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9월 1일, 잊고 있다가 다시금 생각을 고쳐 먹기라도 한 듯이 햇살이 새삼스럽게 따끈하던 날에,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에서는 장기 귀농 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산하 불교귀농학교가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전문 교육의 장이 첫 발걸음을 뗀 것이다.
근년 들어 귀농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실제로 귀농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장기 귀농 학교의 개교는 뜻있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나라 안에는 지역별 부문별 영농 교육 기관이 여럿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제공하는 것은 1~4일의 짧은 일정 동안 이론 중심의 강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데 견주어, 교육기간이 석 달이나 되는 실습 중심의 최장기 과정이라는 점과,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는 이른바 관행 농업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과 자연농 등 생태 친화적인 농법을 익히게 한다는 점 때문이다.
입학식장은 학생들과 상주 교사단, 산내 대중들 말고도 외부 강사, 관내 관공서의 장들, 취재 기자단, 여러 곳에서 격려차 달려온 축하객들로 따뜻한 자리가 되었다.
입학생은 모두 스물세 명, 첫회인만큼 명예 학생으로서 학생들과 함께 배운다는 각오를 보인 이 학교의 교장과 교감, 그리고 상주 교사단을 빼면 정식 입학생은 열여덟 명이 된다. 이들은 96년에 농업 관련 단체, 환경 단체 등 30여 개의 민간 사회 단체가 참여하여 발족된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서울, 대전, 청주,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주최하고 있는 귀농 학교 기초 이론 과정을 이미 마친 사람들이다. 입학 자격이 그렇다.
모두 남자인 이들은 연령층이 20대에서 50대에 이르나, 3,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의사, 은행원 등 회사원, 상업 종사자 등 출신도 다양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나마 기초 이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왜 농업이 오늘 다시 중요하고, 그 방법이 관행 농법이 아닌 생태 친화적인 농법이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수긍하거나 젖극 찬성하는 점에서는 모두 뜻이 한가지인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있어도 어릴 적에 일손을 거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전업하여 현장에서 맞닥뜨릴 어려움도 똑같은 것일 터였다.
농사일을 씨를 뿌리고, 기르고, 거두는 일이 전부라는 정도로 인식하여, 하정된 교육 기간 동안에 이를테면 풀베기 작업이란 시간을 낭비하는 불필요한 노역이라 여길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한 입학생들에게는, 그리고 농사 일에 대해 혹시라도 은둔적이고도 노후의 취미 생활 정도로 느끼고 있을 사람에게는 “다소 거창한” 것이 될 교장 도법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생태계의 파괴, 핵 위협 등 총체적 위기 상태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초한 이 총체적 위기의 원인을 불교적 눈으로 찾아보면, 첫째로, 힘의 논리만 강조된 우주 질서에 대한 그릇된 인식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기 존재가치에 대한 무지함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 있는 자는 부처가 될 수 있다 함은, 생명 있는 자가 갖고 있는 위대함과 불가사의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심외구법心外求法, 제 바깥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나 그것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이 필요한 때입니다. 불교에서 파악하는 세계는 연결된 그물코처럼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동체이자 일체입니다. 상대를 살리는 것이 제가 사는 길입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새로운 삶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독립을 포기할망정 ‘비폭력과 무저항’ 정신을 고수하려 했던, 인도의 간디가 부르짖었던 생명 사상과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로 삼을 만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치려는 귀농 운동은 그 길을 닦는 작업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농사 문화,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문화를 창조해 내는 주역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합시다.“
그들이 법무늘 들으면서 암시받게 되었을 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하고 감당해 나가는 동안 그 일이 온전한 제 일이 되게 하는 것은 몸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가 될 터였다. 설립 취지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귀농은 본질적으로 삶과 생활 양식을 바꾸는 문제이므로, 이를 위한 귀농 교육 또한 농사 기술은 물론이고, 농촌에서의 교육 문화, 마을 공동체 꾸리기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재창조 가정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농 운동은 사상 운동으로 볼 만한 것이 된다. 강의는 특히 그런 점이 많이 배려되어 짜졌다.
이들이 실습장으로 삼을 터는 실상사의 이십만 평 경내지 가운데 삼만 평, 실상사 농장에서 관리하는 이 곳에는 이미 누렇게 익기 시작한 벼와, 무, 배추, 콩, 들깨, 더덕, 고추, 곤달비, 돌지, 사과 따위가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입학생들은 아침 5시에 일어나 체조(참선으로 대체 예정)와 산책을 한 다음 6시에 발우를 펴고 아침 공양을 한다. 그리고 오전과 오후에 걸쳐 강의를 포함한 7~8시간의 노작(현장 실습)을 한다. 3~5월에는 씨 뿌리기 중심의 실습이 되겠고, 9~10월에는 작물 거두기 중심의 실습이 될 터였다. 저녁 7시에는 법당에서 예불을 본 다음, 농사 일지 쓰기 및 모둠별 평가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주 1회 육조 단경 강의도 받는다.
장기 귀농 하굑가 일 년에 두 번, 석달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어 내려는 것은, 기존의 삶에 대한 반성 위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적응 과정을 거친 다음, 새로 마련될 터전 속에서 자립적인 삶을 꾸려 나갈 바탕을 닦아 준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이 곳에 살면서 학생들과 생활을 함께 하게 될 상주 교사단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귀농 운동으로 삶의 길을 바꾼 이해경 교감 선생, 그리고 노작과 건축 설비, 학사 행정을 맡은 네 사람이다.
