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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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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숲 - 무무생 1998년 12월 202호
“회오리바람은 아침까지 불지 못하고 소나기 또한 온종일 내리는 법이 없다” 하는데 사십 넘도록 마음 속에 회오리와 소낙비는 언제쯤 그치려는지 한 장 남은 달력에게 물어봅니다. 뜻 없이 하루하루를 넘기다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세월이 흘러감을 서러워하고 세월의 야속함을 한탄해 보지만 정작 마음속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 밝은 달 띄우지 못함에는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으니 세월이 흘러감을 야속해 한들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나에게 세월은 업의 바다일 뿐입니다.
오랜 만에 바다를 보러 왔습니다. 밀물과 썰물은 생生이 되었다가 사死가 되었다가 온종일 생사문제로 오락가락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에는 밀물도 바다의 본디 모습이 아니요 썰물도 바다의 본래 면목은 아니였습니다.
만일에 바다의 본디 면목을 알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밀물과 썰물은 그 자체로 동화가 될 수 있고 드라마일 수도 있겠지요.
밀물이 생이요 썰물이 사라면 생사 바다의 본디 면목은 무엇이겠습니까. 한생각 일어남이 밀물이요, 한생각 버림이 썰물이라면 일어남도 버림도 다 여의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지요.
참구하고 참구하여 볼 일입니다.
오늘 내가 온종일 밀물과 썰물의 부산함에 갇혀 있듯 사십여 년의 세월 또한 생사의 부산함에 갇혀 있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길도 끊어 버리고 가야 할 길도 끊어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 알 수 없는 바다의 본디 면목을 향해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업력의 끄달림으로 인해 이 해의 달력이 뜯겨지고 나면 또 다시 이 간절한 마음도 지워질 듯합니다. 업보이겠지요.
이제 올해의 방문을 닫고 새해의 방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새해의 달력도 걸어야 하겠지요. 내 달력에는 세월을 지우고 이러한 달력을 걸어 놓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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