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언제나 자리매김은 새로운 출발선이 된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 이백호 기념 - 오성 1998년 10월 200호
오래 전 사회문제가 내 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우상과도 같았던 선배가 무심코 내 앞에 툭 던지고 간 잡지를 보게 된 것이「해인」지와의 첫 만남으로 기억된다. 80년대 후반 늘 허전함이 남던 시절, 암울한 사회현실에 눈 뜨게 되고 올바른 신앙 실천에 대한 고민이 채 정리되지 않은 답답함으로 되돌아오던 시기「해인」지는 나름대로 그런 초발심의 욕구를 채워 주기에 충분한 청량제와도 같은 신선한 맛이 담겨져 있었다.
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라는 지역적인 거리감 때문인지 불교에 관해서는 정보에 늘 어둡고 마치 뜬 구름을 잡는 것처럼 혼돈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때 다달이 어김없이 내 손에 쥐어지던「해인」지는 불교에 대한 열린 사색을 도와주는 좋은 도반처럼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며 더 없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왔다. 좋은 도반은 곧 선지식이며 수행의 도정에 모든 것이라 했던가. 짧은 생각에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며 장식장에 보관된 문화재처럼 귀중하기는 하지만 현실에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만 여겼던 불교가「해인」지로 인해 새롭게 해석되고 다양한 전망을 제공하는 열린 세계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세상과 사람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제「해인」지가 통권 200호를 맞이하게 되었다. 82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흘려보낸 시간은 타협할 줄 모르던 순수하고 건강한 의식의 빛바랜 창간호만큼의 무게로 자리하고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창간호부터 다시 한번 꺼내보았다. 지금의 편집 수준에 견주면 조잡하고 내용이 가벼운 듯하지만 불교의 참맛을 보여 주려는 신념과 열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격정적이던 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초심의 열정이 깊게 묻어나는 것을 보면 그 연륜은 단지 세월의 무게만으로 포장된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불교의 흐름을 읽어내고 깊은 생각을 안겨주던 예전의 느낌보다는 수많은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로 담담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또한 신선함과 새로움이 줄어든 것은 편집의 방향과도 관계가 있을 터이지만, 어쩌면 나의 어설프게 굳어버린 사고의 눈높이가 만들어낸 괜한 우려일지도 모르겠다.
「해인」지가 나이를 먹는 동안 세상 또한 참 많이도 변했다. 흔히들 현대를 과학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던가. 세련되게 포장되어 물밀듯이 쏟아져 내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또다른 고민거리가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막연함에 허덕이더니 이제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 하는 나침반 없는 선택의 망막함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해인」지는 일반 사보와는 또다른 맛이 담겨져 있는 격이 있는 잡지이고, 신앙에 대한 올바른 사유와 실천의 화두를 던져주는 정보의 제공자였다. 그러기에 다른 많은 불교지보다 늘 애정을 갖고 마치 눈먼 거북이가 천 년에 한 번 바다 밖으로 나와 떠다니는 나무 조각의 구멍에 목을 의지해서 숨 한 번 쉬고 세상 구경하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읽어보는 편이었다.
아직까지도「해인」지의 특성은 내용적인 면에서 일반적인 포교지와는 다른 차별성을 굵은 선으로 각인하고 있다. 특히 환경, 통일, 실업 등 현대의 제반 문제를 접근하는 인식의 수준은 무척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불교의 역할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제시하고, 내부의 건강한 비판력을 키워내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 허전함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평면적인 다양한 문제 접근에 너무 의존하는 내용으로 지면이 채워지는 듯하다.
분명 대중적 불교지로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해인」지가 추구하던 원래의 맛이 사라져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시점에서 전체적인 편집의 방향을 재점검해 보아야 할 자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해인」지가 현실의 불교와 사회에 대해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하고는 있지만 지나치게 표현하면 지금의 다양한 문제를 평면적으로 나열하여 단편적인 편린의 조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문제의식은 미래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해인」지는 분명 일반 신문이나 잡지와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는 데서 끝날 수는 없다. 현실 인식의 평면적 다양성과 함께 시간의 직선적 역사 의식이 반영되어야 한다. 역사는 시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미래를 향하는 불교 정체성의 가설을 정립하게 한다.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은 어쩌면 폭넓은 정보와 발달된 과학을 앞세운 일반 사회학자나 사상가들이 더 뛰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 흐름의 연기적 업業의 공성空性 사상은 불교만의 고유사상이며 진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물론「해인」지 군데군데에서 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으면 한다.「해인」지는 단순히 불교인들 끼리만 돌려보는 잡지가 아니라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조사의 방傍이며 할喝이다.
언제나 자리매김은 새로운 출발선이 된다. 그리고「해인」지는 다른 어느 잡지나 언론이 담당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더 훌륭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리라고 확신한다.