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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가섭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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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02월 144호
발란타 비구의 돌출
무착無着(821~900) 선사가 오대산에 도착하여 어떤 노인을 만났다. 이 곳의 대중들은 어떠한지 물었다.
“용과 뱀이 섞여 있고 범인과 성인이 함께 한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여러 부류의 개성 있는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대중생활의 속성을 가장 잘 포착한 말이다.
당나라 때뿐만 아니라 부처님 당시의 대중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율장에서는 부처님 열반 무렵을 “제자들은 뒹굴면서 통곡하다가 기절하여 땅에 엎어졌다”고 그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깨친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구별이 없었다. 마하가섭과 아난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처님의 열반이 어찌 그리 빠르신가. 세간의 밝은 눈이 어찌 그리 빨리 꺼지는가. 우리들이 숭상하는 법이 어찌 이처럼 사라지는가.”
이는 믿고 의지하던 스승을 잃은 데 대한 슬픔과 아울러 정법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교차된 것이었다. 이 때 전혀 예상 밖의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중 가운데 있던 발란타跋難陀(Upadana)가 입을 열었다.
“대중들이여 그치시오. 그치시오. 통곡한들 무엇하겠소. 우리는 이제 자유를 얻었소. 잔소리쟁이가 없어졌으니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소...”
그는 부처님을 ‘잔소리쟁이’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일부 대중들에게 부처님은 잔소리쟁이로 비쳤을 것이다. 일이 생길 때마다 “네가 한 짓은 옳지 않다. 위엄 있는 행동은 아니요, 사문의 법이 아니요, 청정한 행위가 아니요, 믿고 따르는 행이 아닌지라 할 바가 아니거늘 너는 어찌 그런 짓을 하였느냐”하고 준엄하게 꾸짖고는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져서 잘못을 고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마하가섭의 고뇌
발란타 비구의 말을 들은 교단의 실질적 책임자인 마하가섭은 ‘악한 법이 일어나기 전에 경율을 모아야 하겠구나’생각하고는 장례를 마친 뒤 경율의 확인 종합 정리 작업을 추진한다.
먼저 그는 수미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왕사성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일을 벌이고자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들은 곧장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리를 신통력으로 들은 사람은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오백여 명이 추천되어 결집을 서둘렀다. 그러나 그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아난다는 용맹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어 겨우 합류할 수 있었다.
마하가섭은 비장한 말투로 결집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우리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계법을 모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외도들이 딴소리를 늘어놓거나 비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문 고타마의 법은 연기와 같구나. 살아 있을 때는 계율을 배우더니 죽고 없으니 계율을 배우는 이가 없구나’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단과 정법을 지켜야 하는 책임자의 고뇌가 절절히 배어있다.

아난다의 실수
드디어 결집이 시작되었다. 율장은 계를 가장 잘 지킨 우팔리優婆離의 몫이었다. 그가 계율을 암송하면 모인 대중들이 그것을 확인한 뒤 함께 합송하는 형식을 거쳤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계목을 만들었다. 거의 계율 조목이 완성되었을 무렵 아난다가 이의를 제기하였다.
한마디 툭 던졌다. 우팔리가 이 부분을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아난다다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중들은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나는 친히 부처님께 들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비구들을 위하여 사소한 계는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곧 부처님께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계율 조항은 교단과 대중이 원할 경우에는 폐지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우쭐해 있는 아난다에게 마하가섭이 다시 되물었다.
“그대는 부처님께 어떤 것이 사소한 계인지를 여쭈어 보았는가.”여기에서 아난다의 엉성함도 아울러 드러난다.
“그 때 마침 내가 근신 걱정으로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하여 부처님께 어떤 것이 사소한 계인지를 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난다의 실수’ 몇 가지 가운데에 하나인 ‘사소한 계’ 부분이다. 그래서 마하가섭은 그 허물을 추궁한 뒤 대중에게 참회하게 한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추궁하고 참회를 시킨다고 해서 사소한 계율 항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하가섭의 결단
그는 생각하였다. 사소한 계의 내용을 아난다 혼자서 듣지는 않았을 것이며 분명히 누군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중들의 기억에 의거하여 그것을 가려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얘기하는 비구마다 사소한 계의 내용이 달랐다. 사실 계율 조목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 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모든 비구가 전체적으로 함께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공의公儀를 열었으나 오히려 더 복잡한 양상으로 일이 꼬여 갔다. 결국 모든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모든 결정의 책임 역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어른 노릇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해야 했다.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인 그로서는 가능한 한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율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설사 부처님께서 사소한 계는 버려도 좋다고 했지만 무엇이 사소한 계인지 알 수 없는 지금 차라리 원형 그대로 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였다. 성불리 고쳤다가 뒷날 너도 고치고 나도 고친다면 결국 아무것도 남을 게 없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여러 장로들이여! 지금 여러 사람들의 말이 저마다 다르니 어느 것도 사소한 계인지 모르겠소. 지금 함께 규칙을 세웁시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도 제정하지 맙시다. 부처님께서 제정한 것은 버리지 말고 제정한 바에 따라서 배우도록 합시다.”
모인 오백여 대중들의 찬성과 동의로 계율이 완전히 고정화되는 순간이었다. 마하가섭의 고뇌에 찬 결단의 결과이기도 했다.

덧붙여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제1결집’이라는 교단사敎壇史적 의미뿐만 아니라 계율사戒律史에서 하나의 표준적 지침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곧, 부처님이 제정한 그대로의 계율은 사소한 계의 여부를 떠나서 그대로 지킨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 마하가섭의 뜻이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부처님의 뜻과 다르지 않다는 긍정론이 대세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계율의 고정화로 시대성과 지역성에 따른 문제점은 계율은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부수적인 조항들을 덧붙여 가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보수성이 교단을 오늘에까지 이르게 한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란타 비구는 정법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결집을 부추킨, 말하자면 역경계逆境界 - 자기의 본 마음과는 달리 일부러 방편으로 보이는 생각과 행동 - 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말세비구들 또한 발란타의 화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