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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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이백호 기념 - 장대송
1998년 10월 200호
「해인」200호 발행에 생각나는 후배 하나가 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그 후배는 회사 사정상 그만둔 지 꽤 되었는데 왜「해인」지와 같은 선상에서 기억되는 것일까?
「해인」지의 내용 구성이 그 후배의 단아하고 아득한 면면과 맞물려져 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언론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과 달라 보였듯이「해인」지가 다른 불교 잡지와 다른 어떤 것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해인」지의 삶이나 그 후배의 삶에 내가 다다르지 못할 삶의 유형을 살아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어릴 적 뒤뜰 장독대에 오래된 항아리가 있었다. 어느 해엔 고추장을, 어느 해엔 된장을, 그리고 또 어느 해인가는 붉은 고추와 숯검뎅이가 동동 떠 있는 간장이 담겨져 있던 항아리. 이모가 돌아가신 뒤로는 늘 비어 있던 항아리.
나는 놀아 주는 동무가 없을 때에는 뒤뜰로 가 항아리 속에 머리를 넣어 보곤 하였다. 항아리 속에서는 늘 웅-, 하는 소리가 먼저 지나갔고 소리가 익숙해지면 퀘퀘한 냄새가 기분 나쁘지 않게 얼굴을 만져 주었다.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장독으로 가는 바람에 이종형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얹으면서 무엇인가에 가로막히면 기억의 저편에서 그 웅-, 하는 소리와 퀘퀘한 냄새가 마음을 안정시켜 놓을 때가 있다.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그 소리와 냄새를 쓸쓸함이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함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결론은 단아함과 아득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해인」지와 실직 당한 후배의 삶에게 바람이 있다. 직접적인 냄새나 소리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항아리 속에 머리를 넣었을 때 풍기는 냄새와 소리를 갖는 삶을 살아 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