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 선사께서 차잎을 따다가 말고 그 제자 앙산스님에게 말하였습니다.
“종일 차잎을 따거늘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구나. 그대의 근본 형체를 보여다오.”
그러자 앙산스님은 차나무를 한번 흔들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용用만 얻었지 체體는 얻지 못했다.”
그러자 산스님이 되물었습니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위산선사는 양구良久하였습니다.
이에 앙산스님이 말하였습니다. “화상께서는 체면을 얻었지 용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말하였습니다. “그대에게 삼십 방망이를 때려 주리라.”
선종의 오가五家 가운데 최초로 형성된 위앙종潙仰宗은 호남의 위산潙山때 동경사同慶寺 영우靈祐스님과 그이 제자인 혜적慧寂스님에 의해 확립된 선풍을 말합니다. 혜적은 훗날 강서의 원주 앙산을 중심으로 교화를 폈기 때문에 위앙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위산 영우스님은 백장스님의 제자입니다.
백장 선사를 시봉하던 어느 날 백장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화로 속에 불씨가 있는가 찾아 보거라.”
이에 영우스님은 화로의 재를 뒤적였습니다.
“불씨가 없습니다.”
그러자 백장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로 속을 깊이 뒤져서 하나의 불씨를 찾아내었습니다.
이를 영해게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불씨가 아니고 무엇언가?”
이에 영우스님은 크게 느낀 바가 있어 감사의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장스님은 “이는 잠시의 지름길일 뿐이다. 시절 인연을 관하라”고 하며 더욱 정진하라고 다그칩니다.
위산스님의 제자로는 앙산 혜적스님 외에도 기와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는 향엄 지한스님과 산길에서 복숭아꽂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삼십 년 만에 훌연히 깨달았다는 영운 지근스님 등이 있습니다.
앙산 혜적스님은 육조 스님과 같은 광동성 소주 사람입니다. 앙산이 열다섯살 때 몇 번이나 출가하려고 하였지만 부모의 승락을 받지 못했는데 어느 날 두 줄기의 빛이 조계산으로부터 솟아 곧 바로 앙산의 집으로 비추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출가를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18세에 사미가 되어 공부를 하다가 그 뒤 위산을 방문하여 영우스님을 뵙고는 “부처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통하여 안목이 열리고 나서 그 문하에서 십오년을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밭에서 차잎을 따면서 스숭과 제자가 한마디씩 주고 받었던 것입니다.
차잎을 따면서 법담을 난눈 방거사 이야기도 선가에 전해 옵니다.
칙천則天 화상이 어느 날 차를 따는데 차나무 숲 속에서 방거사가 물었습니다.
“법계法界가 몸을 용납하지 않거늘 스님은 내가 보이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노승이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방거사에게 대꾸를 할 뻔 했습니다.”
이에 방거사가 말하였습니다.
“들으면 대담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입니다.”
그래도 선사가 아는 체를 하지 않으나 거사가 다시 말하였습니다.
“아까 경솔하게 물은 일을 고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데도 선사는 또 아는 체하지 않으니 거사가 할喝하고는 말하였습니다.
“너무 하십니다. 내가 낱낱이 기억했다가 눈 밝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차 바구니를 들고 돌아서서 가 버렸습니다.
방거사 역시 차밭에서 공부를 저울질당했던 것입니다.
차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조주스님의 끽다거喫茶去일 것입니다.
조주선사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일찍이 여기에 왔던 일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끽다거. 차나 한 잔 먹게.”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일찍이 여기에 왔던 일이 있는가?” “왔던 일이 없습니다.” “끽다거. 차나 한 잔 먹게”
그러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원주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큰스님께서는 온 적이 있다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라고 하고, 온 적이 없다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이에 선사께서 말했습니다.
“원주! 자네도 차 한 잔 먹게.”
고인들은 이렇게 차잎을 따면서도 차를 마시게 하면서도 늘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길래 지대방에서 차상이나 늘어놓고 한담이나 하고 잡담이나 즐기는 것은 차를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수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차 한 잎, 차 한잔에도 공부의 도리가 있음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전南泉스님과 귀종歸宗스님이 함께 길을 가다가 도중에 목이 말라 차를 다렸습니다.
남전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전부터 사형과 이야기한 인연은 그만두고, 다른 날 어떤 이가 극칙極則이 되는 일을 물어 오면 어찌 하시겠소?”
이에 귀종스님이 땅을 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이한 조각 땅 위에 암자를 세우면 좋겠소.”
이에 남전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암자 짓는 일은 그만두고 극칙의 일은 어떠하오?”
그러자 귀종스님은 차관을 걷어차 버렸습니다. 이에 남전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사형은 차를 마셨으나 나는 아직 먹지 못했소.”
이에 귀종이 말하였습니다.
“그런 소견으로는 물 한 방울도 녹이지 못하겠소.”
그러고는 혼자 떠나 버렸습니다.
중국 땅은 물이 나빠 길을 다닐 때도 차도구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길에서 치를 마시면서도 한가하게 목이나 축이고 경치나 감상하면서 차맛이나 즐기는 그런 차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도 칼날 같은 법이 오고 가고 했던 것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길을 나섰다가도 가차없이 차상을 엎어 버리고 그 자리에서 칼로 무 베듯이 헤어져 버리는 기개의 소유자들이 바로 참선 공부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은 차잎을 따면서도 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체體를 보이라’는 스승의 물음에 차나무를 한 번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용用만을 얻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제자가 ‘스승님은 체만 얻었을 뿐’이라고 해 버립니다.
어쨌거나 스승은 스승으로서 제자는 제자로서 도리를 다했습니다. 아버지가 인자하니 아들이 효도를 하는 격입니다.
하지만 대가大家는 얼굴만 컸지 사람은 덜 되었습니다.
창과 방패가 서로 공격하니 두 사람이 제각기 한 개의 말뚝만을 얻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체와 용을 함께 거두는 한 구절이 되겠습니까?
잘 참구해 보기 바랍니다.
적다체용摘茶體用은 기인전幾人傳고. 일감다주일묵연一撼茶柱一默然이로다.
삼십산둥三十山藤을 방미방放未放하여 경장황엽작금전竟將黃葉作金錢이로다.
차를 따는 체와 용을 몇 사람이 전했는고? 한 사람은 나무를 흔들고 한 사람은 잠자코 있네.
삼십 방망이 때리려도 때릴 수 없어 마침내는 누런 잎을 돈이라고 속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