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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의 현장 간디학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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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8년 12월 202호
제법 맵찬 바람이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둔철산 끝자락 마을에는 잎 다 떨구고 새빨간 감 너더댓 개씩 매단 감나무들이 무리지어 섰다. 그 적갈색이 어찌 그리 불타듯 선명한가. 설레는 마음 누르고, 바람에 휩쓸려 휘청이는 오롯한 산길 몇 구비 돌아 간디학교에 이른다. 둔철산이 휘두르고, 겹겹이 포갠 지리산 능선이 마주한 너른 터, 가슴이 확 트인다.
금요일 오후 3시. 간디학교 식구 모두가 참석해 한 주일을 마무리하는 ‘식구 총회’ 가 한창인 때다. 매사 그렇듯이 총회의 허락을 받아 식당 겸 강당에 머리를 들이밀고 보니, 널따란 방 안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뒤섞여 앉아있는데, 벽에 기대고, 다리를 뻗고, 서로 몸 기대고 있는 모양이 도무지 ‘회의’ 중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안건 하나하나에 불쑥불쑥 팔들이 올라가는 걸 보면 마음마저 허술하지는 않은 게다.
총회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 새 도서관으로 책 옮기기에 나선다. 식구총회에서 결정되었던 바다. 한번 결정되면 여기 식구 누구라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몸에 밴 듯 가벼운 몸놀림이다. 간디학교가 지향하는 바,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 이 빚어내는 열매 하나이리라.

이른바 대안학교로서 간디학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7년 봄이었다. ‘강당 학문의 무용성 내지 비현실성과 이기주의적 자본주의의 속악성’ 에 절망감을 느낀 현 양희규 교장이 미련없이 대학 강단을 버리고 사재를 털어 94년 겨울, 새로운 문화를 연구해 실현해 내려는 공동체 ‘간디농장’ 을 몇몇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둔철산 자락에 마련한 지 사 년째 되는 해였다.
왜 간디일까. 비폭력 민족운동가로서 공동체를 이루어 농장과 학교를 운영하고 민족해방운동을 벌인 간디의 철학과 삶에서 감동스럽게 읽어낸 바, 이 시대 지식인이 마땅히 품어야 할 ‘역사적 책임감’ 과 이를 현실로 살려낼 ‘탁월한 방법론’ 을 그 삶의 길잡이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공동체 문화에 뜻을 둔 지 오래니, 그 실마리로 잡은 것이 교육이었다.
95년 한해, 성인 대상의 생태학교 ‘간디대학’ 을 운영하는 한편,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골몰하던 그와 농장 식구들은 그 해 ‘녹색평론’ 11, 12월호에 새로운 학교 설립을 ‘선언’ 하고, 이에 동참할 교사와 학부모를 구한다. “대학입학 준비나 지배 이데올로기 학습의 장으로서 기존 교육제도와 문화에 대한 ‘불복종의 정신’ 을 가진”, 앞으로의 간난 신고를 나눌 동반자들인 셈이다.
이듬해 봄까지 열 명쯤의 교사가 모였다. 단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머리와 몸을 부림이 조화를 이루는 일상의 삶 속에서 참스승이 되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계절학교를 꾸려 나갔고, 여기에 참가했던 학부모 일부와 그 정신에 공감하는 이들이 이 실험적인 학교에 제 자식을 보내기로 용감하게 결정을 내리니, 97년 3월 9일, 교사 열 명과 학생 스물두 명의 ‘간디 청소년 학교’ 가 문을 열게 되었다. 가족 같은 작은 학교. 간디농장 식구들이 꿈꾸는 공동체 학교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인가도 받지 않았건만 꾸준히 학생들이 몰려와 두 해 사이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의 학생이 쉰일곱 명이 되었고 교사도 열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모든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순조롭지만은 않아서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도 일고 이를 못 견뎌 학교를 떠나는 이들도 생겼으나, 남은 식구들의 열의와 헌신으로 학교는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갔다. 지난해 말, 고등학교는 ‘특성화학교’ 로 정식 인가까지 받았으니, 간디학교는 대안학교로서 우리 나라에서 ‘성공’ 한 거의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이미 40년 전부터 공생과 생태적 삶의 실현을 이루기 위한 교육을 해 오며 튼실한 지역 사회를 일구어 내고 있는 홍성의 풀무농업기술학교가 있으나, 농업학교라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일단 논외로 한다.
