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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과 중도中道-두 가지의 사유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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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강 - 김수중 1998년 11월 201호
김수중/경희대, 중국철학

유가의 ‘중용’ 과 불교의 ‘중도’ 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근본 성격이 서로 다르다. 중용中庸은 자연 자체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유가에서 말하는 바 ‘도道’ 또는 ‘도리道理’ 이다. 그것은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역동적 평형’ 을 모델로 하는 패러다임이다. 중용中庸의 사상은「주역周易」의 음양陰陽사상과 깊은 연관 관계를 가진다.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생물 유기체를 확대하고 인간을 확대하여 우주를 해석한다. 나를 확대하여 나아가면 가정, 국가, 천하가 된다. 이른바 소우주-대우주가 크기만 다를 뿐 같은 구조(同型構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오래된 신념이다. 가족을 확대하면 국가가 되며 따라서 가족과 국가는 동형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생물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중용中庸’ (평형)이라는 원리는 인체에 적용되어 한의학의 원리가 되고, 인간의 마음에 적용이 되어 수양론의 근본이 되며(中和), 사회에 적용이 되어 정치의 원리가 되며 윤리의 원리가 된다. 이것이 유가의 ‘中庸의 길’ 이다.
그에 견주면 불교의 ‘중도中道’ 는 자연 자체에 내재하는 성질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존재 또는 진상眞相에 접근해 들어갈 때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따라서 중도中道는 ‘메타적’ 성격을 갖는다. 인도인들은 고대로부터 명상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깊은 요가나 명상에 잠겼던 사람들은 자기가 요가나 명상에서 체험한 것, 참선에서 느낀 것을 실제(reality)로 여기며, 상식인들이 실제로 믿는 경험적 대상들의 실재성을 부정한다. ‘중도의 길’ 은 부정의 변증법이며, 방편의 변증법이다. 그것은 대화나 논쟁의 기술이며, 선의 논리이기도 하다.
중용과 중도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단지 실천의 측면에서는 공통성을 갖는다. 곧 극단을 피하는 태도이다. ‘오류를 피한다’ 는 점에서 중용과 중도는 일치한다. 중용에서는 ‘과過’ 나 ‘불급不及’ 을 피하고자 한다. 중도에서는 한 끝으로 고정된 입장이나 형이상학을 깨고자 한다(八不中道). 거짓을 깨는 것이 바로 바름을 드러내는 길이다(破邪顯正). 유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가진 인간은 언제나 과불급의 사사로움을 가지기 쉽다. 부단한 수양을 통하여 과불급을 지양한다면 우리는 도리를 실천하는 것이 되며 바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실천의 측면에서 중용과 중도는 공통되는 요소를 갖는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중도中道와 연기설緣起說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첫째, 어떤 교리(dogma)의 고착화를 거부한다. ‘중도中道’ 의 변증법은 긍정적인 방법이라기 보다는 부정적인 방법이다.
둘째, 어떤 세계관을 고집하는 형이상학을 거부한다. ‘중도’ 와 ‘연기설’ 의 가르침에 의하면, 세계에는 고정된 어떤 것(自性)도 없다.
셋째, 우리의 인식은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 주관의 ‘관심’ 을 완전히 떠난 객관의 ‘인식’ 은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