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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대한 뜻이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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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이두 1998년 10월 200호
이두/청주 관음사

육이오 전쟁이 막 끝난 무렵 은사 스님이신 금오스님을 모시고 대구 어느 토굴에서 살 때다. 하루는 스님께서 출타중이었는데 서암스님, 경산스님 등 너댓 분이 우리 토굴에 들르셨다. 은사 스님과 단 둘이 살던 조촐한 토굴생활이었으니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아 국수를 내놓기로 했다. 부지런히 국수를 삶고 시금치를 무쳤다. 찬장에 있는 참기름을 내어 듬뿍 넣고 나물을 무쳤음인지 객 스님들께서 음식이 참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데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들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은사스님께선 밖에 출타하실 때면 기름병에 눈금을 그어두었고 돌아오시면 꼭 부엌에 나가 기름병을 점검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니, 이제 돌아와 참기름을 많이 쓴 것을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터였다. 표시해 둔 눈금에서 눈에 띄게 너무 많이 금이 내려가 있었으니 음식 솜씨 칭찬을 못 받더라도 기름을 조금만 쓸 걸 하고 후회를 했으나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객 스님들이 돌아가시자 스님께서 나를 불러 앉혔다.
‘참기름이 어찌 된 게냐.’
변명이 통할 리가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인지라 얼른 일어나 입고 잇던 가사의 옷매무새를 단정히하고 그 위에 대가사를 입었다. 옷고름을 고쳐 매고 대가사를 입자니 언젠가 옷고름을 잘못 매었다가 호되게 혼난 일이 떠올랐다. 공주 갑사에서 경전을 읽다가 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셨던 대구 관음사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스님께서 부산에 가실 일이 있어 대구역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따라나갔다가 그만 스님의 눈길이 내 가사의 옷고름에 머물렀다. 그러자 갑자기 스님의 눈길이 매서워지더니 손으로 내 가사의 옷고름을 획 잡아당겼다.
‘옷고름 맨 것이 어찌 이러냐.’
스님의 거친 손길에 그만 옷고름이 풀어헤쳐졌다. 아, 그 때의 당황스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역 대합실에서 서슴지 않고 면박을 주는 스승에 대한 섭섭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그 때 법도에 어긋나는 것을 한치도 용서하지 않는 스승의 눈길이 얼마나 섬뜩하리만치 싸늘한지를 보았다.
옷고름 한번 잘못 매어 혼쭐이 났던 때를 기억하며 대가사를 입고 스님께 절을 세 번 올렸다. 그리고는 엎드려 말했다.
‘죽여 주십시오.’
어떤 스승이던가. 그 분을 처음 뵙던 날 나는 달마굴에서 막 나온 달마를, 그리고 초인을 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뵌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을 믿지 않았던가. 세간의 눈으로 보자면, 내가 먹은 것도 아니요, 당신 손님이 와서 기름을 좀 많이 축낸 것이 무어 그리 죽을 죄인가 할 수 있으나, 내게 있어 스승의 물음 앞에는 그런 분별이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죽여 주십사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 스님께서 일갈하셨다.
‘내가 사람 죽이는 사람이냐.’
‘물건을 낭비한 큰 죄를 지었으니 죽을 각오입니다.’
‘어찌 그리 물건을 아껴 쓸 줄 모르느냐.’
‘전생의 업이 둔탁해서입니다.’
‘그놈, 말만 잘하는구나.’
변명 없이 죽을 죄를 지었다는 나의 말에 스님께선 다소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만 물러서라.’
스님과의 생활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낭비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당신의 삶도 그러했으니 제자들에게도 ‘계행을 철저히 지킬 것’ 과 ‘참선에 오로지 힘쓸 것’ 을 당부하셨다. 그것에 한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불호령 정도가 아니었다. 아무리 아끼던 제자라도 혹 계율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그날로 보지 않는 분이었다.
그리도 낭비하는 것에 철저히 엄격했던 분이었으나 그 일이 있은 뒤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짐꾼을 데리고 토굴에 돌아오셨는데 보니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등 기름병이 스무 병이었다. 병을 헤아리며 놀라고 있는 나를 보며 ‘실컷 먹거라’ 하시며 돌아서시던 스님의 뒷모습을 보며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이렇듯 나이 들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쉬 잊혀지지 않는다.
스님과 단 둘이 참선을 할 때면 어찌 그리 잠이 쏟아지던지, 깜빡 졸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발길이 날라오곤 했다. 삼매에 든듯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계시다 어느 틈에 수마와 싸우고 있는 나를 보시고 그렇듯 발길로 후려찼는지 모를 일이었다. 혼도 참 많이 났다. 무슨 일을 시켰다가 당신 맘에 안 들면, ‘저 놈, 곰될 놈이 사람이 된 게야.’ 하시며 사정 없이 혼을 냈다. 누구나 그저 그분의 한마디면 꿈쩍하지 못했으니 범상하지 않은 도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님과 둘이서 참선에 몰입해 수행하고 있던 어느날, 사형, 사제 두셋이 다니러 왔기에 마을로 탁발을 하러 갔다. 어느 교회에 들어가 탁발을 하며 그 곳에서 목사와 서로의 종교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나와 목사의 열띤 토론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일행이 토굴에 돌아와 스님께 내가 아주 말을 잘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말 잘하려고 절에 왔느냐’ 하시며 그길로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회수하시더니 일부는 마침 다니러온 신도에게 줘버리고 나머지는 불태워 없애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스님께서 그러셨다.
‘그렇게 되라는 것이 아니야.’
나는 그 때 스님의 의중을 깊이 이해했고 그것을 기화로 선에 대한 뜻을 세우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스님을 모시고 정진했던 그 시절은 오롯이 스님의 선에 대한 뜻과 지혜를 배우고 익혔던 때가 아닌가 싶다.
수행을 통해 선정의 힘을 얻으면 망상 자체가 탈진하게 된다. 수행이 깊어지면 망상도 탄력이 없어져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망상 이전의 본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 곧 자기회복인 것이다. 요즘 들어 불교인들이 부쩍 수행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듯하다. 좋은 현상이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주력이든 그 힘이 강해지면 지혜만이 오롯이 남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그냥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법, 수행도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수행 정진을 하기 위한 하루의 일과를 세우고 그 시간만큼이라도 철저히 몰입해 정진해야 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은사 스님을 뵙자마자 계를 받고 출가사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른이들처럼 편했든 혹독했든 행자시절을 거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계를 받고 두 해쯤 경을 보고 바로 대구 토굴에서 은사 스님을 모시고 한 해 반 살았던 그 시절이 나에겐 행자시절과 다름 아니다. 스승과 단 둘이 살림을 살면서 무릇 출가자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정리/박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