의 해’이다. 유엔에서 가정의 해로 선포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뜻은 말하지 않더라도 가정의 중요성에 있다.
가정이 중요한 만큼 가정으로 인해 좀더 깊은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떻게 하면 이를 통찰하여 행복한 가정으로 가능할 수 있도록 도울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사실 가족 구성원인 개개인이 자신의 통찰을 통해 좀더 성숙한 자아를 지닌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 가정의 문제는 없거나 훨씬 가벼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아시다시피 개인의 정신 수준이 완벽하지 못하고 때로는 유아적인 욕구와 신경증적인 욕구에 머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욕구 수준의 가족 구성원이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은 그만큼 병리적인 갈등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가정이란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이런 가정 체계 속에서 서로가 역할을 갖고 기능하는 것을 익혀 왔다.
가정은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가정이란 체계 안에서의 위치이다. 내가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또는 아들인가 하는 혈연적인 자리의 매김이다. 이런 가정 안의 자리 매김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매겨진다. 다른 말로 하면 그렇게 타고난다. 둘째로 태어나서 아무리 장남이 되고자 해도, 또는 아버지란 자리를 아무리 어머니의 자리로 바꾸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못한다. 이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가정 안의 자리는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성이 결정되듯이 태어날 때 이미 결정지워진다.
다른 하나는 이런 자리 매김을 바탕으로 가정 안에서의 역할이 주어진다. 이 역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사회 문화적인 통념과 일치하는 것도 있겠지만 반드시 일치하지 만은 않다. 가령 진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부모 밑에서 양육된 자녀는 전통적인 역할을 교육받기보다는 부모의 진취적인 영향을 받아 기존의 가치와 다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의 교육이 아니더라도 어느 만큼 성숙한 자아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가치를 통하여 역할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정은 이런 두 가지, 곧 선천적인 자리 매김과 후천적인 역할의 교육을 통해 익혀진 여러 양식을 가지고 가족이란 조직 체계 안에서 자신을 살아남게 만든다. 대개 교육된 양식은 의식이나 감정 그리고 행동과 사고 등을 통해 교육받은 대로 나타나며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양식을 일생 동안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릴 때 교육된 양식을 일생 동안 활용한다는 뜻이다.
가족 상호간의 관계를 통해 개인은 성장하고 성숙하고 때로는 병들기도 한다. 건강한 가족과 병든 가정, 이런 분별은 무슨 명백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인 보편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
병든 개인 때문에 가정이 병드는 것일까. 아니면 병든 가족 관계로 개인이 병드는가 하는 논쟁은 마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논쟁과 같아, 여기서는 양쪽 모두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병든 가정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남편을 자상하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실제 남편만큼 자상한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데 집에만 들어오면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처음에는 나한테 불만이 있어 그런가 하고도 생각했지만....”
외래 상담을 찾아온 한 중년부인의 호소이다. 그녀는 결혼 이십 년만에 자신에게 따뜻이 대해 주는 한 직원과 데이트를 하다 남편에게 발각되어 결혼 위기를 맞은 사례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떳떳이 내어놓고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남편의 무관심에 있다고 호소한다.
남들에게 관심을 쏟는 반쯤만 자기에게 해 주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항변한다. 왜 남한테는 친절하고 부인에게는 불친절한가요.
부인의 속마음을 대신해서 남편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밖에서 일을 하다보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닙니다. 나도 집에 돌아오면 가정에서 따뜻이 위로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그런 위로는커녕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놀아나니...”역시 볼멘 소리이다.
이 사례는 부부 관계를 예시했지만 가족 관계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누구와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부 관계 못지 않다.
가족 관계의 갈등은 어느 가족에서나 있을 수 있지만 그 관계가 생산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서 개인이나 가족의 건강이 결정된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긍정적인 관계로 일관되는 건강한 가정이 있고 반대로 서로의 관계가 생산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서 개인이나 가족의 건강이 결정된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긍정적인 관계로 일관되는 건강한 가정이 있고 반대로 서로의 관계가 역기능적으로 작용함으로서 불건강한 개인이나 가족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가정 안의 구성원이 변화함에 따라서 함께 변화해야 한다. 그 환경 속에서 영향을 주는 요인이 변화한다면 자신도 변화를 통해 적응해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정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고통과 분노의 감정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건강한 가족과 역기능적인 가족은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역기능적인 가정 구성원은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분노도 물론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불쑥 충동적으로 분노가 표현되기 때문에 다른 가족은 왜 분노하는지 원인을 알지 못한다.
