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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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명곤
1998년 12월 202호
내가 삼 년째 살고 있는 분당은 길에서 보기에는 너무도 삭막한 아파트촌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아파트 단지보다도 녹지 공간이 많고 맑다고는 할 수 없어도 탄천이 구불구불 흐르고 있어 숨 쉴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내가 사는 무지개 마을은 분당의 남쪽 끝 동네라 바로 뒤에 산이 연이어 있고, 산 아래 입구에는 맑은 약수가 나오는 자그마한 암자도 있다.
처음 이사 와서는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그런 풍치를 그저 흘낏흘낏 스쳐만 보다가, 요즘 들어서 마음을 다잡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아침마다 산책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근처의 낙엽 쌓인 길을 지나, 이름도 멋스러운 고란사에서 잠깐 부처님께 인사하고, 절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가벼운 산책이다. 산 정상까지 일주하는 등산객이 들을라치면 코웃음칠 수준이지만, 내 분수에 맞추어서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인지라 삼십 분쯤 걸리는 아침 산책을 지방에 출장 가는 날이 아니라면 거의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아침산의 모습이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안개가 낀 날은 안개가 낀 날대로, 밤새 비에 젖은 날은 또 그런 날대로, 날마다 변하는 산의 모습이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앞날에 내린 눈으로 또다른 장관을 펼치고 있는 산의 산세에 취해 그저 산만 오랫동안 바라보다 돌아온 적도 있다. 또 산 위에 드리운 아침 햇살이나 구름, 산길에서 만나는 갖가지 나무들, 산새들의 날개짓, 산골짝을 흐르는 실개천, 하다 못해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까지도 나를 기쁘게 한다. 집 가까운 곳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잠이 많은 초등학생인 딸과 아들은 아침 산책이 고역인가 보다. 지방 촬영 때문에 며칠 내려갔다가 올라간다고 전화를 하니 “내일부터 지옥 훈련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울상이 되더라는 얘기를 아이들 엄마한테서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물론 다른 때보다 한 시간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나한테도 고역이다. 그러나 산책할 때의 상쾌함과 뿌듯함을 생각하면 따뜻한 이부자리의 유혹은 이겨낼 만한 시련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들도 나와 같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했던 것인데 아이들한테는 오로지 고통스럽기만 한 산책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음날,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 함께 산책을 하면서 산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맑은 물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아이들에게 그 느낌을 전하려고 제법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잠이 덜 깬 아이들은 아빠 앞이라 건성으로 동의할 뿐, 그저 빨리 집에 돌아가기만을 원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해서 속으로 한참 웃었다.
나 역시 잠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잠이 없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낚시를 즐기던 분이어서 낚시를 가는 날에는 새벽부터 부산을 떠셨다. 일요일 새벽이란 달콤한 잠을 즐길 때이련만 아버지는 곤히 자는 나를 사정없이 깨워 낚시터로 데리고 가곤 하셨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짜증도 나서 가기 싫다고 떼를 써 보곤 했지만, 학교 시험이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꼭 나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입이 잔뜩 나온 채 아버지를 따라 가곤 했지만, 어느새 잠이 깨어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둑길이나 산길을 걸을 때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풀어져서 아버지를 따라 나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곤 했다. 낚시질하는 아버지 곁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나는 저수지의 물 속에서 노는 송사리떼를 지켜보거나,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길의 일렁임을 바라보거나, 주변의 숲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곤 했다. 낚시대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이면 아버지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려서 아버지와 나란히 걷던 그 길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무치게 그립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내게 다가온다. 지금 내가 이렇듯 자연에 끌리고 그 서정에 담뿍 취하곤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낚시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삭막하고 건조한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새도 없었고, 여행이라고 해 봐야 차 타고 스치듯 지나치며 돌아보다가 밥 먹고 돌아오는 것쯤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깊이 느낄 기회라곤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동네 뒷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기를 기대한 것은 나의 어리석은 욕심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분주하고 황폐한 서울생활에서 나의 어린 시절과 같은 체험을 아이들에게도 안겨 주어야겠다고 시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아이들이 그나마 이침산책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마음을 쓰는 일인 듯 싶다. 그들이 나이 들어서 아빠와의 아침 산책을 그립게 회상할 수 있도록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또 되도록이면 대화를 많이 나누기 위하여 고민을 해야 할 듯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침잠 깨우기는 당분간 계속해야 하니, 당장 내일 아침에 벌어질 아이들과의 실랑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야 아이들이 짜증을 안 낼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