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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교설의 존재양식-탈속과 환원, 탈속의 과정(修行)은 환원의 여로(行化)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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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강 - 현원 1998년 12월 202호
현원/가산불교문화연구원 기획실장

연기교설緣起敎說은 우리의 통상적인 의식을 전향적으로 바꾸어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근대 이후 철학적 사유의 기초로 의심 없이 합의한 ‘인간’, ‘개아’, ‘개물’ 등 사유의 중심 또는 실체개념이 부정되는 것으로부터 연기교설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지향성志向性도 다르다. 유신론의 지향성이 신과의 만남으로 귀결되고, 유물론의 도착점이 세간이나 육신을 부정하는 고행 등의 또 다른 돌아옴 없는 무한탈속이라면, 연기교설은 탈속이라 하나 신에게로 나아감이 아니며, 환원이라고 해도 세속화가 아니어서, 두 길이 그 과정을 또한 공유하기 때문에 그 존재양식을 연기중도의라 부른다. 먼저 연기의에서 탈속이란 연기의 속제적 변용을 반성하는 일이다. 속제의 결과와 원인인 고苦와 집集의 상의상존하는 현실이 속제俗諦의 진실(제諦,satya) 그 자체여서, 상의상존하는 연기적 존재 양식은 공空 이외에 그 이상의 어떠한 제일의 원인도 소급되거나 설정되지 않는다. 제일의 원인에로의 소급과 갈망(taṇhā)은 타당한 외재적 속성이나 실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내재된 욕망의 변용일 뿐이어서 무아요 공일 뿐이다.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무아의 오온도 연기적 가합의 임시적 존재일 뿐이어서 모든 실체적 가설은 대개 우리의 내면화된 허상에서 연원한다. 속세는 삼애三愛(欲愛, 有愛, 無有愛)를 원인삼아 삼계三界(욕계, 색계,무색계)로 윤회한다. 갈애의 연기적 변용일 뿐, 그 이상의 제일 원인적 실체가 있지 않다면 속제는 허환이고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은 공이다. 속제의 연기적 상응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갈애를 소멸하면 속제는 그 의존의 기초를 잃고 사라진다. 탈속은 그렇게 완성될 수 있다.
그 속제 의존의 기초를 버리는 길-탈속의 길을 도제道諦라 하고 탈속의 완성을 열반-멸제滅諦라 한다. 속제의 소멸을 위한 수행도mārga가 요구되고 수행의 완성으로 열반은 완성된다. 그렇다면 연기의 속제적 변용이 갈애의 수습을 통해 사라지고 나면 열반을 성취한 자에게 있어 존재양식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진제적眞諦的 행화 行化-환원의 길은 어디로, 무엇을 지향하는가? 소승의 안주 곧 열반 그 곳에 머무는 것과 새로운 존재양식을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대승의 길뿐이다. 그 상징적 에피소드는 일찍이 석존의 침묵과 제석천의 청법으로 시작된 불타석존의 사십구 년 행화다. ‘요익중생’이 바로 환원의 지향성이다. 어떤 형이상학적인 실재의 감득이나 신의 권화를 빌린 실체적 이데아가 아니다. 열반을 성취한 자가 곧 탈속을 완성한 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양식은 연기적 자각(공)에 의한 새로운 건립-환원-세간으로 아름답게 돌아옴이다. 그러나 환원의 길이 다른 데로 열려 있거나 또다른 수습의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진공묘유” 로 언표된 상징적 구조는 공과 연기의 진속불이眞俗不二 한 역동적 구조를 형식화한 표현이다.
그러나 무위無爲의 열반을 성취하고 세간에 돌아온 환원의 내면적 묘용妙用은 이해되지만, 그 모습(相)은 초기교설 뒤로 많은 논의를 거치게 된다. 연기설이 공空의 철학과 만나 대승적 전환을 하면서 반야의 실천 곧 환원의 대승적 모델이 정착된다. 무위無爲의 공용共用을 세간화하는 보살의 바라밀행이다. 물론 근본교설에서의 중요한 단서는 오온의 승의제적 해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생은 실체없는(공) 삼독三毒의 세간적 변용變用(연기)으로, 보살은 번뇌를 여여 자재한(無爲, 般若, 空) 세간적 묘용妙用(연기)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전향적 탈속의 의식 곧 수행의 기틀이 공의 연기적 변용으로 엄연히 실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