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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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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위영란 1998년 12월 202호
위영란/현대불교신문 취재부장

“승려 대처 육식 허용”
82년 8월 모 일간지 1면 머릿기사로 뽑힌 기사 제목이다.
조계종이 교화승과 취처자에게 승적을 부여하고 육식을 허용한다는 제도개혁방안이 그 내용이다. 이튿날까지 모든 일간지는 이와 관련된 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냈고, 급기야 그 때 총무원장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제도개혁의 시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본 취지와는 달리 잘못 와전된 것” 이라고 밝히면서 한국불교의 정통正統은 언제까지나 청정비구로 이어져야 마땅한 것이라고 천명하는 등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그 뒤로 이 건에 대해서는 마치 함구령이 내린 양 누구도 드러내지 못했다.
현실성 있는 계율조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엄청난 해프닝과 관련 뒷날 뒷방 얘기로 흘러나왔던 말이 있다. 기실 우리 승단 내부보다도 사회의 평범한 불자들이나 불교를 잘 알지 못하는 세속인들의 충격이 더욱 컸었다는 것이다. 풀이하면, 스님들의 계율에 대해 그야말로 ‘이해 당사자’ 들보다 이를 지켜보는 ‘아웃사이더’ 들의 의식이 더욱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사실 많은 사회인들이 갖는 막연한 스님들의 계율에 얽힌 선입관이 있다. ‘스님들은 구두를 신지 않는다’ ‘스님들은 시계를 차지 않는다’ ‘스님이 은행을 다 오시네?’ 등등.
어찌 보면 어처구니 없을 만큼 황당한 수준까지 일반 대중 의식은 닿아 있다. 사회는 이 정도로 승단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 있다. 종교의 존립 기반이 사회 속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다수 ‘순진한(?) 눈’ 들이 지금 불교가 숨쉬고 발디디고 서 있는 이 사회의 불교의식에 대한 척도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폭력을 동반한 분규의 모습들이 무조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불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임을 두려워하자는 데 있다. 누가 원장이 되고 얼마나 불교계가 달라지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불경에 인용돼 나오는 독화살의 비유로도 설명이 된다. 조계종 사태라는 독화살을 맞았는데 누가 왜 쏜 것인지를 따지다 보면 환자는 죽게 된다. 먼저 화살을 뽑고 환자부터 치료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도가 다 없어진 뒤에도 불교할 것인가.
이제 이 말은 그나마 평화시대나 할 수 있는 옛말이 됐다. IMF 한파를 겪는 요즘은 그 고통의 정도가 또 다르다. 남편은 실직 당하고 스님들은 싸우고 도대체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며 호소하는 보살의 마음을 누가 구제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조계사를 호위하듯 빙 둘러 배치된 경찰병력들을 보면서 먹고 살기에도 힘든 중생이 승보僧寶를 구제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소리는 마치 한풀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사회를 직시하지 않으면 불교계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후퇴를 초래한다.
우리 사회는 질적으로 국민의식 수준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의식이 봉건주의나 군사정권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문민정부 이후 오늘의 국민정부까지 정치적 공과를 떠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합리적, 개방적, 자율적인 방향으로 크게 변해 있다. 자라는 청소년들의 의식을 살피면 더욱 확연해진다. 국민의 주권의식이나 민주시민의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힘보다는 대화와 타협, 설득이 먼저 통용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번 조계사 사태를 보면서 불교계만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종정교시가 어떻고 종헌종법이 어떻고 불교 관례와 정서가 어떻고를 떠나, 방법상에서 불교계만은 시대변화의 치외법권인 것처럼 폭력 충돌이 버젓이 대낮에 일어났다. 그것도 스스로 신성하다고 가르치는 사찰 경내에서 신도들이 지켜보고 세상의 눈이 시퍼렇게 뜨고 있는 언론 카메라 앞에서 전개됐다. 많은 세속인들은 어떻게 지금 같은 세상에 물리적으로 집을 뺏고 빼앗기는 모습이 통할까 하는 데 놀라워한다. 충격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 조계사 사태에서 빚어진 또 하나의 심각한 우려는 사회인인 신도들의 개입 양상이 확대돼 간다는 것이다. 언론 신행단체 등 불교 관련 단체에 소속돼 있는 재가자 차원에서부터 각급 기관 종무원들, 일반 신도들까지 일부 재가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 비쳐졌다. 어떤 명분이든 나름대로 견지하겠지만, 이런 양상은 자발적인 면도 있겠으나 다분히 스님들의 직 간접적인 요구에서 나타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총무원장 선거일로 예정된 날 조계사 마당에는 선거를 강행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 스님들의 몸 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며 손가락질까지 해 가며 소리지르는 한 중년 보살에게 옆에 있던 다른 보살이 말한다.
“별표를 단 스님들한테는 그러지 마, 무조건 합장 인사해야 해. 우리 편이니까.”
지혜를 가르치고 깨달아야 할 ‘보살’ 이라는 이름의 신도가 이 정도의 의식수준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과보는 본인은 물론 스님들을 비롯한 불교계 모두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스님들과 재가자들은 차이가 있다. 분규로 점철된 조계종 역사를 돌아보면 스님들끼리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가도 이후 또 그렇게 이해가 맞으면 다시 회통하고 생활한다. 그러나 어느 한 입장이 된 재가 신도들은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 돌이킬 수 없는 정서적 상처를 받게 된다. 특히 직접적으로 불교 일을 하는 재가 종사자들은 불교계가 생계의 터전이라 여파는 더욱 크다.
신도들이 조직적으로 어느 입장으로 모여 요구 주장을 편 것은 꼭 십 년 전 봉은사 주지임면을 둘러싸고 야기된 ‘봉은사 사태’ 때부터였다. 어찌됐던 봉은사는 일 년여 지리한 싸움 끝에 일단락됐지만, 개입했던 신도들은 봉은사를 떠났다. 그들이 모두 다른 절을 다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외면하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불교가 세상 속에 비친 추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스님들의 싸움’ 이다. 이것이 다시 재가자들에게까지 확대 재생산돼 ‘불교싸움’ 으로 비화되지는 않아야 한다.
거듭되는 전국승려대회, 그 뒤 거듭되는 물리적 해결…
스님들은 은행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속인들이 받을 문화적 충격을 불교계는 헤아려야 한다. 이를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십륙 년 전 전향적인 개혁 시안을 작업하다가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충격이 더욱 커 책상 서랍 속으로 다시 넣었던 그 때 그 교훈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진정 ‘사회를 바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