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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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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숲 - 무무생 1998년 10월 200호
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 하지만 한번쯤 모질게 아프다가 일어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할 때는 몸뚱이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병이 나아야만이 몸 있음을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보이니 말입니다. 온종일 누워 있다가 보면 늑골의 아픈 부위로 인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아픕니다. 비로소 한 부위의 아픔이 온몸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과 온몸이 한 부위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부분(늑골)과 전체(몸)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결국 나눔과 섬김, 사랑은 이것을 깨닫는 일일 것입니다. 어설픈 동정이나 연정은 사랑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자신의 연약함입니다.
실직자의 아픔이나 해고 노동자의 아픔이 동정이나 연민으로는 치료될 수 없겠습니다. 바로 부분의 아픔이 전체의 아픔으로 확인되어지고 전체가 그 아픔을 포용할 때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모질게 아파 보았으면 합니다.

부자에게는 가난의 아픔을, 재벌에게는 실직의 아픔을, 권력가에게는 혁명의 아픔을
가난한 자에게는 부자의 아픔을, 실직자에게는 재벌의 아픔을, 혁명가에게는 권력의 아픔을
교직자에게는 학생의 아픔을, 학생들에게는 교직의 아픔을
부처에게는 중생의 아픔을, 중생에게는 부처의 아픔을
머무는 이에게는 떠남의 아픔을, 떠나는 자에게는 머뭄의 아픔을

아픔이 없이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모든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에게만이 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절망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내 안의 모든 마지막 힘을 타인의 가슴에 플러그를 꽂는 일일 것 같습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타인의 가슴에 꽂아 두었던 플러그를 뽑아 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희망과 절망은 두 가지 다 마음의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희망도 없애고, 절망도 없애고 나면, 참된 길 하나 그대 앞에 놓이겠지요. 가을 숲에 새로운 길 하나 보이겠지요. 그래서 조사들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 갈 곳이 없게 하라”, “마음 갈 곳이 없게 하라”
마음 갈 곳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병이 있습니다. 생사가 있습니다. 그대의 심병心病을 절박하게 얻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