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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菩提達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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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실천자들 - 편집실 1999년 08월 210호
보살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법을 전하는 길이 산해山海를 넘어야 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곳이 거친 들의 황무지일지라도 보살의 마음은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기 전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달마존자의 발걸음이 이와 같았을 것이며, 황무지를 상상하는 존자의 마음은 하늘의 흰 구름보다 가벼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혹자가 전하듯 동으로 향하는 행보를 갈잎 하나에 의지하여 도모할 수 있었다.

행장行狀에 따르면 달마존자는 파사국 대바라문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불교의 진리를 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 세속의 옷을 버리고 사문이 되었다. 진리를 구한 이의 경계는 국경을 초월하며 우주를 넘나든다. 명철한 지성으로 석가의 깊은 가르침을 통찰하였으며, 진리를 멀리까지 전하였다.

중국 양나라 무제의 물음이다. “진리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如何是聖歸第一義).” 달마가 답하기를 “무한히 크고 텅 비어 진리랄 것이 없습니다(廓然無聖).” “그러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對股者誰).”, “알지 못합니다(不識).”

달마가 숭산 소림사에서 구 년 동안 대면한 벽壁이 그러했을 것이다. 벽이 그러하며, 자신이 그러하며, 그 속의 도리가그러하였다. 무한대의 진리는 자신을 만들지 않으므로 온 중생을 품어 안을 수 있다. 넘나들 수 없는 벽의 이면에 보살이 만나야 할 중생이 있음을 본 것이리라. 이러한 이치를 어찌 말로서 전하였을 것인가.

그의 제자 혜가慧可는 스승에게 팔을 잘라 바친 그 순간에 진리를 얻었을 것이며, 진리를 행할 자리도 보았을 것이다.

보살이 진리를 품고 중생 앞에 나섬은 저 무성한 조계산 잣나무 씨앗과 같다. 씨앗은 가능성이며 무한이다.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도 않는다. 씨앗은 무량한 잣나무와 무수한 다른 씨앗을 뜻한다.

달마스님이 대對한 소림사 벽은 벌써부터 없었으니 이미 세간과 출세간을 가르는 이치도 동서간의 경계도 따로 있었을 것인가? 달마 존자가 동으로 향했던 첫 걸음이 진리를 실천하는 모든 이의 발걸음과 같은 이치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