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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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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이백호 기념 - 최인호 1998년 10월 200호
최인호/소설가

지난 늦은 봄이었던가.「해인」지에 원고를 하나 게재한 적이 있다.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로 그리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때 스님이 되고 싶었던 나는 도반이었던 스님의 승복을 빌려 입고 기쁨에 가득차서 압구정동을 거닐었던 이야기, 꽃피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면 굳이 청산을 찾아갈 필요는 없고 봄볕이 이르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는 경허스님의 선시를 읽고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사는 곳이면 그 어디든 그 곳이 청산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수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수필이 생각지도 않게 큰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 신문에서는 그 수필의 전문이 재수록되었는가 하면 어떤 여성지에서는 그 내용을 다시 싣고 이에 관한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여성지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공연히 ‘작가 최인호 머리 깎고 스님이 되다’ 라는 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과장될까 재삼재사 고사하였는데 이번에는 J신문에서 종교 담당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즉 그 수필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잘 알려진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굳이 스님이 되고 싶은 까닭이 뭐냐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내가 카톨릭 신자든 기독교 신자든 내가 좋아서 머리 깎고 먹물 입은 중노릇하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 나는 정말 스님이 되고 싶다. 스님 가운데서도 땡중이 아니라 진짜중, 면도날처럼 기가 살아 있는 중. 생사의 허물을 벗기 위해서 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시퍼런 중. 한참을 살다가 언제 가는지도 전혀 모르게 대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왔다가 물 위에 비친 기러기처럼 사라지는 중. 법문이고 나발이고 누가 물으면 그저 천치처럼 살다가 잠시 나와 노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혼자서 물에 비친 얼굴 들여다보면서 방그레 웃는 그런 중이 되고 싶다고 말해 주고는 공연히 그런 기사를 낼 필요가 없으니 그만둡시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린 적이 있었다.
어떤 가수의 노래에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이라는 제목이 있듯이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청계산을 오른다. 지난 늦은 봄부터 시작한 산행이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청계산을 오르면서 봄, 여름을 다 지내고 요즘엔 가을 한철을 다시 맞고 있는 셈이다. 당뇨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병원을 가거나 약을 먹은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고려말의 선승 나옹 선사는 그 무렵 최고의 권력가였던 최우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최상공, 병이란 우리 몸 가운데 지수화풍의 그 어느 한 곳이 고장이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잘 살펴보십시오. 자신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바람과 자기 몸 속의 물과 자기 몸 속의 불과 자기 몸 속의 흙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살펴서 그 근원을 밝히십시오. 그러면 그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옹선사의 말에 동의한다.
따라서 나는 병에는 언제나 무식한 편이다. 당뇨에는 운동과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음식을 절제하는 편도 아니며 운동에 부지런한 편도 아니었다. 최근에 내가 청계산을 날마다 오르게 된 것도 당뇨병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우울증 때문이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약간의 우울증을 앓는 것이 연중행사였는데 등산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씻는 최고의 방편임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호텔 같은 곳에 있는 헬스클럽에 비싼돈을 내고 회원권을 사서 수영도 하고 근육운동도 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실제로 집 근처에 있는 호텔에 가서 직접 헬스클럽을 돌아보고 회원권의 값을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남자, 여자 들이 어울려서 벌거벗고 좁은 실내에서 서로를 살피며 뒹굴고 뛰는 그런 분위기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냈던 것이 바로 청계산의 등산이었다. 다행히 나는 자유직업이라서 시간에 대해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루중 내가 좋은 시간에 차를 몰고 찾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처음 청계산을 찾아갔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부터 청계헬스클럽의 정회원이다.’
청계헬스클럽은 공짜다. 다른 호텔의 회원권이 수천만 원이라면 청계클럽은 한푼도 받지 않는다. 호텔의 헬스클럽은 답답한 좁은 실내 공간이지만 청계클럽은 완전히 트인 공간에 먼지 하나 없는 숲길이다. 게다가 풍부한 태양과 맑은 바람이 공짜로 쏟아진다. 호텔의 헬스클럽이 가스 사형실 같은 사우나실을 갖고 있다면 청계클럽은 울창한 삼림에서 뿜어나오는 무진장한 산소의 삼림욕장을 갖고 있다. 호텔의 헬스클럽이 역기, 아령, 달리기와 같은 여러 가지 코스의 인위적인 운동기구로 가득 차 있다면 청계클럽은 수십 개의 오솔길과 정상을 오르는 열 개가 넘는 자연적인 코스로 가득 차 있다.
그뿐인가. 요즘 나는 산을 오르며 생각한다.
아아, 마침내 나는 내 절을 가진 스님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야말로 청계산의 주지가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쓰는 말에 이러한 말이 있지 않은가.
‘집도 절도 없는 중놈의 팔자.’
그 말처럼 지금까지 나는 집도 절도 없는 스님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산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청계산이다. 이 청계산은 내가「길 없는 길」에서 주인공으로 썼던 경허가 동진출가하였던 명산. 그뿐인가. 6.25가 났던 1950년 한여름 우리 가족 모두가 이 개울가에서 여름 한 철 피난 와서 텐트 치고 노숙하였던 유래가 있는 산이다.
청계산이야말로 지금까지는 무주공산이었다. 그 무주공산을 경허스님이 내게 전해준 것이다. 마치 의발을 전하듯. 그 무주공산에 새 주지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주석하였으니 그 스님의 이름은 속명으로는 최인호, 법명으로는 무이無二다.
언젠가 수덕사의 현판에 내어걸린 경허의 ‘무이당無二堂’ 이란 옥호를 본 뒤 나는 스스로 내 법명을 그렇게 지어 두었다. 한때는 호까지 그렇게 부르고 싶었지만 너무 불교 색채가 난다고 해서 아직 정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 법명은 ‘둘이 아니다’ 라는 뜻을 가진 ‘무이’ 인 것이다.
아직 내 산에는 절이 없다. 신도들도 없으니 신도들에게 돈을 거둘 수도 없다. 돈을 거둘 수도 없으니 공연히 불사를 하여서 절을 지을 수도 없다. 절을 지을 수도 없으니 부처님의 불상도 대웅전에 안치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 몸이 절인데 따로 절을 지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내 몸이 곧 절이고 내 몸이 곧 대웅전이니 나는 움직이는 절이다. 그러므로 내 몸 속에 다보탑이 서 있고 내 몸 속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내 몸 속 깊은 곳에 부처가 실재하여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내가 곧 움직이는 부처인 것이다. 신도는 오히려 번거롭다. 내 절의 신도는 오직 나 혼자면 족하다. 내가 내 자신에 이르는 법문이야말로 상당법문인 것이다.
요즘 나는 날마다 청계산을 오르며 내 마음의 부처에게 설법을 듣는다.
아아, 내 마음의 성불을 향해 그 두텁던 계곡의 얼음물도 따뜻한 봄볕에 녹아 흐르듯 이 두터운 업장의 아라한도 부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니 이 즐거움을 맛있는 것 아껴 먹듯이 조금씩 핥아먹는다. 인생이란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성불의 수도장. 우리는 그 성불의 문으로 나아가는 삼수생, 사수생 들인 것이다.
내가 생을 받은 것은 부처로 나아가는 또 한번의 기회를 받은 것에 불과하나니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스님이 되어서 염궁문念弓門을 거쳐 무념처無念處에 이르러 구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부는 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석가여래 손가락에 낙서를 하고 돌아섰던 손오공처럼 푸른 하늘에 옥인玉印 하나를 찍고 푸른 바다에 해인海印 도장 하나 찍고는 시인 천상병이 노래하였듯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