때로는 가정 구성원이 애정을 독점하려는 지속적인 애정 표현을 통해서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이런 관계에 비해 건강한 가정 구성원은 표현하는 것과 표현하지 않는 감정을 잘 구분하여 적절하게 표현하며 자신의 자존심이나 선행한 감정의 잔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건강한 가족과 불건강한 가족의 차이를 보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차이는 대단히 많다.
부처님 말씀 가운데 - 우바새계경 - 가족은 서로 열 네 가지 일로 보답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의학적인 의미의 긍정적 관계를 가진 가족의 기능과 일치한다. 열 네 가지를 열거해 보면 극진한 마음, 언제나 게으르지 않는 마음, 일을 하면 끝까지 마치는 일, 일의 때를 잃지 않는 일, 언제나 손님을 위하여 보살피는 일, 집안을 깨끗이 하는 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말을 부드럽고 순하게 하는 일, 아랫 사람에게 시키는 일도 부드러운 말로 가르치는 일, 재물을 잘 지키는 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는 일, 음식을 깨끗하게 장만하는 일,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 능히 잘못을 덮어주는 일, 병고를 잘 구완하는 일 등이다.
다른 경전에는 부자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친족간에 언제나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여 질시하거나 증오하지 말라고 일렀다.
가령 건강한 가정을 살펴보면 이런 하나하나가 긍정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둘러보면 미혹한 중생들이라 기능적인 가정보다는 역기능적인 가정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역기능을 바르게 잡으려고 종교적인 놓은 가르침이 있으며, 병든 가정의 경우 치료적인 방법으로 교정하기도 한다.
역기능적인 가족의 관계를 치료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가정이 사회 구성의 최소의 단위라고 하지만 인간 유기체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건강의 요체는 자아의 강도 곧, 자신의 근기가 문제이다.
아무리 병든 가정이라고 해도 개인의 근기가 강하면 그는 병들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근기가 약하면 가정의 병리가 투사되어 희생양처럼 가정을 대표하여 병을 앓을 수도 있다.
역기능적인 병든 관계를 개선하거나 미연에 방지하려면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 이런 의문의 해답은 도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임상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우리에게도 있음직한 것이고 실행하는데 그렇게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것 같아 소개한다. 가족 관계는 어디에서는 갈등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있고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갈등을 생산적으로 풀어나가는지에 있다. 가장 기본은 대화이다.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갈까.
첫째, 정정당당하게 갈등을 풀어 가야한다. 갈등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비열한 방법이 아닌 서로가 인정하는 당당한 방법으로 풀어 보자. 비열한 방법은 우선은 풀어진 듯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것 자체가 갈등의 씨앗이 된다.
둘째로는 갈등의 핵심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갈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좁히고 현재의 문제에 국한해야 한다. 으레 말을 하다 보면 옛날에 어쨌고 등등 간접적인 일까지 왈가왈부 하는 경우가 흔하다. 갈등의 핵심을 넓게 잡고 간접적인 일까지 논의한다면 대화는 끝이 없다.
셋째로는 갈등을 유발시킨 행동 그 자체를 비판해야지 상대방의 인격을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본디 몰리거나 할 말이 없으면 상대방의 약점을 그것도 인격적인 모욕을 앞세운다.
넷째 대화란 나 혼자만이 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서로 말하고 서로 듣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갈등을 좁히려고 다투는 일도 궁극적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상태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든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것은 가장 불건전한 정신의 표본이다.
임금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고 갈파한 괴테의 말이 옳다.
가족이 그만큼 중요한 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혼이 없는 신체가 사람이 아니듯 이 결코 가정이 아니란 말도 있다.
본디 가정이 줄 수 있어야 할 근본적인 만족을 가정이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불행이며 불만의 가장 뿌리 깊은 하나의 원인이 된다는 러셀의 경구를 새겨 보자. 올해를 가정의 해로 선포하고 마음을 되새기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