간디학교의 교육은 지식 교육과 의식주 및 감성 교육 둘로 크게 나뉜다. 오전에 이루어지는 지식 교육은 그 과목들로는 철학이 필수인 점을 빼고는 기존 학교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나 수업 방식은 판이하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훈련이 아니라 개성의 존중과 잠재력 발굴로 탁월성을 키워내는’ 교육이라는 간디학교의 발원대로, 교단 없는 교실에서 자유롭게, 교사 재량껏 이루어진다.
국어 시간이면 소설이나 고전, 심지어 만화책이 교재가 되며, 영어 시간에 팝송 한 곡 부르는 것으로 수업이 끝나기도 한다. 교사가 갖고 있는 지식을 학생들 앞에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헤매더라도’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일반 학교 과정과 견주어 보자면 허술하기 짝이 없으나, 정작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의 글솜씨며 말솜씨, 자기 의사 표현 능력 등은 야무지다.
오전 수업은 학교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둔철분교에서 받는다. 남학생과 여학생 기숙사, 교무실, 식당 겸 강당, 도서관을 빼고는 학교 건물이 없는 탓이다. 만만치 않은 거리에 오르막 산길인 점을 감안하여 삼분의 일쯤은 학교 봉고차로 태워 주긴 하지만, 주말 외출 때면 진주로 몰려가 햄버거와 치킨 사 먹는 일이 즐거움인 도시 출신들이 거개인 학생들로서는 사실 힘든 등교길이겠다. 그러나 이내 익숙해진다. 꺼벙이와 삼순이 같은 개들과 새끼 거느린 거위며 오리들 배웅 받아가며 나선 길에서, 청량한 햇살과 맑은 산공기가 제 숨기운이 되어 온몸을 고루 채우니, 그 즐거움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음을 느낄 터다.
기존 학교에서 팽개치다시피 하고 있는 의식주와 감성 교육이 교육 내용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은 간디학교의 큰 특징이다. 시 짓기, 표현예술, 명화 감상, 풍물 같은 감성 교육은 물론이요 ‘자립자족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는 진정 쓸모 있는 교육’ 인 의식주 교육 또한 온전한 인격체 형성에 필수적인 내용인즉, 텃밭 가꾸고 옷을 만들며 집을 짓고 산 속에 길을 내 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가치와 뭇생명의 소중함,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운 어울림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리라.
이 감성 교육과 의식주 교육은 오후에, 간디학교에서 이루어진다. 교실 밖의 수업도 있다. ‘전국구’ 학교라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탓에 주어지는 ‘가정 학습’ 은 한두 달에 한 번, 3박 4일쯤 제 집에 다녀오는 것이고, 창녕 우포늪 탐사라든지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관람같이 사나흘의 일정으로 치러지는 ‘이동수업’ 은 알맹이 없는 여느 ‘수학여행’ 과 달리 학생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지역사회와 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알찬 시간이 된다.
따지고 보면 기숙사 생활 자체가 엄연한 교육이다. 개성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자유와 공동체 안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할 터이니, 학교 초기에 해방감에 들뜬 학생들의 생활은 방종하다 소리들을 만했고, 이에, 없던 사감 선생님이 생겨 저마다 여학생과 남학생 기숙사 ‘관리’ 를 책임지게 되었다. 공동체 생활에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내리는 벌점 제도라든지, 저녁 먹고난 뒤에 묵학 시간을 갖는다든지 하는 규칙도 생겨났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자율’ 의 의미를 체득해내서, 지금 이 제도들은 온전히 학생들의 책임으로 넘어갔다.
‘선생님’ 이 아니라 ‘쌤’ 이라 불리는 교사와 학생들의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는 다른 학교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지 싶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과 똑같은 공동체 식구의 하나일 뿐. ‘학생들이 행복해 하는 학교’ 를 꿈꾸는 교사들답게 그 방, 교무실은 늘 학생들에게 열려 있다. 잠옷 바람으로 달려와도 좋고, 맨발로 들락거리며 장난을 쳐도 기꺼이 받아 준다. 그러므로 교무실은 특별한 학교 행삿날이 아니더라도 늘 북적거린다. 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일상사를 재잘대거나 제 속내를 털어놓는 학생들 모습은 학교 교무실이 아니라 제 집 안방에 앉았는 것인 양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가족 같고 친척 같은” 쌤일지라도 교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정해야 할 터, 새로운 교육에 대한 부푼 꿈만큼 제 자신을 변화시키고 걸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느라 간디학교 쌤들은 매주 교사 교육을 받는다.
