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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기와 자연에 의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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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병철 1998년 11월 201호
사태가 심상치 않다. 지금 우리 눈 앞의 위기가 단순히 실질 소득의 감소에 따른 경제적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지구 생태계, 생명계에 대한 재난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는 세계 전역에 걸친 홍수, 태풍, 가뭄 등 대규모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와 겹쳐 이제 인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백 년 또는 수백 년 만의 이변을 오히려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재난 가운데 가장 걱정스러운 사태가 식량부족이다. 식량대란은 이미 시작되었다. 바로 휴전선 너머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 갔다. 식량위기로 인한 재앙은 지구촌 전체에서 더욱 심화되어 식량 자급도가 30퍼센트에도 채 못 미치는 우리의 목숨줄을 구체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양쯔강 유역의 홍수는 더 이상 우리의 목숨 줄과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사태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막상 이처럼 재앙이 눈앞에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지구 온난화, 사막화, 기상이변 등 우리 인간이 저질러 온 어리석은 탐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다.
이 세상, 이 지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인간의 탐욕에 바탕한 편리와 풍요, 쾌락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생산양식, 이른바 반 자연적인 산업문명과 쓰고 버리는 식의 파괴적인 소비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환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줄곧 이 한길을 달려왔고 이제 막다른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있다. 어쩌면 죽음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이 순간에도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잘 달리고 있다고, 이 길을 계속 달려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IMF사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서 보듯이 여전히 우리는 오로지 물질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효율성 강화의 논리에만 하나같이 매달려 있다. 우리에게 당면한 경제 난국이라는 것도 결국 그 본질이 자연의 원리와 법칙에 반하는 잘못된 생산 방법과 탐욕적인 소비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IMF 위기라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고통이 아니듯 이른바 아시아 경제 위기라는 것 또한 아시아만의 경제 위기가 아님이 입증되고 있다. 세계 경제공황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주장뿐 아니라 공업화 중심의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자체의 종말에 대한 예측까지 분분한 상황 속에서 분명한 것은 물질 에너지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제 더 이상 무한성장 신화의 허구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닥쳐오는 이 재앙에서 살아남는 길인가. 환경재난과 기아의 시대에서 사는 길, 그 길은 한길뿐이다. 지금까지 우리 삶이, 문명이 우리 생명의 근원, 모태인 자연 생태계를 파괴 약탈하고 소모 고갈시키고 오염시키고 죽이는 것에 바탕해 왔다면 이제는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뿐이다. 지금의 위기가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과 그 삶의 방식이 초래한 것이라면, 모든 생명의 근원인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삶의 지혜를 찾아 자연의 풍요에 동참하는 길이 생존을 위한 대안이자 건강하고 바른 삶의 길인 까닭이다. 생각해 보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 가운데 인간을 제외한 어떤 생명체가 자연을 거스르면서도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이 있는지를, 자연 속의 생명체는 모두 자연에 의지함으로써 자기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스스로 마련해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IMF 위기라는 것이 한마디로 비자립적인 삶, 그 살림살이의 위기라면 우리 스스로 자립적인 삶을 꾸려가지 못하는 한 당면한 경제적 위기로부터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건강한 삶, 자립적인 삶이란 자연적인 삶이며 그것은 자연을 의지하여 우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삶인 것이다. 자연이 자신을 유지하면서 그 속에 깃든 모든 생명을 기르고 먹여 살리며 풍요를 누리는 원리를 배우고 따르는 것, 그것이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안임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삶인가.
자연이 자신을 유지해 가는 원리는 상생相生과 순환循環에 있다. 상생이란 자연 속의 모든 존재물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관계 곧, 서로에게 충실한 생명의 밥이 되는 관계이며, 순환이란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다시 밥이 되는 관계이다. 이 같은 상생, 순환의 원리를 통해서 자연이 자신을 유지하면서도 풍요로운 것은 알뜰함과 검소함에 있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 아낄 것이 없고, 검소함으로써 걸림이 없으며 또한 널리 베풀 수 있다는 말처럼 ‘아낌’ 과 ‘검소함’ 이야말로 모든 풍요의 근본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는 것, 모든 사물이 자기와 하나임을 깨닫고 제 몸을 돌보듯 아끼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이 저마다 자기 존재의 소임이 있음을 알고 불필요한 소비, 그 욕망을 줄이는 것, 이러한 알뜰하고 검소한 삶의 방식이 자족적이며 자립적인 삶의 건강성과 풍요로움을 이루는 도리인 것이다. 자연 생태계에 불필요한 낭비가 없고 쓰레기가 없는 것은 이처럼 물건 하나라도 버리지 않는 그 알뜰함과 아낌에 있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에 바탕한 쓰고 버리는 삶이 얼마나 우리 자신의 심신을 황폐화시키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 왔던가. 지금 우리는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불행히도 선택의 기회는 많지 않다. 만일 닥쳐오는 이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길이며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이며 시간이 허용되는 동안만이라도 자연과 조화되는 삶의 건강성과 풍요로움을 누려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귀농을 통한 삶의 전환은 자연에 의지하여 자립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자 재앙에 대비하는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