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어록도 경전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불교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트리피타카’(삼장三藏으로 번역)라는 말은 경, 율, 론經律論을 일컫는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뒤로 수많은 경전이 번역되었는데 8세기 초 당나라 지승智昇이 엮은「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이라는 목록에 따르면 1078부 5084권이나 되었다. 그리고 10세기 중간쯤 전법원傳法院이 인경원印經院에 부설되면서 경의 인쇄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경을 목판에다가 새겨서 서고書庫(藏)에다가 보관하기 시작했다. ‘큰 서고에 보관된 경’ 이라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경을 갈무리(藏)하는 서고는 뒷날 판전版殿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법보法寶이기 때문에 창고라는 의미의 고庫는 불경스럽다고 하여 불보佛寶와 똑같은 대접을 하기 위하여 전殿이라는 집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그러한 대장경 속에는 선어록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 경장도 아니요 율장도 아니며, 논장도 아니다. 어거지로 굳이 분류한다면 논장의 한 형식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논장과 분리하여(논장은 대부분 범본의 번역) 선장禪藏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덕분에 삼장三藏에서 사장四藏이 되었다. 어쨌거나 ‘깨달은 선사’ 는 ‘각자覺者’ 로서 대접을 받았다. 어록도 당연히 경전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어록을 대장경에 편입시키는 것을 ‘입장入藏’이라고 부른다. 입장의 결정은 국왕 주관 아래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종종 벌어지곤 했다. ‘선종의 제일서’ 라는「벽암록碧巖錄」은 처음에는 대장경에 편입이 되지 못했다. 그 까닭은 제3칙 “마조馬祖의 월면불月面佛” 공안 때문이다.
월면불이여! 삼황오제는 이 무슨 물건인고.
이십 년 동안 괴로움을 겪으면서
그대를 위하여 푸른 용이 사는 동굴을 몇 번이나 내려갔던고.
억울하도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눈 밝은 납승이여, 가벼이 굴지 말라.
벽암록을 열람하던 신종(1067-1085 재위)은 초두의 이 구절에 이르자 막바로 심사가 뒤틀렸다. 고대의 성인인 삼황오제를 ‘이 무슨 물건이냐?’ 고 함부로 지껄인데다가 이 송頌 자체가 웬지 모르게 ‘반체제’ 냄새가 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뒷날 당연히 대장경에 편입되었지만.
어록은 속어인 구어체가 많아 번역이 까다롭다
선어록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애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속어俗語 곧 구어口語의 해석이다. 고문의 문어체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현대 백화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어가 만만찮은 상대이다. 지금이야 많은 선어사전禪語辭典이 나와 있어 부지런하기만 하면 모두 찾아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어거지 번역이 많았다. 기껏해야 교재 맨 마지막에 ‘어록’ 이라고 몇마디 붙여 놓은 게 사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공구서적工具書籍이 많아 번역하기 수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우리의 복.
잘못된 번역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구어와 문어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조사어록에서 이런 단어들이 많다. ‘직요直饒’ 는 ‘가령’ ‘설령’ 이라는 구어인데 이를 ‘바로 넉넉히’ 라고 하였으며, ‘관취管取’ 는 ‘틀림없이’ ‘확실히’ 라는 뜻인데 이를 ‘가말아 취하다’ 라고 번역하곤 했다.
읽는 용례가 특이한 것도 많다. ‘작마생作麽生’ 은 ‘자마생’ 으로 읽어야 한다. ‘시심마是甚麽’ 는 ‘시삼마’ 가 맞다. ‘축착합착祝着磕着’ 의 ‘합磕’ 이라는 글자는 사전적으로 ‘개’ 자字이지만 ‘합’ 으로 읽는 것이 관례이다.
어조사 용례가 많은 것도 문제다. ‘놓아버리라’ 는 ‘방하착放下着’ 에서 ‘착着’ 은 무의미한 말이다. ‘쉬고 쉬어라’ 라는 말인 ‘휴거헐거休去歇去’ 에서 ‘거去’ 또한 어조사인데, 동사인 ‘가다’ 로 보아 ‘쉬어가고 쉬어가라’ 고 번역하면 잘못이다. 이는 ‘끽다거喫茶去’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차 한잔 먹게’ 라는 말이지 ‘차 한잔 먹고 가게’ 라고 하면 안 된다.
고어투의 번역도 문제이다.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으로 유명해진 말인 ‘돈頓’ 을 예전에는 ‘몰록’ 이라고 번역했다. ‘몰록’ 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고어古語사전에도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단박에’ ‘한꺼번에’ 라는 말로 대치되어야 한다. ‘체상遞相’ 의 번역어인 ‘갈마들다’ 는 고어로 ‘서로 번갈아’ 라는 뜻이다. ‘갈마들다’ 라는 말로 인하여 다시 국어사전을 찾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종의 정통임을 자부하는 이 종단에서 선어록 번역 또한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
어록을 정리한 제자들은 스승의 체취를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
선사들의 어록이 구어체로 되어 있는 것은 어록의 대부분이 스승의 법문을 제자들이 정리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스승의 체취와 흔적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스승의 말씀을 실감나게 전달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스승의 어투를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꾼 것이 아니라 구어체 그대로 기록했던 것이다.
성철 선사의 법문을 표준말로 점잖게 옮겨 놓은 걸 읽어 보면 실제로 법당에서 직접 들을 때의 그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지리산 사투리가 군데군데 그런대로 섞여 있는 일화들을 접해 읽을 때면 오히려 당신의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이치와 같은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