월요일 첫시간, 외부 강사나 교사들이 돌아가며 특강을 하는 “주를 여는 시간” 이나, 금요일 오후의 식구 총회, 지식 교육이 없는 토요일, 온 식구가 참여하는 학교 청소와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들이 다 이 공동체 학교의 몸과 마음을 더욱 건강하게 다져주는 귀한 교육 내용들이다.
양희규 교장은 이 학교를 ‘협동조합’ 이라 말한다. 사립재단으로 이사회와 이사장을 갖추고 있으나 실제 학교 운영의 중심은 교사와 학부모다. 예컨대 교사 공동체에서 교사들의 임금 수준을 결정해 배당하거나 학부모회에서 기숙사 운영을 맡는 일들이 그렇다.
아이가 원한다 하더라도 학부모가 불만스러워하거나 못 미더워하면 절대 입학시키지 않는 간디학교의 원칙에 비추어 보건대, 이 학교 학부모들이야말로 새로운 교육, 새 문화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뭉친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 할 수 있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 운영은 전적으로 이들이 내는 학비로 이루어졌다. 비인가 대안학교의 살림 형편이 오죽했으랴. 단 한 개 뿐이던 농구공이 터져도 학생들이 새것 사달라 소리 못할 정도였다는데. 그나마 올해는 고등학교가 인가나면서 교육부에서 보조금이 나오는 덕에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학교 살림은 살림이고, 양희규 교장은 최근 학교 뒤쪽 임야 십만 평쯤을 구입했으니, 내년부터 생태마을을 일구기 시작할 요량이다. 애초에 둔철산 자락에 발 들여놓을 때부터 고대하던 일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간디농장 시절 꾸려오던 생태학교인 ‘간디대학’ 이 중단되었다. 학교에 매달리느라 밀쳐졌던 것인데, 그로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잇는 이 거대한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생명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소박한 문화로 탈바꿈한다” 는 간디농장의 기본 정신이 행여 퇴색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가 없지 않으며, 그렇다면 간디학교 또한 생태적 대안 문화의 큰 틀 안에서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 그저 괜찮은 사립고등학교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는 학교대로 반듯한 꼴을 갖추어 나가야 할 터인즉, 그런 생각에서 올해 간디학교가 주동이 되어 대안교육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질적으로 높은 교육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전체 제도권 교육이 바뀌어야 할 바에 대한 하나의 본을 보여 주자” 는 취지로, 대안학교 가운데 현재 인가가 난 여섯 학교와 내년에 문을 열 두세 학교가 다달이 한 번씩 모여 좀더 나은 대안교육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상호 도움을 주고 받는다.
어쨌든 내년에 영농법인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생태마을 이루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도 내년부터는 농사가 필수과목이라고 공포해 놓았다. “우리가 먹는 건 우리가 해결한다. 그 동안 땅이 없어서 그리 못했다면 이제는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없다. 삼 년 안에 자급자족 체제로 간다” 라고.
생태마을이 자리잡는 시간을 그는 최소한 십 년으로 어림잡는다. 지금 외송리 아래 원지와 둔철산 자락 곳곳에 흩어져 사는 교사들이 일차적으로 자리잡을 테고, 학부모와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마을에 정착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본다. 이 새로운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한편 도시와의 직거래 운동, 식품 가공까지도 맡아야 할 것이다. 녹색기업, 곧 자연의복 생산회사라든지 자연 에너지 회사도 진지하게 구상중이다. 그 때쯤이면 간디학교는 지역을 감싸안는 문화와 정신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터인즉, 아주 작은 소규모 자치 사회가 이루어지게 될 터이다.
완전하지 않아도 좋다. 간디학교가 그랬듯이 “하나의 대안문화, 그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의욕에 넘친다. 지금 교무실 안의 ‘간디대학’ 팀은 그 준비를 하고 있다. 실상사 장기귀농학교에서 짬짬이 강의도 듣고, 저마다 건축이니 염색이니 과제 하나씩 맡아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한다.
하룻밤 마른 풀꽃 가득한 한 쌤의 방에서 편안히 몸 누이고 난 아침, 학교 앞 지리산 자락에 거대한 안개 구름이 굼실대고 있었다. 올올이 투명한 햇살 아래 안개는 천지로 흐트러지는데, 그 장관을 마주하고 학생 몇이 운동장에 서 있었다. 안개 피워 올리는 지리산을 가슴 가득 주워 담고 있는 양.


사진․글/안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