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측은 청변이 대변하는 중관학파와 호법이 대변하는 유식학파가 서로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호법이 청변 학파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도 그는 그 내용을 담담하게 정리할 뿐이지 호법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법상종의 가장 뛰어난 유식학자 중의 한 사람인 그가 호법 유식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법상종의 소의논서인「성유식론成唯識論」을 주석한 그의「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가 그 시대의 쟁쟁한 어떤 철학자들의 주석보다 앞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남아 있는 그의 저서들을 살펴보건대 그는 어디에서도 대승의 학파는 말할 것도 없고, 아비달마의 학파를 비판하는 법이 없었다. 설령 유식학파가 아비달마파나 중관학파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라도 담담하게 어느 학파의 학설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반야경류의 경전을 주석한「인왕경소仁王經疏」나「반야심경찬般若心經讚」에서 더욱 빛난다. 우리는 보통 중관학파의 입장에서 반야경류의 경전을 바라보기 쉬운데, 이런 우리에게 유식학파의 입장에서도 반야경류의 경전들을 바라보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중국 법상종을 대표하는 규기는 원측의 이런 관점과 태도가 그 학파의 교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원측이 교정한 반야심경의 본을 따르면서도 그 주석에서 청변학파를 대등하게 평가하는 원측의 관점을 물리치려 했다. 원측을 지칭하는 말이 보이거나 그의「반야심경찬般若心經讚」의 내용은 보이지 않으나, 청변학파를 지칭하는 승공자勝空者의 학설을 먼저 서술한 다음 이어서 호법학파 곧 중국의 법상종을 지칭하는 여응자如應者가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나 중관학파의 학설과 도저히 융화할 수 없는 내용을 담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원측을 비판하고 있다.
원측은 산스끄리트원문에 충실하고 전통 유식학파의 공성 개념에 꼭 맞게 주석했다. “오온이나 공함을 본다” 는 첫째 문장에 대해서는 산스끄리뜨 원문의 ‘śūnyatā’ 에 걸맞게 이 공을 “없음” 으로 풀이해서 규기와는 달리 지나치게 이 공의 뜻을 확대하지 않았으며,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는 둘째 문장에 대해서는 산스끄리뜨문의ꡐśūnyatāꡑ에 걸맞게 공성을 세 가지 뜻으로 해석했다. 이 공성이 공과는 달리 주어의 자리에도 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무착의 세 가지 공空 개념을 받아들이고, 이 세 가지 온과 세 가지 공성의 관계를 이성상즉異性相卽과 동성상즉同性相卽으로 엮어냈다. 이는 규기가 그의 공성 개념 안에 원측의 원성실의 색과 자성공의 동성상즉을 수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탁월한 것이다.
원측과 규기는 호법 유식에 관한한 서로 갈라지지 않는다. 다만 원측은 청변학파를 수용하나 규기를 비롯한 후대 중국의 유식학자들은 이 학파의 학설을 배척한다. 원측의 여러 저서를 살펴보건대, 직접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규기를 비롯한 중국의 유식학자들이 지적하는 청변학파의 문제점을 몰랐다고 볼 수 없다. 신라인으로서, 아비달마학파든 중관학파든 모든 불교의 학파들을 품에 안으려고 했던 원측이기에 중국 법상종의 일원이면서도 그 학파와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후배인 규기가 그의 관점을 비판하고 있음에도 붉하고 그도 잘 알고 있는 유식학의 내용을 규기의 이름으로 정리하고 소개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규기의 제자이자 중국 법상종의 삼대 교주인 해소가 그의「성유식론료의등成唯識論了義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원측의「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를 비판하고 때로 아무 근거 없이 깎아내린 것은 이런 점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