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색인은 꼭 필요하다
한국사람이 한문을 열심히 해서 ‘한소식’ 한다면 한문을 한글만큼 잘 읽을 수 있을까? 한때는 한문도 문리文理가 나기만 하면 한글처럼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중국사람이 아닌 것이 확실한 이상 기대치를 완전히 낮추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業이 한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지라 가지가지 묘안을 짜낼 수밖에 없다. 경전을 보다 보면 불교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기타 주변의 사전류를 이용해야 할 일이 많다. 문제는 사전류의 대부분이 일본 또는 중국 쪽의 것들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유학파들이야 찾고 읽는 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어중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 사전 이용에도 많은 애로가 따를 수밖에 없다. 내용은 고사하고 항목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한글불교사전이야 선천적인 국어실력(?)으로 찾아서 바로 읽으면 되지만 그 밖의 외국어사전은 항목을 찾는 것부터 예삿일이 아니다. 부수, 획수를 더듬거나 일본어 읽기 순서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는 시간품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몰라도 귀찮아서 그냥 지나가거나 다음에 한가할 때 한번 자세히 찾아본다고 하면서 대충 넘어갈 때도 많다. 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주는 것이 한글색인이다.
색인은 말할 것도 없이 주어진 글자나 낱말의 출처를 찾아보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낱말을 가장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사람인 경우 사전이나 색인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한 기존의 공유화된 정보는 한글의 가나다 순서에 대한 정보이다. 따라서 기존의 모든 불교사전의 성과들을 한글로 색인작업을 한다면 많은 정보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게 되고 또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불교학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 한글음 가나다 순서로 배열했을 때 음의 표제어는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총 획수이므로 덜 복잡한 획수에서 아주 복잡한 획수 쪽으로 배열을 하는 것이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이 된다.
잘된 색인은 좋은 저서 못지 않다
얼마 전에 행자생활을 함께 한 그리고 지금 은해사에 같이 살고 있는 도반 원일스님이 대만에서 나온「불광불교대사전佛光佛敎大辭典」을 만들어 강호제현들에게 선보였다. 불광사전의 마지막 권이 부록으로 붙어 있는 한문색인을 한글색인으로 바꾸어 우리말 음순으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그 덕분에 요즈음 불광대사전이 내가 가장 애용하는 불교사전이 되어 버렸다. 잘된 색인 하나가 그 사전을 완전히 다시 살려 주는 공로를 세운 셈이다. 밤을 지새워가며 얼마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는지 옆방에서 잠을 자는 내가 미안해서 선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 그의 방과 내 방은 본디 한방이었던 모양인데 가운데에 벽을 대어 나누어 놓았다. 그래봐야 책장 넘어가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정도이다. 새벽에 푸석한 그의 얼굴을 수각(세면장)에서 대하면 별로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나로서는 “애쓴다” 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게 고작이다.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의 마지막 부록에는 획수의 어휘색인, 인명색인, 지명․사명 색인, 법계보法系譜색인, 지도 색인, 그 밖의 기타 연표年表, 선적禪籍 총목록 등이 망라된 질 높은 색인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색인의 양이 사전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 하긴 김용옥씨의「삼국유사색인」은 원전의 몇 배 두깨는 될 것이다. 강원 학인 시절에 신수대장경의 색인이 그 대장경의 삼분의 이나 되는 양임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쨌든 질 높은 색인은 그 책의 수준을 보여 주는 하나의 잣대이기도 하다. 읽은 듯한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보기 위하여 그 책의 색인을 더듬어서 찾아보고자 할 때 그 말이 표제어에서 빠져 있을 때 느끼는 황당함이란 당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한문사전의 경우 색인의 덕을 가장 크게 보는 것은 강성위姜聲尉 씨가 편집한「한문사서漢文辭書 한글음순색인」이다.「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보통 모로바시 사전이라고 부른다),「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이라는 불후의 한문사전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수고 때문에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다. 그 책의 후기는 꼭 필요한 색인작업의 고뇌를 “표제자의 음을 찾고 대사전들의 수록면 수를 적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작업으로 일관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장마비만큼이나 지리한 작업이었다” 고 술회하고 있다. 색인작업은 단순작업의 극치인 동시에 무제한 인내를 요구해 오는 고독한 수행이기도 하다. 보살 마음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요즈음은 컴퓨터의 기술이 날로 발달하고 있는지라 많은 수고가 덜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고독한 작업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누군가가 신심을 내어서「불서해설대사전佛書解說大辭典」의 한글색인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고롭기만 하고 폼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한문색인조차도 없다. 권 수는 열세 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면서 찾을 때마다 보통 애를 먹는 게 아니다.
번역서의 표제어는 원문까지 함께 수록하는 색인이 되어야 한다
번역서의 자료 활용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색인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색인작업만 충실하다면 설사 번역에 문제가 있더라도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원전보다 번역서가 자료로 더 많이 활용되는 것도 사실 색인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문에서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용어색인이다. 곧 본문에 사용된 어語․구句․자字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번역서에서 색인을 작성할 때 자료로서 가치를 높이려면 번역문 위주의 표제어를 선정하는 것보다도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에 나타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표제어를 선정할 때에 번역문에서 잘못 풀어 쓰거나 잘못 번역한 부분을 원문에서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뭇삶(重生)’ ‘죽살이(生死)’ 등은 번역어로서는 원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라서 더욱 그러하다. 번역서에서 색인은 대개 번역문을 위주로 하다 보면 중요한 문어가 표제어에서 누락하기 십다. 그러므로 표제어를 선택할 때 원문과 번역문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하여 색인에서 원문과 번역문이 동시에 표기된다면 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전문연구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