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속에 가려진 총무원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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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12월 202호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지난 한해를 돌이켜 반성하고 좀더 알찬 새해를 맞기 위한 각오를 새롭게 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향은 단체나 사회, 정부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단체나 가정, 회사, 사회, 정부는 지난 한해 공과功過를 바탕으로 더욱 내실 있는 계획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98년은 불교계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해로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98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발새안 조계종의 분규사태로 인해 불교계는 또다시 국민적인 지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분규사태의 진행과정이나 발생원인이 모두 부끄럽기 그지 없는지라 이번 분규로 불교계가 입을 상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명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분규사태는 부도덕한 종권에 대항하는 참신한 재야세력이 도덕적 우위에 바탕한 종단개혁을 명분으로 일으켰던 94년 조계종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분규사태는 한국 불교계에 횡행하고 있는 고질적이고도 후안무치적인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이번 분규는 월주 총무원장이 3선을 강행해 장기집권을 도모하려 한 데서 시작이 됐다. 지난 94년 역시 3선을 강행해 물의를 일으킨 서의현 집행부를 축출하고 출범한 개혁종단의 첫 총무원장에 의해서 또다시 3선 시도가 재연된 것은 조계종 지도자 그룹의 빗나간 역사 의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 상징적인 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월주 총무원장 후보측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3선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지만 그 같은 주장은 많은 불교대중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조차 이해되지 않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백 번을 양보해서 이번 총무원장 도전이 법리적으로 적법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논란과 시비가 일어난다면 마땅히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자가 취해야 할 도리라는 것을 몰랐다는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또 이번 분규는 종단의 위계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종단의 법통을 상징하는 종정 예하의 교시를 무시하는 월주 총무원장과 그 주변 승려들의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불교계도 이제 다 된 집안이 되었다’ 라는 빈축을 불러일으켰다. 일반 가정에서조차 아버지의 말을 자식이 듣지 않는다면 그 집안꼴이 우습게 되는 것이거늘 하물며 불가침의 권위와 신성을 가지는 종정예하의 교시를 감히 어기고 있으니 불교 집안의 질서가 크게 흐트러졌다는 것이 세간의 반응이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종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늘 영향력을 행사했던 원로회의도 그 위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 원로회의 의장이 불신임되고 새 원로의장이 선출되는 등 원로 스님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조장된 것은 불교집안의 적지 않은 손실이다.
중앙종회는 이번 분규사태를 겪으면서 스스로의 역할과 정체성에 심대한 상처를 자초하는 행보를 거듭했다. 특히 누구보다도 종헌종법을 앞장서 지키고 생명처럼 수호해야 할 중앙종회가 초법적인 승려대회를 결의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넌센스라는 힐난을 받고 있다. 또 중앙 종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일부 의원들이 이해집단을 결성하는 등 세속적인 모습을 공공연하게 보이고 있는 것은 종단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종정교시라고 해도 종헌종법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명분을 앞세워 3선 출마를 강행한 쪽이나, 선거운동 기간 내내 종헌종법 수호를 외쳐왔음에도 초법적인 승려대회의 핵심적 자리를 맡는 후보쪽이나, 종교교시 봉행을 앞세워 총무원 청사를 물리적으로 접수한 뒤 한 달이 가깝도록 앞으로 일정을 밝히지 않는 정화개혁회의 쪽이나, 분규사태를 수습해야 할 원로회의가 내부적인 분열상을 노출한 것이나 모두 정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이 다수 불자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마디로 이번 분규는 불교계가 가지고 있던 각종 병리적 요소들이 한꺼번에 분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번 분규사태는 불교 내부에 많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94년 조계종 사태에 불교계에 외상을 주었다면 이번 분규는 내상을 안겨준 사태라는 것이 불교계의 분석이다. 아무런 명분도, 변명의 소지도 없는 추악한 싸움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분규사태를 겪으면서 불자들은 마음속 깊이 저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94년 종단개혁의 결과가 결국 이런 것이었나라는 상실감에 방황을 하는 젊은 스님들이 없지 않다는 소식이다. 그 동안에는 자랑스럽게 승복을 입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는 스님도 있다. 인천의 스승으로서 성불과 함께 중생제도의 대원력을 갖은 여래의 사도라는 자부심에 이번 분규사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 것이다.
재가불자들도 이번 분규사태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자라는 것이 웬지 부끄럽게 느껴져 불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감추곤 한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불자 어린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절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왕따’ 가 되기도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린다. 만일 종교 편향적 사건이 있더라도 이를 시비할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증이 확산되고 있다. 불교는 왜 그렇게 싸움만 하느냐는 말을 이웃이나 동료, 친지들에게 들을 때면 울화가 치밀지만 달리 변명할 말을 찾을 수 없으니 스트레스만 쌓인다는 불자도 많다. 자연스럽게 스님이라는 호칭이 사라지는가 하면, 밤낮 싸움질만 해대는 곳에 무엇하러 다니느냐는 남편의 ‘구박’ 에 시달리는 보살들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조계종 분규사태 관련 보도를 접하는 불자들의 가슴도 찢어질 정도로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모습들이 상세히 전해질 때마다 가슴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다. 닭벼슬보다도 못하다는 중벼슬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투를 벌이는 스님들의 모습이 담긴 신문을 펼쳐들고 ‘신파가 났다’ 며 긴장을 감추지 않는 조직폭력배 두목들의 회의장면을 그린 한 일간신문의 풍자만평을 보면서도 단 한마디라도 항변할 것이 없게 된 신세가 마냥 서글프다. 더 이상 불교를 스님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설계해야 할 이즈음에 분규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불교계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처님과 보살, 그리고 역대로 정법을 이어준 조사들과 선지식들에 참회하고, 또 국민 앞에 사과하며, 분규당사자들에게는 적당한 벌을 가하고,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적 청산과 획기적인 제도 개혁을 서두르는 일일 것이다. 또 다시는 수행자가 아닌 삿된 정치꾼들이 설치는 교단풍토를 허용해서는 안 되며, 공부와 포교에 전념해야 할 스님들을 정치승으로 만드는 빗나간 중앙집권적 종무행정 구조를 혁명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94년 종단개혁 이후 사 년여, 아무리 훌륭한 개혁조치라고 하더라도 종단의 암적인 인물들에 대한 확고한 청산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조계종은 이번 분규사태를 겪으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제도든 사업이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이면 1999년이다. 말 그대로 21세기가 목전에 다가온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가 정보와 문화가 지배하는 새로운 문명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들의 예측대로라면 21세기에는 심오한 철학체계와 통찰적 지혜를 강조하는 불교가 각광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불교가 지금처럼 실망스러운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21세기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채 이 년도 남지 않은 21세기를 불교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1999년이든 21세기든 준비하는 자가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고 결국 그가 승리한다는 인과의 법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