일 주일에 세 번 이루어지는 강의는 외부에서 초빙된 전문 강사들에 의해 진행된다. 토양 관리, 농업 기상, 병해충 방제, 가축 생리, 도농 직거래, 미생물 이용 퇴비 만들기, 우렁이와 오리 농법, 과수, 생태 농업 자재 사용, 버섯과 약초 기르기, 양봉 치기, 야생화, 자녀 교육, 흙집 짓기, 천연 염색법, 생태 마을 만들기 등… 자립적인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요소는 이처럼 다양하다.
여기서 “자립적” 이라 함은 귀농 학교에서 “베푸는” 것을 받아 익힌 결과로 얻어질,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주거 공간까지 자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찾아나설 수 있는 몇 가지 의미있는 조건들을 형성해서 함께 선택해 나가는” 공동체적 자율의 뜻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실상사를 최초의 장기 귀농 학교 실습장으로 선뜻 내놓은 일을 두고 교장 도법 스님은 “필요한 일, 미룰 수 없는 일이라 판단되어 저질러 놓고 본 일” 이라 했다. 선례가 없으니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 꾸려가야 할지 그것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이처럼 근본적으로는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 나가야 할 일이므로 그 부담을 그이 혼자 지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외부적으로도, 기대 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부족한 여건” 에서 겪게 될지도 모를 실망감은 그런 공동의 인식과 이해로 추스려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농사란 최소한 일 년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만큼, 석 달이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간이면서도 또 한편 부족한 것이다. 풀은 베어 놓았지만 퇴비는 만들 수 없을 때이다. 이미 씨앗이 다 나와 버려 시기를 넘긴 탓이다.
단계에 이르기까지 3~5년이 걸리는 유기농이나 자연농은 원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관행농보다도 결코 수학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치면서도, 부족한 일손에 생산과 투자를 겸해야 하는 이 곳 농장에서 백 퍼센트 유기농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아쉬운 것이다.
절에서 일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지어진 아름답고 따뜻한 흙집 같은 것을 직접 짓기란 난망이고, 그저 흙으로 퇴비장을 짓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절 뒤 소나무 숲 가까이에 지어진 비닐 움막도 숙사로 쓰기에는 큰 부족함이 없는 곳이나, 만족할 만한 거처가 되지는 못할 구조물이다. 이 또한 독일에서 생태 건축학을 전공한 이가 숙사로 쓰일 흙집을 현재 설계 중이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모양이다.
석 달의 교육 기간은 학생의 처지로 보아도 짧은 기간은 아닐 터였다. 전업의 확고한 뜻이 없으면 할애하기 불가능한 기간이다. 그러나 귀농은 세대주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 교육 기간 안에 가족을 초청하여 그 결심을 가족 전체의 것으로 끌어 내게 하자는 것이 학교의 계획이다.
교육 과정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가족의 동의도 얻었다 하더라도 자립은 각자가 도모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선적이고 큰 일은 적합한 귀농지를 마련하는 일이다. 구제금융 뒤로 가망 귀농 인구가 늘어난 탓인지, 도시의 땅값은 내렸어도 농촌의 땅값은 올랐다. 생태 지향적인 농업에 적합한,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땅을 찾는 일도 만만치 낳고, 혼자보다는 무리를 지어 손을 모아야 하는 것이 농사일이니,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는 일도, 적당한 기존 공동체에 편입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상사도 벌써 그런 의사를 전해 오는 사람들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처지는 아직 아니라 한다.)
통계에 따르면 귀농을 결정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이 토지 구입과 영농비 등 귀농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꼽는 것이 농사 경험과 기술 부족, 그리고 자녀 교육 문제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속속 폐교되고 있는 중이고, 기대를 걸 만한 대안 학교는 그 수가 늘었다고는 하나 전체 귀농 인구가 고루 누리기에는 어림도 없다.
삶의 길에 대한 혁명적인 가치 전환이 필요한 때, 산업문명이 생산과 소비와 폐기(분해)의 영속적 순환이 불가능하며, 그래서 지속 가능한 문명의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농업적 삶의 형태의 복원이다. 장기 귀농 학교가 학교 운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 하늘과 땅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 생태적 가치관, 모듬살이를 통해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닫게 한다는 자타 일체관은 모두 불교의 가르침인 연기의 세계관이다. 오늘 우리가 상생의 도리를 깨우쳐 받을 것으로 부처의 가르침만한 것이 없고, 절에서 보유하고 있는 임야 및 경지가 국유지 다음 가는 광대한 것이고 보면, 정신적 물적 토대를 함께 갖춘 바, 불교가 오늘 중생을 위해 애쓸 바가 저절로 드러난다.
일천 년도 더 전에 홍척스님이 타락한 교종의 대안으로 선종의 역사를 이 땅에서 처음 시작한 곳, 종단의 지원을 받기로는 최초인 전문 학림이 있는 곳, 94년의 개혁 불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산중 불교의 오명을 씻어 준 선우도량이 원찰로 삼고 있는 곳이 이 곳 실상사이다. 이 곳은 오늘 또 귀농 학교를 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적으로 펴 보이려 한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